18화
호(糊) : 풀 호
추억을 지켜라..
나실장이라는 사람의 말이 끝나자 자신의 바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어 명함을 건넨다.
단군은 궁금한 듯 호녀가 받아든 명함을 뺏어들고는 찬찬히 살핀다.
‘NOA엔터테인먼트 나도해 실장..?’
단군의 간섭이 의아한 듯 나실장은 단군을 위아래로 바라보더니..
“실례지만 젊은 친구는 호녀씨와 무슨 사이인가?”
단군은 뒤에 있던 호녀를 한번 보더니 엄지손가락으로 뒤로 가리키며..
“제.. 여자친구.. 인데요.”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듯 갸우뚱 하더니 단군의 말을 무시하고는 호녀에게..
“호녀씨, 잠시 밖에서 이야기 좀 할까요?”
나실장은 점장을 바라보며..
“그나저나,그 구호희라는 여자분은 어디 있죠?”
“아! 불러드리죠. 호희야!”
구석에서 일하고 있던 호희는 점장의 불음에 나실장과 호녀와 같이 밖으로 나간다.
단군도 따라서 일하러 밖으로 나간다.
몸은 일하고 있지만 마음은 내내 호녀쪽으로 신경이 쏠렸다.
호녀와 호희를 앞에 새워두곤 나실장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번에 폼 클레인징 CF를 찍는데 거기에 신선한 얼굴이 필요해서 길거리를 돌아다니던 도중 이 가게에서 몇 일전에 새로운 인물 호녀씨와 호희씨 둘을 발견했지..”
나실장은 지갑의 명함을 꺼내서 호녀와 호희에게 나눠주며..
“그래서 말인데 6월 29일 날에 오디션을 볼 건데 생각이 있으면 명함보고 연락하라구..”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 손꼽아 날짜를 새더니 뭔가가 기분 나쁜 듯 잔뜩 인상을 쓰며 나실장에게 되묻는다.
“가만.. 호희씨? 그날 이 불여우랑 같이 오란 소린가요!?”
호녀의 짜증이 황당하다는 듯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둘이 사이가 안 좋은건가..?”
그 상황에 기분이 안 좋은 건 호희도 마찬가지였다.
호녀와 호희은 둘이 흥!흥! 거리며 콧방귀를 끼며 화난 얼굴로 돌아선다.
“나도 댁이랑 하는건 나도 싫거든..! 나 혼자 연애인되서 돈 많이 벌고 살거야!”
호희는 땅을 박차며 가게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나실장은 혀를 내두른다.
“쯧.. 인물은 괜찮은데.. 뭐, 연락 줘요. 그럼 난 이만 바빠서..”
나실장이 발길을 돌리자 호녀는 간단히 목인사만 나눈 체 단군에게로 다가간다.
단군은 나실장이 사라지는 뒷모습을 의심의 눈초리로 째려보며..
“저 아저씨가 뭐래..?”
“나보고 신선한 얼굴이라며 6월 29일날 오디션이라는거 보러 오라는데..? 생각 있으면 전화 하랬어..”
단군은 방금 전의 나실장이 자꾸 사기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런 걸 의심하지 않고 믿어버리는 호녀를 보니 답답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저런 사람들 보면 돈 뜯어내려고 수작 부리는 사람들 많아.. 너처럼 이쁘고 착한 애들 등쳐먹으려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데..”
“단군아! 방금 너 뭐라고 그랬어..?”
“뭘 말야..?”
호녀는 뭔가를 생각하는 듯 동공을 위로 올리더니 손가락으로 머리를 긁적거린다.
“나보고 이쁘다고 한 거 같은데..?”
단군은 자신의 마음이 들킬까 딴곳을 바라보며 헛기침을 연발한다.
“크음, 글쎄.. 난 그런말 한적 없는데..”
이제야 생각난 듯 박수를 치며 싱글벙글 웃으며 단군에게 달려든다.
“아! 맞아! 너 나보고 이쁘고 착하다고 했지..”
“글쎄 난 모른다니깐..”
호녀는 단군에게 어깨를 앞뒤로 흔들어 대며 앙탈을 부린다.
“단군앙, 다시 한 번 말해봐.. 아까 뭐라고 그랬어..?응..? 응??”
