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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퓨전
소원


-1

 사고싶었다. 저 요정이. 광고에서 판매하는 저 요정이. 애당초 TV에서 저런 것을 판다는게 이상하지만, 아무래도 요정에게 인권같은 건 없는 것 같다.

 요정에 대한 구매욕구는 하늘을 찌를 기세였다. 하지만 요정의 가격이 만만치가 않았다. 30억이라는 돈이 어디서 나오겠는가. 난 씻지도 않아 부스스한 머리를 한채로 광고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 30억원은 아무래도 비싸죠! 그.래.서! 저희가 특별한 조건을 제시하겠습니다! ]

 그리고 TV밑에 떠오르는 문구. 난 곧바로 핸드폰을 들어 전화했다. 전화가 왔다는 소리를 들었는지, 판매원이 음흉하게 웃었다. 괜시리 섬뜩했지만, 이런 조건에 요정이라면 내가 아닌 다른사람이라도 샀을 것이다.

 "네, 네. 네.. 네, 아 네. 그럼 점심때 가겠습니다. 네. 수고하십쇼."

 상담원은 내게 몇가지 말을 한 뒤, 어느 건물로 오라고 말했다. 보통 상담원들은 여자가 하는 것 아니었나? 왜 남자가 전화를 받은건지 내겐 의문이었다.

 난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거울을 보니 웬 벌레가... 나다. 머리를 감고 양치를 하면 그 날의 준비가 끝난다. 책상 앞에 앉아 책을 편다. 책꽂이에 걸린 책들은 전부 행정고시 관련 책들이다... 솔직히 5년이면 짧은 시간도 아니고, '올해엔 붙겠지' 하는 생각으로 시험을 볼 뿐이다. 하지만 1차에서 붙은 적이 없었다. 난 그냥 재능이 없었다. 그래서 2년 전부터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이런 시험은 아무리 준비해도 가망이 없었다. 부모님에게 "못하겠다"고 말하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건지 몰라서, 고시준비는 해야했다.

 "과장님? 저 오늘 조금 일이 생겨서... 네, 네... 네? 내일부터.... 네. 감사했- 아."

 휴대폰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던 자리의 과장님에게 전화했다. 아르바이트하던 아홉 달을 내내 출근하고도 단 하루의 휴가조차 없었던 알바자리에서 하루만 빼달라고 했더니 잘려버렸다. 더러운 과장새끼.

 12시까지 공부를 하고 양복을 입었다. 편한 복장으로 오라고 했는데 양복을 입고 간다니 모순이다. 하지만 남들에게 잘보이고 싶은 욕망은 모두의 공통사항이다. 구두를 신고, 집에서 나갔다.


-2

 죽는 게 조금 일찍 당겨질 뿐이다... 무엇보다 소원만 빌 수 있으면 그런 것 따위 소용없다. 수명을 늘려줘! 라고 소원을 빌면 끝이니까! 그렇다. 내가 사려는 요정은 딱 한 번 원하는 소원을 빌어주는 요정이다. 뭐, 소원을 빌면 요정은 죽지만 애당초 그것들은 판매하는 '상품'이다. 목숨따위 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실례합니다... 홈쇼핑 광고 보고 왔는데요."

 TV에 적혀있는 주소로 가보니 거대한 건물이 하나 있었다. 건물은 통채로 한 회사가 관리하는 것 같았다.

 "아, 3층으로 가시면 됩니다."

 여직원의 말을 따라, 난 엘레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 3층에 도착하자 엘레베이터문이 열리며, 나처럼 양복을 입고 온 사람들이 몇 명 보였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뭐가 부유해보였다. 커프스 단추도 보통으로 도금한 게 아니라 보석이 박혀 있었고... 그냥 장난아니었다. 옆에 있던 (1층에서와는 다른 생김새의)여직원이 말했다.

 "저기 의자에 앉으세요."

 난 부유해보이는 사람들과는 다른 좌석에 앉았다. 과연, 저 사람들은 진짜로 30억을 주고 요정을 사는 거였고, 난 목숨을 팔고 요정을 사는 거였으니. 좌석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새벽씨? 이쪽으로 오세요."

 여직원이 날 이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병원의 진찰실처럼, 의사 가운을 입은 남자가 의자에 앉아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난 맞은 편 의자에 앉았다.

