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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SF

제가 쓴 소설이 아님을 미리 알려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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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모닝, 로라 에설테인.
부드러운 남성의 목소리가 좁은 공간에 울렸다.

“아침따위, 개나 줘 버려 스티브. 이 허무한 신비의 우주 속에는 밤낮 같은건 없으니까.”
방금 잠에서 깨어난 여성, 로라는 그녀의 뇌파를 탐지하고 일어났음을 알아챈 컴퓨터에게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노, 노, 로라. 그래도 아침밥과 저녁밥을 구분하기 위한 구분은 있어야지.
스타브의 말과 함께 대형 모니터에 세 가지의 종류로 나뉜 아침 메뉴 선택창이 나타났다.

“챙겨주기는.”

잠자리에서 나와 화장실로 향한느 그녀의 뒷모습을 향해 스피커에서 대답이 돌아왔다.
─당신이 사라지면 난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거라고 확신하게 되었으니까.

 

로라 데이티 에설테인(Laura Deity Ascertain).
그녀는 외우주를 향해 날아간 다섯 명의 우주비행사 중 하나다. 상당히 젊은 나이에 NASA에 우주비행사로 들어와 훈련을 거치며 덜 젊어졌다. 상당한 엘리트 파일럿으로 자리잡은 그녀는 마침내 이 외우주 탐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로라, 그거 알아? 오늘 독립 기념일인거.
달력을 꿰차고 있는 스티브의 알림에 로라는 몇년 전 기억 속에 묻혀 있던 고향 미국 땅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스티브, 그런 기억을 자꾸 떠올리는거 내가 싫어한다는 거 알잖아.”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의 추억은 생존에 해가 될 뿐이다.

─자신의 주제를 알아야지. 결국 네가 인간이라는 것 조차 까먹게 되면 안되잖아.
걱정스러운건지 놀리는건지 인공지능 컴퓨터 스티브가 말했다.

“적어도 아직은 아냐, 스티브. 그건 그렇고, 오늘의 아침 스페셜 메뉴 그런거 없어?”

 

스티브 인텔(Steve Intel).
인텔이라고 부르는 회사에서 개발한 차세대 인공지능 컴퓨터. 임무 지원을 위해 외우주 탐사선 인디펜던스 호에 실린 양자 두뇌 컴퓨터이다.

 

─스페셜 메뉴? 그런게 있긴 있지. 나의 라스트 네임을…….
“초콜릿 케이크? 아직도 초콜릿이 남아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인데.”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로라는 스티브의 말을 끊고 말했다.

─그래, 초콜릿 케이크. 저번에 내가 우주선 구석에서 카카오 열매를 키우고 있다는 거 말 안해줬어?

스티브 말에 양자 두뇌도 까먹는 일이 있나 한편으로 생각하며 로라가 답했다.

“안 했어. 스티브 인텔. 나 몰래…….”
─저번 달에 인텔이라고 하지 말라고 했잖아. 난 스티브 밸런타인이니까. 회사 이름같은건 멋 없어.
역시 뛰어난 기억력을 지닌 스티브는 한달 전 이야기를 들어 가며 인텔이라는 소리를 듣기가 무섭게 스티브는 그것을 거부했다.

“어이구, 미스터 밸런타인 씨. 참 부럽네요. 하지만 난 미들네임도 있지요, 로라 데이티 에설테인. 우월하지 안그래?”
로라가 스티브의 말에 비꼬며 답했다.

─나도 그런거 못 짓는 줄 알아? 안 지은 거지.

“알았어요 알았어. 케익이나 주셔.”
아침을 달라는 로라의 말에 잠시 응답이 없던 스티브가 다시 말을 꺼냈다.

─마음이 바뀌었다. 그건 점심 메뉴야. 아침 밥은 콩밥이다. 죄수의 기분을 느껴봐 스티브의 포로 로라여~

“흥. 단식한다.”
그녀가 한 번 튕겼지만 스티브 역시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그럼 점심 메뉴도 콩밥이다, 나의 영원한 포로.

