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학교 도서관에서 배명훈씨 책을 빌려다 보는 중이다. 이거 다하고 나면 나중에 김보영씨 책을 계속해서 읽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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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훈씨 장편 중에서 아마 가장 긴 듯한 작품, 신의 궤도. 꽤 두꺼운 책 두 권 분량이다. 그치만 뭐 워낙 흡인력 있게 잘 쓰시는 분이니 책장이 금방금방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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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상 어찌어찌 하다보니 야생비행기 이런 게 나오는데... 상상해보니 귀엽다! 기여어! 그런데 새끼는 어떻게 치며... 살이 오른다는 건 어떻게 상상해야할 지 모르겠다. 흠흠. 이 생각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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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말하길 아버지의 역겨운 동정 뭐시기 뭐시기로 탄생한 낙원! 여기서 주목할 점은, 제 마음대로 제 마음 편한대로 하는 건 상대방을 위하는 것이나 배려가 아니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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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서 가짜란게 뭘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배명훈씨는 이야기를 그쪽으로 자세히 끌고가고 싶지 않으셨는지, 그냥 간단하게 다른 인물이(지난이나 나물같은) 각각의 '김은경'을 다른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형식을 취해서 가짜 그런 게 어딨냐, 약간 그런 뉘앙스를 풍긴 것 같았는데 나는 최근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어서 이 관점이 흥미로웠다.
사실 나도 그에 동의하는 바다. 뭐 지금까지 가짜 삶(거짓된~~?)을 살았다, 뭐 그래서. 그러면 가짜 삶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 생각 이런 게 변하는 건가? 그런 의미에서 애초에 가짜 삶 가짜 인생 이런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뭐가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그런 말 들으면 바닥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 것 같기는 한데... 그건 생각 문제가 아닐까?
도플갱어와 원본이 만나면 서로가 죽을 때까지 싸운다는 말이 있다. 왜? 자기가 진짜가 되려고? 서로를 보고 있으면 누가 진짜인 지 알 수 없으니까? 왜 서로 자기의 삶을 살려하지 않는 것일까. 외모가 같다한들, 같은 건 외모일 뿐일텐데. 일란생 쌍생아는 외모가 같아도 뭐 사회적인 위치나 개인의 아이덴티티 이런 게 전혀 흔들리지 않는데 말이다.
좀 더 가정해서 이 도플갱어가 어느시점까지의 기억을 원본과 공유하고 있다면? 공유하는 기억의 기간이 크면 클수록 뭐... 자신의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정의하는 게 힘들 겠지? 이 문제는 한 자리의 사회적인 위치에 두 사람이 있을 수 있냐, 같은 문제인 것 같긴 한데,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볼 작품이 있다. 한세 작가님이 쓰신 샤이닝 위저드. 제목은 양판소 같긴 한데, 꽤 괜찮은 책이다. 양판소도 아니고. 어쨌거나 여기에는 그림자와 그림자 주인과의 아이덴티티를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치만 역시 그 그림자란 녀석이 자주적이지 못하게 주인놈의 아이덴티티를 뺐는 짓을 저지르는 이유에 관해서는 명확하게 나와있지 않다. 애초에 그 그림자가 주인의 기억을 처음부터 갖고 있진 않았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처음하던 이야기에서 좀 벗어나긴 했지만서도.
비슷한 이야기는 뭐 룬의 아이들 :: 데모닉이나 손톱 먹은 쥐 나오는 전래동화같이 많긴 한데. 극한의 가정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
어쨌거나 그런 기분으로 멀티 엔드에 관해 말하고 싶다. 누가 멀티엔드를 가짜 엔드=플레이어 기만 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걸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진엔드'라는 건 결국 제작자가 원하는 결말이었다 라는 걸 말하는 정도에 불과한 것이고, 다른 엔드가 "가짜다. 너는 속았다." 같은 게 아니지 않냐 하는 이야기다. 다른 결말에서도 제작자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플레이어가 뭔가를 느낄 것이고, 중요한 건 바로 그 느낀 무언가가 아닐까?
정리를 해보자면, 멀티엔드라는 것은, 제작자가 플레이어로 하여금 뭔가 다른 걸 느끼게 하는 장치라는 것이다. n회차가 있는 것도 마찬가지고.
그런 의미에서 아무 생각없이 멀티엔드를 넣는 건 매우 추천하지 않는 바이다. 만드는 것은 엄청 힘들고, 플레이하는 사람도 엄청 힘들어질 수 있는 요소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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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으로 또 썸타는 사람을 작가님이 다 죽여버렸다. 바이센티니얼 맨(?)에서 빼고는 다 죽여버린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