 "주민등록번호랑 학력 좀 알려주시겠어요?"

 "아... 841231에, 2416632. 학력은... H대 행정학과 졸업이요."

 "흠흠. 생일이 얼마 안남으셨네. 요정을 사러오신거 맞죠? 나머지 인생으로."

 "네. 근데 이게 진짜 가능해-"

 "쉿! 그냥 이렇게만 알아두세요. 일주일 뒤 당신은 죽습니다."

 남자는 키보드를 두드리더니 책상 속에서 유리병을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요정은 잘 도망가니까, 밖에서 열지 마세요."

 투명한 유리병 안에 손만한 크기의 요정이 있었다. 동화에서 보던대로 보라색의 나비 날개와 어린 여자아이의 몸이었다. 남자가 서류와 볼펜을 내밀었다. 사인하라는 소리였다. 난 서류를 보지도 않고 사인하며 말했다.

 "저... 근데, 어떻게 죽나요?"

 "죽는건 몸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몸은 저 여직원분처럼 저희 회사를 위해 사용됩니다. 각서에도 그렇게 적혀있고요. 뭐, 그런 이유로 수명을 늘려달라고 하면 손해보는셈이니 절대 그런 소원은 빌지 마세요."

 흐음, 예상외였다, 하지만 이런 썩은 인생따위, 죽어도 별 미련이 없었다. 게다가 그 뒤의 일은 내가 알 바 아니었다. 난 그냥 사인하고 유리병을 든 뒤 방에서 나왔다. 복도에 앉아있던 양복 차림의 사람들이 내가 든 유리병을 똑바로 쳐다봤다. 난 그들을 무시하고 엘레베이터에 탑승했다.

 유리병을 슬며시 들여다보니, 요정이 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요정에게 내 목숨을 팔고 널 샀다고 말하면, 이 녀석은 과연 믿을 수 있을까? 한낱 어린 미물이 그런 말을 이해한다는건 꿈에 가까웠다. 유리병을 가방에 넣었다. 요정을 보고 있으니 지금의 내가 너무 비참해보였다. 이유는 모른다.

 건물을 나서자 거리에 검은 밴이 상당히 많이 주차되어있었다. 밴 속을 슬쩍 들여다보니 대머리의 우락부락한 남자들이 앉아 있어서 아주 섬뜩했다. 난 평소보다 빨리 걸었다. 밴에 달린 사이드미러를 보자 내 뒤로 두 명의 거한이 날 미행하고 있었다. 분명 이 유리병이 탐났기 때문인게 분명했다. 난 올림픽에서 1등을 할 기세로 더 빨리 걸었지만 거한들은 포기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하는 수 없이 달렸다. 늘어선 밴들의 사이드미러로 거한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녀석들도 날 따라 뛰고 있었다. 갑자기 너무 무서워져서 울었다. 거한들과 나의 거리가 점차 좁아지면서, 내 어깨에 그들의 손이 닿았다.

 "후... 운동선수세요?"

 "저리가! 이 범죄자들!"

 난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남자 둘을 마구 때렸다. 남자들은 아무래도 날 해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진정하세요... 저흰 경호원입니다."

 그렇구나, 경호원이었구나. 난 안도했다.

 "근, 근데 왜 그렇게 무섭게들 생겼어요?"

 "에... 그럼 얼굴을 좀 바꾸겠습니다..."

 경호원 두 명은 고개를 뒤로 돌리더니, 곧 순박한 얼굴이 되었다. 성형을 손으로 하다니... 세상이 확실히 미쳤다고 생각했다. 아직 2013년인데 저런 게 가능하다는 것부터가 좀 이상했다.

 "아, 참고로 저희들은 당신 눈에만 보입니다. 지금 쫓아온 이유는 저희가 경호원이라는 걸 숙지시키기 위함이었고, 평소엔 거리에서 조용히 지켜보다가 위험한 일이 발생하면 그 때 나설겁니다. 그냥 없는 사람 취급하세요. 그럼..."

 경호원이라고 밝힌 그들은 말을 마치더니, 검은 밴으로 들어갔다. 난 어안이 벙벙해진채 혜화역으로 들어갔다.