“못 당하겠네 스티브. 밥이나 줘.”

 

반년 전. 갑작스런 방사능 폭풍에 다섯 명이었던 정예 우주비행사 중 네명은 사망하고 말았다. 분명 우주 폭풍 방어 장치가 작동되고 있어야 할텐데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홀로 살아남은 로라는 그 의미를 잃어버린 탐사 임무를 포기하고 자살을 시도하려 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말을 건 남성, 아니 컴퓨터의 목소리가 있었다.

스티브.

사실은 어떤 소설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하지만 스티브는 그 이름을 좋아했다.

밸런타인.

컴퓨터답지 않게 스스로 지어낸 이름이다. 밸런타인 데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초콜릿으로 마음을 전하는 날.

 

─맛있게 먹어 로라.

기계 속에서 나온 접시 위에 놓인 것은 정말로 콩밥이었다.

“이 자식.”

그녀는 묵묵히 그것을 받아들였다.

“아, 스티브.”

─밥 다 먹고 말해. 난 실험용 햄스터랑 놀아야 하니까.

별 취향이 다 있다. 스티브의 햄스터는 사실 실험용 햄스터가 아니라 흰 쥐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름 짓기의 대명사라고 자칭하는 그는 단번에 실험용 쥐에다가 햄스터라는 이름을 붙여버렸고, 실험실용 기계 팔로 햄스터를 만지작거리면서 놀고 있을 것이 뻔했다.

“멀티태스킹 할 줄 아는거 알아.”

─어허.

 

“끔찍하군.”

─현실의 맛이지. 고독한 인디펜던스 호, 한 사람이 있었지~

맛 만큼이나 음치인 그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스티브의 두뇌라면 당연히 노래도 완벽한 노래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의 개성을 추구했다.

─오 로라, 로라, 로라! 그녀는 오늘 콩밥을 먹었다네~

“풋.”
스티브의 잔잔하면서도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의 노래에, 로라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사실 그 노래는 현실을 완벽히 반영했다.

씁쓸한 마음 속에서 별 생각 없이 로라는 즐길 거리를 찾았다.

“뭐 볼 거 없어, 스티브?”

─있긴 한데, 이 우주선 안에 있는 건 다 봤지. 저번에 정말 심심했던지 과학 서적까지도 다 읽어 버렸잖아, 로라.
진동하며 소리는 내는 스피커가 멈추자 우주선은 정적 상태로 돌아갔다. 인디펜던스 호의 동력로에서 연료를 태우는 소리만이 고요히 울릴 뿐이었다.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양 손으로 머리를 감싸는 그녀에게 양자 두뇌의 스티브도 해줄 수 있는것은 없었다.

─소설이라도 써주리?

“됐어 됐어. 채소나 따러 갈게”
시스템 도서관에 있는 책을 다 읽는 게 고작인 스티브의 머리로는 이제까지 읽은 이야기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이야기밖에 나올 것이 없었다. 게다가 그의 성격이라면 또 로라와 같거나 비슷한 캐릭터가 등장할 것이 뻔했다.

─다 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나를 시켜. 정말 여긴 아무것도 없단 말야.”

─나도 심심한데 말야.
스티브는 로라의 말투를 따라하며 빈정댔다.

“내가 하는 걸 지켜보면 되잖아.”

─그냥 내가 하는걸 네가 지켜보는 건 어떨까.

“선장 말을 들어라, 스티브”
인디펜던스의 유일한 인간, 로라는 전 선장의 직위를 이어받았다.

─예, 예. 시키면 해야죠, 선장님.