단군이의 휴대폰은 그 위기를 모면할 듯 때마침 좋은 타이밍에 전화벨이 울렸다.
이에 기다렸다는 듯 휴대폰을 꺼내들자 누군지 궁금한 듯 호녀도 단군의 전화기에 귀를 가져다 댄다.
“어! 엄마 왜..?”
“단군아, 거제도 할머니가 너 먹으라고 약 지어 놓으셨어.. 가지고 갈 겸 밀린 빨래랑 처리할거 가지고 집에 한번 들리렴..”
“응, 엄마.. 내일 아침 10시나 돼서 들릴게.. 끊어 엄마..”
“그래, 내일 올 때 연락해라..”
단군이 핸드폰을 바지 호주머니에 집어넣자 호녀의 말이 이어진다.
“어머니셔..?”
“응, 보약 가져가라고 해서 내일 점심때 들려야 겠어..”
“우리 단군이도 자기 마음에 더 솔직해지면 귀여울텐데..”
호녀는 가게 안으로 들어선다.
“아까 그말 고마웠어..”
“크흠..”
단군은 얼떨결에 호녀를 칭찬하는 말이 나와 버렸다.
역시 단군도 겉으론 아닌 척 하지만 마음속이나마 호녀에게로 다가가고 있었던 것일까..?
밤바람이 싸늘해진 그날 저녁 밤이 깊어지자 사람들은 길거리에 뜸해지자 심심함을 틈타 중앙 카운터로 가던 단군은 쓰레기봉투에서 카세트테이프를 발견한다.
단군은 카세트테이프를 집어 들곤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긴다.
‘이거 잘만 이용한다면 전에 책에서 본 그걸 해볼 수도 있겠는데..’
단군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 옆에 있던 서랍장에서 조그마한 드라이버를 꺼내서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리곤 밖의 의자에 앉아서 십자드라이버를 이용해서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기 시작하는데..
시간은 흘러 다음날 아침 단군과 호녀는 집에서 준비를 마친 뒤 버스를 타고 단군의 집 오촌리 마을 회관에 도착한다.
“넌 여행할 때나 좋은 일 있으면 그 옷 입더라..”
“너 여동생이 준거잖아.. 이쁜데 뭘..”
단군이 한참을 집으로 향할 때 호녀의 눈을 이끄는 건 길목으로 담벼락에 형형색색 스프레이로 글씨가 적혀 있었다.
어딘가에 한눈을 팔고 있는 호녀가 불안한 듯 십리정도 떨어져선..
“안 오고 뭐해..!?”
아무리 불러도 오질 않자 단군은 호녀에게 다가가선 덥썩 왼손을 잡아버린다.
“가자..”
호녀는 손가락으로 벽을 가리키며..
“단군아, 이거 뭐라고 적힌거야..?”
회색의 블록벽엔 붉은색으로「윈체스트GC 골프장 확장공사 결사반대!」라고 크게 적혀 있었다.
호녀는 뭔가 이상함을 느낀듯..
“윈체스트?? 거기..”
호녀는 단군을 노려보면서..
“니가 날 버린곳이잖아..”
단군은 순간 가슴에 비수를 찔린듯 헛기침을 연발한다.
“크흠, 너.. 기억하고 있었냐..?”
“내가 그걸 어떻게 있겠냐.. 니가 나 싫다고 버리고 갔는데..”
단군은 정색을 하듯 호녀에게 손을 저어보이며..
“아! 아냐.. 나 절! 대로 너 버린거 아냐!”
“거짓말 할 필요 없어..”
“그때 너 뒷모습은 버리고 가는 날 미안한 듯 보였어.. 다시 되돌아온다고 믿었으니까..”
그때서야 단군과 맞잡은 두 손을 눈치 챈 호녀는 웃는 모습을 숨기는 듯 살며시 미소 짓는다.
그걸 본 단군은 의아한 듯..
“왜 웃어..?”
“좋아서.. 니가 내 손을 거리낌 없이 잡은 적은 처음이라서..”
단군이 길목을 걸으며 딴청을 피우다 손을 은근슬쩍 빼려하자 호녀는 순간 꽉! 잡아버린다.
호녀의 힘에 놀라 바라보다 이내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곤 맞잡아준다.
“좋냐?”
“끄잉..”