 지하철에 타서 골똘히 생각해보니, 이렇게 사람들과 대화하지 못한 지도 한 달이 넘어서던 중이었다. 내가 백수라는 이유로 내 친구들은 오래전에 날 떠났다. 사람이란게 이렇게 무서운 존재다. 필요없는 사람은 당연한 것처럼 버려진다. 현재의 우리에게 연민이나 동정따위의 감정은 쓰레기장의 금조각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


-3

 집에 돌아왔다. 원룸이지만 넓어서 좋은 내 집. 편지가 도착해서 봤더니 핸드폰비를 안내면 일주일 뒤에 끊겠다는 내용이었다. 일주일 뒤에 죽을 사람에게 그런 유예기간을 준 건 핸드폰 회사의 실수다.

 내겐 만날 사람도, 출근할 장소도, 해야할 공부도 없었다. 난 그래서 컴퓨터를 틀었다. 요정을 사진으로 찍어서 게시판에 올릴 생각이었다. 가방에서 유리병을 꺼내 책상위에 올렸다. 책들은 그냥 방에 던져버렸다. 카메라로 유리병을 찍어서, 컴퓨터로 옮겼다. 사진엔 확실히 요정이 찍혀있었고, 사진에 글을 넣어서 게시판에 올렸다.

 '오나홀로 쓰면 딱일듯', 'ㅁㅊ년ㅋㅋㅋ 그걸 돈주고 삼?', '존니 부러움; 소원 뭐 빌거임?', '합성 존잘'...등,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난 그런 관심에 만족하며 유리병을 열어 요정을 꺼내보기로 했다. 요정은 유리병에 가만히 앉아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뭐야, 안도망치네."

 난 손가락으로 요정을 건드렸다. 생각보다 약하게 건드렸는데, 요정은 무슨 어퍼컷이라도 맞은 것마냥 아파하는 표정을 지었다.

 "미안. 이라고 해도 넌 못알아듣지 참.... 배고프냐?"

 요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못알아듣는 줄 알았더니 예상외로 지능이 있었다. 근데 난 이 녀석이 뭘 먹고 사는지 도통 알 길이 없었다. 결국 그 회사에 연락을 해보기로 했다.

 회사에서의 답변은 너무 냉정했다. 어차피 밥을 안먹어도 일주일은 살 수 있으니 그냥 소원만 빌면 된다는 식이었다. 난 밥통에서 밥알을 꺼내 유리병 속으로 넣어보았다. 요정은 이내 잘 먹었다.

 "잘쳐먹네. 아, 잘 먹네."

 요정을 놔두고, 난 선반에서 3분 카레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데웠다. 늦은 점심을 카레라이스로 때우자 확실히 무료해졌다. 이제 소원을 빌어야한다고 생각했다. 요정은 유리병에서 나와 페이퍼 크래프트로 만든 소파에 앉아 있었다.

 "너 말은 못하는 것 같고, 글씨는 쓸 줄 아냐?"

 난 샤프심과 종이를 내밀었다. 샤프는 요정이 쓰기에 너무 컸다. 요정은 종이에 뭔가를 쓰는 게 아니라 뭔가를 그리고 있었다. 그림은 애들이 그린 것처럼 아주 조잡했지만, 난 신경쓰지 않았다.

 종이엔 웬 집의 모양이 크게 그려져 있었고, 그 안에는 날개달린 사람(아무래도 요정인 것 같았다)들이 작은 요정들을 떠나보내며 울고 있었다. 작은 요정들이 병안에 들어있는 것으로 보아, 이 요정도 같은 운명을 겪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뭐야... 이봐, 난 널 내 목숨으로 샀다고. 밥값은 해야지. 아, 미안. 미안, 울지마."

 따지는 말투로 말하자 요정이 울었다. 쓸 데 없이 화가 났다. 내가 왜 이런 미물한테 사과해야하지? 난 겨우겨우 벌어먹고 살면서, 일말의 동정도 받지않고 꿋꿋하게 살아왔는데, 어째서 이 요정은 나처럼 강하지 않은건가.....는 너무 당연한 일이다. 어린애가 그런 걸 이해할리가 없잖은가. 이런 일로 내 화를 복돋우는건 좋은 일이 아니었다. 난 냉장고에서 추파춥스를 꺼내들었다.

 "이, 이거 먹고 뚝하자. 응?"