 

대형 탐사선 인디펜던스 호에 위치한 동력로는 상당한 기간동안 동력을 공급해줄 수 있지만, 언젠가는 그것의 연료도 바닥이 나게 될 운명이었다. 다섯 명이었던 대원들이 한 명으로 줄어들어 에너지 소비량이 꽤 줄긴 했지만, 우주선을 유지하기 위해서 드는 전력은 상당했다. 다행인 게 있다면, 아직 비상용 동력원인 핵분열로는 사용하지 않아 우라늄은 많이 남아 있었고, 핵융합로의 수소는 우주 공간에서 가장 풍부한 원소인지라 상당량이 발견될 때마다 끌어다 쓰고 있었다. 오랫동안 아무런 천체도 만나지 못한다면 모두가 죽고 말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구와의 연락은 두절된 지 오래. 안정된 행성에 임시 식민지를 만들기 위해서 만들어놓은 식물의 종자씨를 이용해 먹을 것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키우면서 살아온 것도 6개월. 로라는 동료들이 모두 죽었을 때 상당한 정신력을 발휘해 지금의 우주선을 만들어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육식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우주선 생활이다.

 

스티브는 항상 로라가 식물에 물을 주러 갈 때는 가만히 그녀를 지켜봤다. 그는 우주선 곳곳에 설치된 센서로 그녀를 관찰하고, 말을 들을 수 있다. 동력이 충분하니 산소를 다시 만들어낼 수도 있고, 물도 정화해서 재사용할 수 있다.
평상시와는 다르게, 스티브는 식물에 물을 주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로라, 물 주는건 내가 하지. 보여줄 게 있어.

“없다며?”
로라는 식물에 관심을 쏟으며 건성건성 대답했다.

─중요한 거야.
“나중에.”

─아냐, 빨리 와 봐. 꼭 지금 봐야 해.
그런 그녀에게 스티브는 다시금 말했다.

“뭔데 자꾸 그래.”

─여기. 그거 줘. 그리고 사령실로 와봐.
스티브는 기계 팔을 로라에게 가져갔다.

“오늘 이상하네.”
로라는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뿌리개를 기계 손에 쥐어주었다.

─기대하시고…….

그녀는 대체 스티브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초콜릿 케이크인가? 점심때가 되어가는 것 같긴 하지만 아직은 배는 고프지 않았다. 그도 그런 것쯤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같은 것이라면 이렇게 재촉할 이유는 없을 것이고.

우주선 조종 패널이 있는 사령실에 도착한 그녀 앞에 유리 모니터가 다가왔다. 모니터에 나온 화면에는 우주 망원경으로 관측한 것으로 보이는 흐릿한 천체가 찍혀 있었다.

“이게 뭐야?”
유리 화면을 들여다보며 그녀가 질문했다.

─꿈의 행성.
“꿈의 행성?”

─그래. 딱 잘라 말해서 생물이 살 환경이 갖춰진 행성이라고 보면 될까?

“농담하지마. 아직 태양계를 떠난지 많게 쳐서 2년밖에 안 되었어. 그건 불가능해.”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는 그에게 로라가 반박했다.

─나도 그건 이상해. 하지만 이 행성은 그리 멀지 않아. 몇개월 안에 도착할 수 있다는 거지.

“앞뒤가 안 맞는다고 생각하지 않니?”

─하지만 진실을 거부하진 마. 특히 이건 희망의 진실이니까.
스티브는 자신의 희망의 철학을 강조했다.

“너 이거 오늘이 독립 기념일이고, 이 우주선이 독립호(인디펜던스 호)라고 해서 유치한 장난을 치는 건 아니겠지?”
한 손으로 유리 모니터를 가리키며 로라가 추측했다.

─이 양자 두뇌를 못 믿겠다는 건가? 미스 에설테인(Ascertain) 답게 확신하지 못한 모습인데?

“됐다 됐어. 난 식물에 물주러 간다.”
포기한 듯 그녀는 사령실 문을 향해 몸을 돌렸다.

─다 줬는데.

“하아… 스티브.”

─맞다, 미안.

“관두자. 좀 있다가 점심이나 먹지.”