뭔가를 눈치 챈 듯 단군은 호녀를 바라보며..
“너 은근히 끄잉 끄잉 거린다.”
호녀는 단군을 약 올리는 듯 혀를 내밀며..
“붸~ 너 처음 만난 날부터 그랬거든! 기억도 못하고..”
“너 앞으로 끄잉이라고 불러줄게..”
“끄잉이라니..?”
“애칭 말야.. 愛사랑 애 稱일컬을 칭.. 너가 좋아서 부르는 이름이라는 거야..”
호녀는 한걸음 더 단군에게 가까워진 듯 하여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떡 거렸다.
“할래! 할래! 나 끄잉이가 좋아!”
단군과 호녀는 맞잡은 두 손을 어린아이 마냥 앞뒤로 크게 흔들며 단군의 집에 다다른다.
“엄마 나 왔어!”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던 김성순 여사는 아들의 소리에 마저 끝마치고 버선발로 뛰어나오듯 반갑게 아들을 맞이해준다.
“아들 왔어..”
“안녕 하세요.”
호녀가 목인사를 건네고 단군은 들어서서 왼손 검은색 큰 봉지에든 빨랫감을 한 아름 내려놓는다.
“그 동안 못한 빨래들이야.. 이따 갈 때 옷도 몇 벌 챙겨줘..”
단군은 이리저리 사방을 둘러보더니..
“아빤 일 나갔을테구 할아버지는..?”
김여사는 부엌으로 향하면서..
“일주일전에 안성중앙병원에 입원 하셨다. 이리 와서 과일이라도 먹어라..”
단군과 호녀는 네모난 식탁에 나란히 앉고 단군은 마을 입구에서 본 글귀에 대해서 물어본다.
“엄마, 마을 입구 벽에 적힌 글 그거 뭐야..? 윈체스트 골프장 확장공사 반대라던가 그러던데..?”
김여사는 포크로 사과를 하나 찍어서 베어 물고는 혀를 차며..
“에혀.. 무슨 꿍꿍이 속인지 골프장 주인이 확장공사 하겠다며 우리 집부터 저위 소목장까지 밭으로 해서 거금의 돈을 주고 사들이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래서 사들여서 확장공사를 한다는 거야..?”
“응.. 마을 사람들 몇몇과 우리집이 항의는 하지만 그게 힘들거 같아..”
단군은 고개 숙여 머리를 몇 번 긁적이더니..
‘애당초 이런 얘기 나오면 복잡해서 더 말하기 싫어진단 말야..'
단군은 몇 개 집어 먹더니 호녀를 붙들곤 일어선다.
“엄마 나 호녀랑 그 골프장에 갔다와볼게..”
“골프장 가는거야..? 같이가자..”
문밖으로 나서는 단군과 호녀를 부엌 입구에 서서는..
“큰일 벌이지는 마라..”
“걱정마 엄마..”
집을 나와 골프장으로 오르는 언덕을 올라 개방되어 있는 골프장 거리를 걸어 다닌다.
그 길은 단군과 호녀가 처음 만난 날 단군이 호녀를 떨어뜨려 놓기 위해 버려두고 간 그 길을 걷고 있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었고 드넓은 골프장에 풀들과 고인 물 들은 미동도 없이 바람도 불지 않았다.
어디에선가 골프 연습을 하는 듯 골프가방을 들고 이리저리 몇몇이 걸어가고 있었고 걸어가는 거리는 그야말로 고요했다.
“매일 너랑 이 길을 밤마다 걸어서 그런지 해가 머리위에 떴을 때 걸어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야..”
맞잡은 두 손은 그때와는 달리 이제는 너를 버리는 일 따윈 없다는 듯 가로지르는 길 사이로 떨어질 기미를 보이질 않았다.
호녀 역시도 단군이 그때와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걸 느꼈는지 한층 가벼운 발걸음 이였다.
단군과 호녀는 발길이 닿는 대로 걸어서 단군이 호녀를 버렸던 추억의 장소에 도착했다.
단군과 호녀는 한동안 말없이 쥐죽은듯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더운 날씨 때문이였을까..? 아님 안좋은 추억으로 인해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였을까..?
“아.. 오늘은 은근히 날씨가 덥네..?”
