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게임업계는 문화나 예술로 인정받을만한 일을 했나?(엄청 긴 글)

by Omegaroid posted Oct 0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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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나 국회의원들이 게임 탄압하려고 말 꺼낼때마다 느끼는 부분입니다. 어차피 저들 입에서 세계적 흐름을 운운하든 한국 특색을 운운하든 정치인이란 자기 입장에 따라서(혹은 표심을 얻기 위해서) 손바닥 뒤집듯이 말을 바꾸는게 직업이니, 저들에게 게임 중독이라는 문제를 해결할 진심이 있는지 없는지는 따져봐야 무의미할 것입니다. 정치적 입지 쪽으로 봤을때 게임을 지지하는게 더 나은지 게임을 반대하는게 더 나은지를 따지면 정치인 입장에서는 당연히 후자가 될 테니까요. 대한민국 부모 중 대다수는 아직도 자식이 게임을 하는것을 자식이 담배를 피는것, 술을 마시는것만큼 싫어하고 있습니다. 이런 인식이 옳은지 그른지는 둘째치고 이게 현실입니다. 4대 중독에 게임이 들어간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봐야겠죠. 정치인은 그게 옳은지 그른지는 따지지 않습니다. 그게 표심으로 이어지느냐 아니냐를 따지는게 정치인이란 직업이니까요. 


하지만 이건 굳이 저만 아니더라도 많은 분들이 느끼고 있는 부분이겠죠. 전 오히려 게임에 대한 인식 개선에 실패하다 못해 악화에 일조한 한국 게임업계에 책임을 묻고 싶습니다. 전 그들이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단순한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100% 피해자라고 하면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와, 소규모 인디게임쪽 사람들이겠죠. 


확실히 세계적으로 게임을 영화, 소설, 만화와 더불어 문화컨텐츠의 일종으로 인식하고 있는것도 사실이고, 미국에서는 정부가 게임을 예술의 한 종류라고 인정하기까지 한 것도 사실입니다.저도 아프리카 방송이나 유튜브에서 게임영상 많이 보곤 하는데, 해외에서 발매되는 게임들 보면 정말 그럴만하다 싶을 정도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기술적인 면을 얘기하는게 아닙니다. 웅장하고 치밀한 세계관으로 유명한 스카이림은 미국 대학 영문학 교재로 선정되거나 문화연구 소재로 사용되기도 했고, 저니(journey)라는 게임은 그냥 다 뜯어보면 여행하는 게임에 불과한데다가 채팅도 못하고 음악 소리로만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계획만 놓고 보면 한국 게임업계에서는 단박에 비웃음만 살 컨셉인데도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게임으로 크게 성공했고, 부모를 잃은 소녀가 너무 감명깊게 해서 감사의 편지까지 보낼 정도의 명작이 되었습니다. 


한국이 주특기라고 자신만만하는 온라인 게임 쪽을 보면 320억을 투자하면서 '국내 게임의 자존심' 운운하던 테라가 그보다 훨씬 더 전에 나왔던 WOW의 반도 못미치는 게임 컨텐츠로 비웃음을 샀고("게임을 그래픽만으로 최고가 될 수 있었으면 우린 실사에 가까운 그래픽으로 WOW를 만들었을 것이다" 비슷한 말을 WOW 쪽에서 테라를 보면서 평했다고 하는데 얼핏 들은 소문이라 확인은 안되고요), 게임 운영 쪽을 보면 LOL로 유명한 라이엇은 심리학자까지 고용해서 트롤, 비매너 유저들을 골라냅니다. 트롤짓을 몇번해서 몇번 신고를 당했고 그때 무슨 조치를 몇번 취했고 그래도 안되서 계정 정지를 했다는 식으로 전부 다 통계와 데이터로 만들어서 관리합니다. 원칙이 있다는 겁니다. 


게임을 예술로 만들려는 노력이 있었기에 문화컨텐츠를 넘어서 예술의 한분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거지요. 


한국 게임업계는 그러한 노력을 했을까요?


제 대답은 NO입니다.


한국 게임업계는 철저하게 회사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면 무슨 짓이든 하고, 이득이 되지 않는 일이면 죽었다 깨어나도 안합니다. 그리고 그게 엄청나게 당연하다는 듯이 일하고 게임을 만들고 운영합니다. 이게 예술을 하고 문화를 만든다는 사람들의 인식이라고 절대 생각되지도 않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봅니다. 


가장 커다란 고질적 문제는 역시 '모방'이겠죠. 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도 하지요. 근데 한국 게임업계의 '모방'은 '모방'이 반이라면 나머지 반은 '도작'에 한없이 가깝습니다. '창조'는커녕 '창작'도 없다는게 중요한 점입니다. 그러고도 매우 당당한게 한국 게임업계의 대단한 점이랄까...웃기는 점이죠. 대놓고 베껴놓고 발뺌하는 넥슨의 게임들을 보세요. 애니팡이 카카오톡과 연계해서 성공하니까 너도나도 카카오 쪽으로 달려가서 어떻게든 돈벌려고 매달리는 꼴을 보세요(그 애니팡조차도 이미 있었던 게임을 비슷하게 따라만든 결과물에 불과했죠). 모바일 게임으로 '확산성 밀리언 아서'가 대박을 터뜨리니까 우후죽순 따라서 TCG랍시고 가챠라는 명백한 도박 사행성 시스템을 집어넣은 게임들을 내놓고 돈을 쪽쪽 뽑아내는 꼴을 보세요. 요즘은 '신수의 주인'이라는 게임 개발진은 호랑작가라는 유명 작가 분을 모셔놓고도 대놓고 일본의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 요시다 아키히코의 화풍대로 그려달라고,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서는 엄청나게 치욕적인 표절 요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서 신나게 욕을 쳐먹고 있지요.


한국 게임업계가 이런식입니다. 해외에서 한번 대박이 난 명작의 사례를 가져와서 그래픽만 약간 바꾸거나 아주 사소한 거 몇개만 바꿔서 내놓는 식입니다. 그래서 표절 의혹도 엄청 많이 휘말리는거죠. 철저하게 회사 위주로 굴러가는 게임 운영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확실히 게임은 마약 취급받을 만큼 나쁜짓을 하지 않았고 나쁘지도 않습니다. 엄연한 문화컨텐츠입니다.


하지만 게임이 하나의 문화라고, 하나의 예술이라고 인정받을 정도로 게임업계가 훌륭한 게임을 만들어왔는가, 훌륭하게 게임을 운영해 왔는가를 따지면 전 단연코 부정하겠습니다. 


한국 게임업계는 게임의 인식 악화에 아주 확실하게 일조했습니다. 그런 자들이 단순한 피해자인 척 하는것 자체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런 자들 때문에 인디게임 쪽까지 싸잡아서 피해를 입는것 역시 납득하기 힘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