─예악 완료. 우주에서 가장 유명한 인디펜던스 식당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객님.
로라가 점심 예약을 하자 아까와는 다르게 장난스러운 말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그녀는 그 말에 미소지으며 객실의 침대로 몸을 던졌다.
우주 비행사 일기장을 펼쳐 일기를 쓰는 것이다. 이것은 3개월 쯤 전부터 그녀가 시작한 일이었다.
스티브는 로라 몰래 이 일기장을 들춰보기도 했다. 아직까지 그녀는 그것을 모르고 있지만, 딱히 싫어할 일도 아니었다.

우주를 가로지르는 인디펜던스 호는 아직 희망을 맞을 준비가 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스티브는 이렇게 말한다. 진실, 그 중에서도 희망의 진실은 거부하지 말라고. 이도 저도 안 될 때는 헛된 희망도 좋으니, 살아남아 가자고.

희망 없고 덧없는 우주를 가로지르는 일은 인간에겐 너무나 벅찬 일이다. 하지만 스티브는 여기까지 해내었다. 로라가 힘들 때마다 그녀의 등을 떠밀어준 것은 그였다.

그녀가 일기장의 한 페이지에 마침표를 찍을 무렵,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3번 고객님, 주문하신 초콜릿 케이크 나왔습니다, 그리고 가격은 미스터 밸런타인 점장님께 고맙다고 하시면 지불된 것으로 하겠습니다.

침대에서 나와 탁자에 앉은 그녀에게 케익이 올려진 쟁반을 집은 기계 팔이 다가왔다.
그녀가 그것을 손을 뻗어 잡으려 하자 기계 팔은 빠른 속도로 그것을 뒤로 뺐다.

─지불하셔야죠 고객님.

“…고맙다 스티브.”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또 오세요.

초콜릿 케이크라.
가끔은 고향 생각이 난다. 많이 본 케이크의 모양…… 맞다. 인디펜던스에 탑승하기 전의 일이다. 지구에서의 마지막 생일을 맞으며 먹은 케익, 탑승하면서 가져온 전자 앨범에 케익의 사진이 있었다. 이것 저것 다 보는 스티브가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감정이 벅찼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이다 말았다.

천천히 한입 한입 먹는 그녀를 스티브는 말없이 지켜보았다.

영광스러운 우주복을 입고, 아레스 로켓에 실려 우주로 올라가는 멋진 모습을 보며 다들 부러워할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었다. 반 년 전까지도 그런 생각을 해왔었다.

최후의 생존자의 기분은, 이런 것이겠지.
슬픈 것이다.

하지만 그가 있어 기쁘다.

“스티브…….”

착 가라앉아 조금의 눈물이 섞인 목소리로 그녀가 밸런타인을 불렀다.

─필요한 거라도?

“그 행성 사진 보여줘봐.”

그가 가져온 유리 모니터에 화면이 떴다. 로라는 그것을 양 손으로 집어들었다.

“……가자.”
꿈의 행성으로.

─그래야 로라답지. 영광의 개척자……. 

 

아무도 없는 객실의 탁자 위에는 반의 반 쯤이 남은 케익이 담긴 쟁반이 올려져 있었고, 침대 위에는 그대로 펼쳐진 일기장이 있었다. 인디펜던스 호는 수 개월 간의 표류를 마치고, 드디어 새로운 도착 지점의 좌표를 향해 머리를 돌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곳. 아무것도 없는 우주 공간 속에 무언가 떠오른 것이다.

어쩌면 인디펜던스 호보다 먼저 발사된 이그드라실 호가 그곳에 이미 도착했는지도 모른다.

 

“우주선 점검부터 빨리 끝내자.”
─OK. 자가 점검 중.

로라는 오른손에 턱을 괴고 다음 보고를 기다렸다.

─야호! 모두 정상이야. 때도 안 묻었는걸.

“좋-아. 다음 명령이다. 항로 변경. 목적지는 알아서 해.”
─항로 변경. 목표, 레버리 행성.

몇 개월 만에 앉아보는 인디펜선스 호의 조종실. 로라 데이티 에설테인 선장은 조작 패널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녹색 스위치를 켰다. 인디펜던스 호의 엔진이 푸르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측면 엔진 표시등이 켜지며 정상적으로 가동하고 있음을 표시했다. 꿈의 행성, 레버리를 향해 머리를 돌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작명은 스티브가 했다.