맞잡은 두 손엔 식은땀인지 원인모를 땀이 흥건해졌고 뒤돌아서 단군이 맞잡은 두 손을 빼려 하자 아무 말 없이 호녀는 단군의 손을 놓치지 않았다.
여전히 호녀의 힘은 성인남자보다 악력이 강했지만 그 속에서 작게나마 떨려오는 미동이 단군이 악! 소리를 내기도 전에 호녀의 기분을 알아차리기에 충분했다.
“호녀야..”
단군이 자신의 부르는 소리에 둘은 서로 마주보고 단군은 조용히 호녀를 안아준다.
“이제 니 머릿속엔 내가 있을 거야.. 나쁜 기억은 쫒아 줄 테니 행복한 것만 기억하는거야..”
단군은 호녀의 허리를 잡아 끓어 않는다.
“내려가자..”
예상 밖의 단군의 행동에 살짝 놀랐지만 그새 어두웠던 호녀의 얼굴은 금세 찾아볼 수 없이 환한 미소가 자리 잡았고 둘은 골프장을 빠져 나갔다.
행복한 둘의 기분도 잠시 골프장 입구에서 환영받지 못한 인물과 대적하는데..
학창시절 때부터 아니 최근에 만났을 때부터 안경재 녀석의 두려움은 없어진 줄로만 알았는데 막상 눈앞에서 보게 되니 긴장감이 아닌 위기감이 뼛속깊이 전해졌다.
“이게 누구야.. 단군이 아니냐..”
안경재 녀석은 단군과 호녀의 모습이 보기 꼴사나웠던지 위 아래로 훑어보더니..
“이거 안본사이에 너무 가까워진 그림이다?”
“너 저번에 볼 때 경찰서에 있었잖아.. 구호희도 그렇고 어떻게 경찰서에서 나온거지..?”
안경재는 한걸음 더 다가와서는 언덕밑의 단군의 집을 가리킨다.
“자세한건 알거 없고.. 저 밑에 있는 집이 너네 집이지..? 내가 이 골프장 사버렸거든.. 확장공사 해야 되니까 빨리 이사 가라..”
경재는 단군을 스쳐지나가며 이빨을 갈듯 조용한 공포감이 엄습해 왔다.
“조..은말로 할때..”
경재는 골프장 입구로 향하며 등 뒤로 손을 흔들었다.
“데이트 잘해라!”
경재가 사라진 이후에도 단군은 한참을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된 마냥 움직이지 못했다.
“단군아! 단군아 괜찮아..?”
정신을 차렸을 땐 호녀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단군을 바라보고 있었다.
“으응.. 난 괘..괜찮아..”
호녀는 금세라도 잡아먹을 듯 달려들 기세로 경재가 사라진 쪽을 째려보더니..
“감히 내꺼를 넘봐.. 말만해.. 내가 확! 잡아 먹어버릴게..”
단군은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은지 호녀의 등을 떠밀며 언덕을 내려간다.
“아냐 됐어..”
항상 경재를 두려워만 하고 혼내지 않는 단군이 한심했던지 호녀는 단군에게 인상을 찌푸리며..
“왜 저런 인간을 가만히 살려두는건데.. 저런 녀석 한 마리 잡아먹는다고 인간이 멸종되진 않는다구..”
단군은 호녀의 어깨에 팔을 얹으며 어깨동무를 하며 내려간다.
“인간세계에서 살려면 호랑이도 인간들의 법을 따라야하는거야.. 함부로 살생을 해선 안돼요. 끄잉이 아가씨..”
호녀는 살며시 고개를 끄떡거리며 단군의 말에 수긍하는 듯 했다.
“우리 단군이 말을 따라야지..”
단군과 호녀는 집으로 향했고 단군은 호녀를 거실에 두곤 자신의 방문을 잠근 뒤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듯 했다.
점심을 먹고 단군과 호녀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향하는데 길거리에서 단군은 팔짱을 끼고 있던 호녀에게 작은 카세트테이프를 건넨다.
작고 네모난 노래 테이프를 처음 본 호녀는..
“뭐야 이건..?”
호녀는 앞면과 뒷면 윗면 이리저리 살피다 아랫부분에서 흰색의 종이에 자그마한 글씨가 적힌 걸 발견한다.
