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가을 달빛 비추는 곳, 풀 한 자락이 내밀어 보인 손끝에는 제법 쌀쌀하고 매섭기까지 한 바람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칼바람이 온몸을 휘감아도 아랑곳 않고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기에 겨웠을까. 내 손에는 어느새 컵 하나가 들려있었다. 그윽하게 담긴 물이 친구와 함께 할 생각에 기쁜 듯 그를 향한 발걸음에 맞춰 찰랑찰랑 흥겨운 노랫소리를 내며 춤을 췄다. 그는 달빛을 가리고 서있는 내 모습에도 떨지 않고 꼿꼿하게 자신의 모습을 뽐냈다. 컵을 꺾어 쥐어 조심스레 물을 내려놓자마자 그는 마치 누군가를 반가워할 때 앞니를 모두 드러내고 웃어대는 이들처럼 하얀 뿌리를 내놓고 나를 향해 한껏 웃음 지어 보였다. 둘의 만남을 기다린 것은 나와 물뿐 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15.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