─로라 선장님은 핵추진 엔진 준비를 선택하셨습니다. 스티브는 다음 명령을 대기합니다.
“핵융합로 가동률 증가. 핵추진 엔진 가동 시작.”

우주선의 뒤쪽 끝 부분에 위치한 핵융합로. 지금은 더 밝게 타오르고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푸른 빛만이 감돌던 엔진은 이제 그것을 내뿜으며 우주선을 꿈을 향해 내달리게 해줄 것이다.

“최대 속도 진입 후 엔진 차단.”
─예약되었습니다, 선장님.

“자, 수소 연료 상황 보고해봐.”
─적당해. 착륙할 때 쯤 될 때까지 다 쓸 수 있어. 그때부턴 원자로를 쓰면 되니까 걱정 마.

“그럼 목표 행성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말해줄 수 있어?”
─음, 관측 결과 대기압와 온도가 딱 맞아. 대기 분포 역시 적응실에서 몇시간 있다가 가면 살 수 있을 정도. 식물같은 생명체도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확실한거야?”
─물론이지.

“좋아. 더 해야 하는 거 있어?”
─남은 케익을 해치우는 일. 그리고 도착할 때까지 우주선 생활을 즐기는 일이지.

“그거야 쉽지.”

 

벌써 점심 후로 네 시간이 흘렀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할 일이란 얼마나 좋은 것인가! 우주선 곳곳을 쓸고, 식량도 싸 놓고, 햄스터 밥도 주고, 일기도 쓰고, 핵융합로 구경도 가고, 착륙 후에 지을 집도 구상해보고…….

특히 마지막 것은 즐거운 것이어서, 그 시간들 중 두시간을 해치웠다. 스티브가 도와준다면 금방 끝나버리겠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구상이 끝나고 오류와 문제점을 지적 받는 것이 가장 비효율적이니까(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로라는 과거에 목숨을 잃은 동료들을 위해 기도하고, 지구를 위해 기도하고, 미항공우주국을 저주하고, 가족을 위해 기도했다. 그 후에 오랫동안 암흑 속에 남겨 뒀던 동료들의 방마저도 깨끗하게 청소했다.

힘을 쓰고 나니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이제 저녁 때가 온 것이겠지.

─고객님, 저녁 드세요.
“귀신같이 알아맞추는군.”

─저희는 고객님의 마음에 민감하거든요.

아마 스티브의 센서는 로라의 위장이 꿈틀거리며 내는 소리를 들었으리라. 평소보다 더 빠르게 먹는 저녁이었지만, 배고플 때 먹는 밥이 제일이다. 한가지 안 좋은 점이 있다면 채식이라는 것.

물론 이제는 익숙해서 아무렇지도 않다.

이렇게 안정된 모습을 보이는 그녀였지만, 요즘 들어 부쩍 살이 빠져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홀로 남은 우주 비행사로서 이런 현상은 당연한 것이리라.

그녀가 테이블에 앉자, 언제나처럼 메뉴를 선택하라는 말과 함께 기계 팔이 유리 모니터를 집은 상태로 다가왔다.

“포크 컨틀릿, 불고기 버거, 콩밥……. 와, 콩밥은 빼고 이런 것들 다 어디서 난 거야?”
─보존 식품의 힘이지. 계란은 어쩔 수 없었지만.

“이미 다 먹지 않았어?”

적재량은 제한되어 있고 오랜 세월이 흘렀다. 결국은 가장 효율적인 식물밖에 남은 것이 없을 텐데.

─우주선에 비축된 것은 다 먹었겠지. 하지만 예전에 대원들 소지품을 뒤져 보니 이런 것들이 있더라고. 많지는 않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자, 골라.

“대견한데. 이런 것까지도 다 생각해 주고.”

─스페셜 이벤트가 없는 인생은 지루하잖아.