이것이 무엇인가 하던 호녀는 어찌할 바를 모르자 단군이 카세트테이프 가운데 작은 두 개의 구멍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여길 돌리면서 거기를 봐봐..”
호녀가 단군이 시킨 대로 하자 작은 공간에 기다란 흰색의 종이에 글자가 왼쪽으로 나타나 사라지며 하나의 편지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 시련의 주인공 이였던 그 조단이라는 꼬마아이가 너를 기억하는 날이 올 거야.. 그리고 내가 널 잊어버리는 일 따윈 없을 거야.. 여기에 추억이 있으니까.. 네가 널 좋아하고 니가 날 사랑하는 만큼 우린 영원할꺼야..」
글을 읽어가는 매 순간마다 호녀의 입가엔 살며시 미소가 감돌기 시작한다.
단군은 쑥쓰러웠던지 딴청을 피우며 간지럽지도 않는 머리를 긁적인다.
“내가 워낙 글쓰는데는 소질이 없어서.. 더 좋은걸 줄랬는데..”
호녀는 단군이 말 끝나기도 전에 볼에 뽀뽀를 하고는 횡단보도 건너편으로 건너와 버린다.
“저게..! 사람 많은데서..”
파란불로 바뀔지는 어찌 알고 미리 건너갔는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건너편에서 빨리 오라고 손짓하는 호녀를 보고는 행복하면서도 한편으론 저번 번지점프때의 일을 무마했다는 안도감이 내돌았다.
단군과 호녀는 일터에 도착하고 그날도 똑같이 일하면서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하루해가 지나가고 한산해진 짙은 어둠의 그날 저녁 단군은 한산한 틈을 이용해 가게안의 은색의 회전 고리에 전시된 목걸이를 찬찬히 살피며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금색으로 도금이 된 엄지손가락 한 마디만한 하트모양으로 뜻 모를 영어가 적힌 반쪽으로 지그재그 형식으로 갈라진 목걸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호녀는 이제 됐으니 웅희가 문젠데..’
단군은 꺼내들고는 중앙 카운터로 향해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중앙 카운터에서 일하던 이모는 단군을 바라보며..
“호녀한테 해줄려구 그러는 거냐..? 이왕이면 나중에 돈 모아서 좋은걸로 해주지 왜..?”
단군은 멀찌감치 뒤에서 일하는 호녀가 들을까 눈치를 보며..
“아니, 같이 사는사..람이 있는데 얹혀서 사는 게 미안해서..”
계산을 하고는 목걸이는 바지 뒷주머니에 들키지 않도록 얇게 넣어둔다.
일을 마치고 호녀와 집으로 돌아온 단군은 어떻게 하면 호녀에게 들키지 않고 목걸이를 웅희에게 건네줄까 텔레비전을 시청하면서도 내내 생각에 잠긴다.
‘목걸이를 어떻게 호녀에게 안 들키고 웅희한테 전해주지..? 호녀가 그걸 봤다간 가만히 안있을텐데..’
야!!
너무 깊은 생각에 잠겨서이었는지 앞에서 호녀가 부른 소리에도 듣지 못하자 큰소리를 내어 단군은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깜!짝이야..”
“뭔 생각을 하는데 불러도 몰라..?”
“아무것도 아냐.. 근데 왜..?”
호녀의 왼손에는 단군이 선물로 준 카세트테이프가 쥐어져 있었고 오른손 손가락으로 카세트테이프를 가리키며 한껏 신나고 있었다.
그 뒤론 웅희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단군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단군이 넋을 놓고 있는 사이 호녀가 웅희에게 카세트테이프를 보여주며 자랑을 엄청한 듯 했다.
“이거 니가 나한테 준거 맞지..? 나 여기 적힌 거 수십 번도 넘게 읽었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닌데 그리 좋냐?”
호녀는 손바닥으로 바닥을 치며 단군과 마주보며 앉더니..
“대단한게 아니라니..! 여잔 말야.. 큰 것보단 작은 거 하나하나에 감동하는 거라구..”
‘하긴.. 너도 암컷이였지..’
‘흠.. 목걸이는 내일 아침에 주던지 해야겠다.’
단군은 이불을 펴서 잠자리를 마련한다.
“니가 좋았다니 다행이다.”
“잘려구..?”
“누워 있을려구..”
