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김민수 기자]

▲ 갯버들에 맺힌 비이슬 갯버들의 꽃술에서 훔친 물감으로 수채화 그리는 중인 비이슬 ⓒ 김민수

봄비가 내린다. 이제 막 싹을 낸 연록의 생명들이 오랜만에 몸을 씻고, 목을 마음껏 축인다. 마른 대지에 내린 단비는 봄을 준비하는 흙 속의 씨앗들을 한껏 부풀게 할 것이며, 이내 그들은 축제의 밤에 터지는 폭죽처럼 피어날 것이다.

단비처럼 내리는 봄비, 그것은 하늘이 내리는 선물이다.

▲ 비이슬 너만큼은 꼭 간직하고 싶어, 가지말아. ⓒ 김민수

비온 뒤 풀잎에 맺힌 비이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이 이슬이라고 한다. 가만 생각해 보니 정말 소중한 것들은 모두가 공짜다. 그것이 소중한 것임을 알 수 있는 마음과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만 있으면 누구에게나 거저 주어진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라 불리는 어머니의 사랑도 공짜인 것을 보면, 정말 소중한 것은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것인가 보다.

▲ 비이슬 비 한방울이면 꽉 찰 작은 이파리에도 비이슬이 가득하다 ⓒ 김민수

그래도 값이 매겨지는 것들이 있다. 그 누군가의 땀방울, 수고에 대한 보답이다. 그리고 때론 나의 노동에 대한 대가이기도 하다. 그로 인해 그의 땀방울과 수고와 우리의 노동의 가치가 물질화되는 것이다.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니다. 엉터리 값을 매기며 남의 땀방울과 수고를 훔치고, 그저 높은 값이 매겨진 것만을 탐하는 것이 나쁜 것이다.

▲ 비이슬 비이슬은 이파리 아래에도 맺힌다. 이파리들이 목욕하는 날이다. ⓒ 김민수

비가 오는 날은 자연이 목욕하는 날이다. 어릴 적에는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들고 내리는 눈은 물론이고, 내리는 빗물도 받아먹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것은 아주 오래 전 추억이 되어버렸다.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누구나 누려야 할 것들이 하나 둘 일부의 소유가 되어버리고, 그들은 그것을 무기로 자기의 욕심을 더 채워감으로 서로를 불행하게 하는 소용돌이로 빠져들게 되었다.

▲ 비이슬 풀잎의 끝자락, 더 욕심내면 떨어질라. ⓒ 김민수

이슬은 욕심을 내면 떨어지고 만다. 이슬로서의 생명을 유지하려면 욕심을 버려야 한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는 그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그는 더 이상 이슬일 수가 없는 것이다. 아침 햇살, 작은 바람에 날아갈지언정 제 스스로 더 커지기 위해 욕심을 내는 것은 이슬의 마음이 아니다. 그래서 그 마음을 잃어버린 이슬을 풀잎에 남아있지 않은 것이요, 이슬방울이 작은 이유다.

▲ 비이슬 밤부터 내린 비에 배부르다고, 하나 둘 내어놓는다. ⓒ 김민수

어디 그 뿐이랴! 그들은 배부르면 내어놓는다. 자기에게 필요한 것 이상을 잉여로 갖지 않는다. 내일 뜨거운 햇살에 목이 마를지라도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고, 오늘의 삶에만 열중한다. 내일을 위해 염려하지 않으니 내일의 염려를 오늘로 끌고와 미리 염려하는 어리석음의 삶도 그들에게는 없다.

인간이 내일의 염려를 오늘로 끌고와서 하는 이유는 필요하지 않은 것까지도 끌어안고 살아가는 욕심 때문이다.

▲ 비이슬 이제 막 세상 구경을 나온 작은 새싹에서도 넉넉하게 쉬는 비이슬 ⓒ 김민수

이슬은 작은 곳에서도 쉴만큼 작다. 오늘, 아니면 어제 정도 나왔을 작은 새싹에도 넉넉하게 맺혀있는 비이슬, 그들의 쉼터가 되어준 작은 이파리들도 힘겨워보이질 않는다.

아니, 그들이 하나 되어 서로를 아름답게 한다. 쉼 속에 들어있는 아름다움, 우리 사람들도 쉼을 통해 더 아름다워지는 법인데 쉴틈없는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쉼을 잃어버리고 살아간다.

결국, 사람됨을 잃어버리고 살아간다. 사람이 해서는 안 될 일들을 스스럼없이 한다.

▲ 금낭화의 새싹 금낭화의 새싹에 맺힌 비이슬이 영롱하다. ⓒ 김민수

  피어날 꽃들은 알까? 봄비가 내리고 비이슬 맺고, 어느 여름날 작은 이슬이 맺히는 과정들을 통해 자신들이 피어났다는 것을 알까?   어떤 열매 혹은 결과라도 과정들이 있는 법인데, 결과만을 중시하는 세상이다보니 과정을 소중하게 여기는 이들이 바보 취급을 당한다. 단지 미덕으로만 착한 것이 좋은 것이고, 착한 사람은 곧 바보인 세상이 우리네 세상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수많은 열매들, 그 과정 속에 들어있는 것을 보아야 좋은 열매와 나쁜 열매를 선택할 수 있을 터이다.  

▲ 매발톱의 이파리와 비이슬 동글동글 예쁜 비이슬, 세상에서 이슬이 가장 아름다운 보석이란다. ⓒ 김민수

  그래, 세상이 아무리 요통친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매년 피어나는 풀꽃들의 모양과 향기가 그렇고, 동글동글 맺히는 이슬도 그렇다. 때론 인간의 무지로 인해 영원히 이 땅과 이별하는 종도 있지만 살아있는 한에 있어서 그들은 변함없다.   그 변함없음, 그것이 오히려 혁명적인 삶으로 받아들여지는 오늘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 갯버들에 맺힌 비이슬 어느 새 온 봄, 어느 새 갈 길을 재촉하고 있다. ⓒ 김민수

  가장 아름다운 보석과 값싼 보석의 경계는 무엇일까? 누구나 가질 수 있고, 볼 수 있어 가장 아름다운 보석임에도 공짜인 것이 있는가 하면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소유할 수 있어 아름다운 보석이 아님에도 가장 비싼 보석의 경계는 과연 무엇일까?   봄비, 단비가 내리는 날 아름다운 보석들을 송글송글 맺고 있는 봄의 새싹들을 바라본다. 그들이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가치를 가져 공짜인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만일 값을 매길 수 있는 것이었더라면 그 이슬 방울을 따서 소유하려고 그 아름다움을 보지 못했을 터이니.   이렇게 아름다운 보석이 공짜인 이유, 아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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