그 말과 동시에 푸짐하지는 않지만, 오랜 만에 보는 음식이 담긴 쟁반이 다가왔다.

“고맙다.”

─지불되었습니다, 고객님. 맛있게 드세요.

 

우주 비행사는 참 안 좋은 직업이다. 연봉이 높아서 뭐하는가. 우주선에 돈 따윈 필요하지 않은데. 별 구경도 하루이틀이지, 몇 년동안 태양과 별을 끼고 살면 그저 그렇다. 우주의 신비는 지루함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매일같이 놀아도, 장난스러우면서도 성실한 스티브는 그녀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 화가 나도 똑똑한 그로서는 그녀와 싸우지 않는다. 역시 철저하게 계산적이고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컴퓨터 두뇌의 힘이다. 그렇게 보면 인간의 머리는 참 어리석다. 감정에 얽매여 파멸을 자초한다니.

그래도 인간의 창조성 하나는 봐 줘야 한다. 기계는 효율적인 것만 알지, 멋진 건 모른다. 기계만이 지배하는 세상은 딱딱하고 차갑다. 그러니 그 둘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

먼 미래에는 아마 그렇게 되겠지.

어느새 저녁 식사는 아쉽게도 끝이 나고 말았다. 더 먹고 싶긴 하지만 아낄수록 오래 먹을 수 있다. 물론 일정은 스티브가 다 짜 주겠지만.

─뭐 해?

다용도 테이블을 청소하고 종이에 무언가를 그리고 있는 그녀에게 스티브가 물었다.

“깃발이야. 착륙하면 제일 먼저 땅에 꽂아야지. 우리는 자랑스러운 지구에서 온 인류다! 라는 걸 알려야 하니까.”

스티브는 인간의 예술성을 보며 감탄했다. 그로서는 깃발을 쓰겠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을 뿐더러, 독창적인 디자인 없이 지구의 좌표와 같은 구체적인 정보를 제시했을 것이다. 역시 인간이다.

─3개월이라고 해도 꽤 긴 날들인데, 벌써 그런 거 다 해버리면 다음 달에는 어떡하려고?

오래 생각하지 않은 채 로라의 입에서는 즐거운 단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영화를 찍을 거야. 제목은 스티브와 로라의 우주선 생활. 스토리 구상도 벌써 이루어지고 있다고. 그 후에는 레버리 행성의 생태 다큐멘터리도 만들어 보고.”

오랜만에 즐거운 모습. 보기 좋았다. 스티브는 뿌듯했다.

─있잖아 로라.
“음?”

즐겁게 작업에 몰두하는 그녀를 지켜보던 스티브가 갑자기 말했다.

─내가 인간이었다면 너와 결혼하고도 남았을 것 같지 않아? 우리 사실 사랑할 수 밖에 없잖아.
“닥쳐 스티브. 네 양자 두뇌는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건 알지만.”

그녀가 작업하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네 이름은 로라 데이티 밸런타인이야.
스티브는 그 말을 끝내자 마자 폭소를 터트렸다.
그의 웃음이 사그라들 즈음, 얼굴이 벌개진 로라는 당황한 채로 서랍을 뒤적였다.

“지… 지금 연료 채우러 가야지.”

─왜이리 서툴러? 이미 다 끝냈잖아? 미스 밸런타인.
또한번 스티브의 폭소가 터져나왔다. 로라는 굳은 채로 필기구를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기쁘다. 그와 있어 기쁘다.
그녀의 마음 한 구석에서 두둥실 떠오른 생각이었다.

꿈을 향해 다가가는 인디펜던스 호.

밝다. 세상이 밝다.
우주는 생각처럼 그렇게 어두운 곳은 아니다.
그렇듯이, 그 다음 날에도, 인디펜던스 호의 아침은 빛날 것이다.

영원히.


-[고독한 인디펜던스 호, 한 사람이 있었지.]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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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도 있는데, 외전은 전자책 버전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자책 버전은 오타등이 모두 정리되어 있습니다.

(끼워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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