그렇게 단군의 하루는 지나가고 다음날 아침 부엌에서 요리하는 소리에 잠이 깬 단군은 호녀가 잠들어 있는 걸 확인하고는 어제 입었던 바지 뒷주머니에서 목걸이를 꺼내어 웅희에게 다가간다.
“밥하는법 알게 된거야?”
웅희는 냄비의 요리를 열중하느라 돌아보지도 않고 단군의 말에 응답만 한다.
밥솥엔 밥이 다 떨어졌는지 아침부터 연기를 뿜어대며 밥이 되고 있었다.
“그냥 컴퓨터 이용해서 검색해서 해봤어.. 잘 되었을려나 모르겠네..”
단군은 다가가선 웅희의 뒤에 서서 긴머리를 어깨너머로 넘긴 채 목걸이를 목에다 걸어준다.
뜻밖의 행동에 다소 놀란 웅희는 자신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왼손으로 들어 내려다본다.
“저번일도 그렇고 항상 챙겨주고 얹혀서 사는데 미안하고 고마운 것도 있고 해서 하나 샀어.. 별거 아닌데 마음에 들려나 모르겠네..”
웅희는 단군을 보더니 눈에는 눈물이 맺히고는 단군을 와락 껴안아 버린다.
갑작스런 행동에 놀란 단군은 웅희가 마음 놓고 울 수 있도록 살며시 안아준다.
“우..웅희야..”
“난 니가 날 싫어하는 줄 알았어.. 맨날 호녀씨만 쳐다보고 좋아하잖아.. 그래서.. 그래서 내가 니 맘에 들어갈 자린 없다고 생각했어..”
등 뒤로 가려진 문 뒤로 호녀의 자다 깬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음.. 단군아.. 단군아 어딨어?”
십중팔구 이러고 있다간 호녀에게 들켜 무슨 사단이라도 나도 날판 이였다.
단군은 황급히 웅희를 때어내려 했지만 그럴수록 손목에 감긴 수갑처럼 겨드랑이 밑으로 껴 안겨 버린 손은 더욱더 조여 왔다.
아니, 호녀의 목소리를 웅희도 들은 듯 보란 듯이 더욱더 조여 왔다.
“우..웅희야 이것 좀.. 이러고 있다간..”
순간 단군의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끼고 뒤에선 호녀가 그 둘을 노려보고 있었다.
눈에선 서서히 독기가 차올랐고 부여잡고 있는 문틀은 부셔질듯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제야 웅희는 껴안고 있던 단군을 놔주곤 돌아서서 가스레인지의 불을 끄고 밸브를 잠그는데 호녀는 다가와선 웅희의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와 단군의 손에 쥐여진 나머지 하나의 목걸이를 보고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 목걸이는 뭐야!? 왜 웅희씨랑 같은 건데!?”
단군은 목걸이를 황급히 바지 뒷주머니에 집어넣고는 호녀를 이끌고 방안으로 향했다.
“우리가 웅희한테 얹혀서 사는 게 미안해서 자그마한 선물을 좀 했어..”
“근데 왜 똑같은 게 두 개 있는 거야..!?”
“그거야.. 웅희도 두 번째 시련이 다가오잖아.. 너한테 카세트테이프를 해준 것처럼 잊지 말라고 해준 거뿐이야..”
호녀도 웅희에게 얹혀서 사는게 미안했던지 이내 화를 가라앉히곤..
“뭐, 하긴 나도 미안해서 저번에 너 침 바르는 거 양보하긴 했지..”
호녀의 침 바른다는 말에 단군은 황당함을 금치 못하는데..
‘치..침을 발라.. 저번에 너희 둘이 나한테 덮친 게 니가 양보한거라구..?’
원통한 듯 호녀는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치며..
“내가 돈만 있으면 단군이 독점 하는건데..!”
‘제발 날 너희들의 먹잇감을 생각하진 말라구..’
한편 아침 일찍 성화는 집을 나와 차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는데..
차문을 열고 시동을 거는데 차 앞으로 사신 백호가 나타난다.
부릉! 부르릉!
“뭐야.. 아침부터 뭐하는 짓이야..”
빵빵!
아침부터 시끄러운 경적소리를 내어 비키라고 해도 사신 백호는 차 앞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화가 치밀어 오른 성화는 창문을 열어 고개를 내밀어 큰소리친다.
“이봐요! 비켜요 비켜! 비키라는 소리 안 들려!”
다시 차안으로 들어가 창문을 올리고 앞을 바라보고 있던 성화는 투덜거리며..
“안 그래도 집안일로 법원에 가야 되는데 아침부터 웬 미친놈이..!”
아무리 해도 비키지 않자 성화는 열 받아 내려 소리친다.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비키라는 소리 안 들리냐구!?”
백호는 터벅 터벅 성화에게 다가와선..
“당신이 박단군의 아버지인가..?”
“그런데..!?”
성화가 정확한 대답을 하지 않자 백호는 성화의 멱살을 잡고는 들어올린다.
“다시 묻는다. 니가 박단군의 아버지인가..?”
“그.. 그래!”
멱살을 풀자 성화는 바닥에 주저 않는다.
백호를 바라보는 성화의 눈은 공포 그 자체였다.
“여기로 불러라.. 재밌는걸 보게 될 것이다.”
성화는 시키는대로 아들 단군에게 전화를 거는데 신호음이 끝나고 단군과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 아빠..”
“다.. 단군아.. 여.. 여기..”
성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백호는 성화의 휴대폰을 뺏어들고는 전화를 받는다.
“난 사신 백호다.”
단군의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백호의 목소리에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옆에서 귀를 가져다 대며 듣던 호녀도 깜짝 놀란다.
“골프장 확장공사.. 아니 너희 아버지가 무사하기를 바란다면 호녀라는 녀석과 너의 집 앞으로 와라..”
딸깍!
“여보세요! 아빠! 야!”
호녀는 걱정스런 눈으로..
“갈꺼야..? 백호를 만나러..?”
“어쩔 수 없잖아.. 아버지인데..”
단군이 급하게 나갈 준비를 하자 호녀는 급한 마음으로 벌떡 일어서며..
“같이가!”
단군은 급히 챙겨 현관을 나서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위험해.. 넌 여기 있어..”
호녀는 화를 내는데..
“백호가 나도 오랬잖아! 위험한건 오히려 너라구..!”
“흠, 내가 널 어떻게 이기겠니.. 좋아, 대신 조심해야 해..”
단군과 호녀는 나갈 준비를 마치고 오촌리로 향한다.
버스를 타고 마을회관에서 내려 걸어서 집 앞 공터에 도착한다.
도착한 그곳에선 차를 새워두고 성화는 백호에게 뒷덜미를 잡힌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를 나..놔줘..!”
용기 있게 말하긴 했지만 목소리엔 겁먹은 티가 영력했다.
“백호! 원하는 게 뭐야!”
백호는 성화를 내려두고는 호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잘봐라.. 재밌는일이 벌어질테니..”
말 끝나기가 무섭게 백호는 바람을 가르듯 달려가 단군의 멱살을 잡고 들어올린다.
크윽!
곧이어 백호의 오른손엔 발톱을 들어내고 단군의 복부를 향해 날아간다.
가만히 보고만 있지 못했던 호녀는 백호의 손을 잡고는 눈에 붉은 빛을 내며 호랑이의 모습을 들어내려 한다.
“우리 단군이 털 뜻하나 건드렸다간 나도 어찌될지 몰라..!”
“호녀야, 변신하면 안돼.. 아무래도 백호가 노리는 건 너의 본모습일거야..”
그 모습을 저 멀리 뒤에서 몇몇이 바라보고 있다.
백호는 단군을 내려놓고는 호녀를 주먹으로 가격한다.
퍽!
바닥에 주저 앉아버린 단군과 호녀는 백호를 노려보고 백호는 비웃으며 호녀에게 주먹을 날리는데..
그 순간 조그마한 아이가 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우리 누나 건드리지마!”
그건 자신을 잊어버린 듯 한 기억하지 못할법한 조단이라는 아이였다.
백호는 콧방귀를 끼며 물러서는데..
“단아!”
조단은 호녀를 바라보며..
“누나, 그동안 내가 모른 척 해서 섭섭했지..?”
호녀는 눈물이 글썽이더니 이내 눈물 한 방울이 바닥에 떨어지며 울며 조단을 끌어안는다.
“고마워.. 고마워 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