 사탕을 감싸는 비닐을 뜯어내고 요정에게 내밀었다. 확실히 어린애들처럼 요정은 뚝 그치며 사탕을 핥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딸기맛이지만 아무렴 어떠랴, 200원은 방구석에 충분히 굴러다니고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 지 감이 잘 서지 않았다. 통장에 300만원이 있으니, 이걸로 여행이라도 다녀야할까.


-4

 [ 딸, 집엔 언제오니? ]

 "음... 다음 주에 갈게."

 [ 그래, 요즘 니 얼굴을 못봐서 아빠 표정이 말도 아니다. ]

 "아빠한테 딸은 잘 지내고 있다고 전해줘. 악!"

 여섯 달만의 통화를 요정이 망쳤다. 단것을 집어삼키더니 애가 방안을 온통 헤집고 있었다.

 [ 집에 누구 있어? ]

 "아니, 아무도 없어. 책에 발가락이 낑겨서."

 [ 그래... 그나저나 너 선볼래? ]

 "뭔 선..."

 [ 수원사는 남자인데, 집이 잘 살아서 빌딩도 하나 가지고 있고, 남자도 잘 생기고 성격도 좋대! 네 사진 보여주니까 좋아하던데? ]

 이런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니, 하늘이 노할 일이었다. 난 헛된 망상을 품고 있는 남자의 꿈을 짓밟아줄 생각을 하며 날짜를 물어봤다.

 "그래... 그럼 선은 언제 봐?"

 [ 모레. 괜찮지? 그 날 알바안해? ]

 "엉. 남자한테 내 번호 알려드려."

 그 뒤 잡담이 이어지다가 전화를 끊었다. 여행 계획도 이걸로 무산인가... 책상 앞에 앉자마자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계세요~? 새벽아 나야~"

 난 요정을 잡아채 유리병에 처넣은뒤 뚜껑을 닫고 가방에 넣어버렸다. 들키면...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알 수 없었다. 목소리의 정체는 짐작하기 쉬웠다. 난 문을 열어주었다.

 "에, 니가 웬일이냐."

 "보고싶어서 왔지! 그 동안 잘 지냈어?"

 항상 대학동기들과 모여서, 다른 동기를 마구 뒷담하는 성질 더러운 년이었다. 이름은 손세하. 난 이 녀석이 다른 친구들 사이에서 내가 '잘 안 씻고 패션센스도 없는' 애라고 놀렸던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다른 욕들을 마구 해댔겠지. 그 뒤로 믿었던 친구들이 내게 등을 돌려 손세하에게 붙는 건 한순간이었다.

 "아... 뭐. 그냥 그래."

 "그러네- 행정고시는 잘 되가?"

 "그것도 그냥 그래. 아니 그보다 정말 웬일이야?"

 손세하는 내게 절했다.

 "그동안 미안했어! 다, 다시 친하게 지내면 안될까?"

 "무슨 소리야 갑자기?"

 "사실 나, 그 때 이후로 믿을만한 친구가 없어져서..."

 대충 손세하의 말은 이랬다. 8년 전 날 왕따시킨 이래로 친구들이 자기도 왕따시켰다는 소리였다. 이건 절대로 거짓말이었지만 난 속아주기로했다. 이렇게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내게 뭔가를 원하고 있을 것이다.

 "알았으니까, 용건만 간단히."

 "나 200만 꿔 줄 수 있어?"

 적은 돈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200만원을 빌려주면 안 갚을게 뻔했다.

 "계좌번호. 내일 넣어줄게."

 손세하는 좋아하면서 내게 계좌번호가 담긴 메시지를 넣었다. 난 메시지를 확인한 뒤 그녀를 보냈다. 가방에서 유리병을 꺼내들자 요정이 화를 내고 있었다.

 "미안, 친구가 널 보면 안될 것 같아서."

 이 때 문이 다시 열렸다.

 "맞아, 새벽아, 이거 주고 가려고 했- 그게 뭐야?"

 "아."

 난 경직되고 말았다. 손세하는 가까이 다가와 유리병 속의 요정을 보며 말했다.

 "이...이거, 홈쇼핑에서 팔던 그거 아니야?"

 "어어.... 응."

 "완전 신기하다! 30억이 어디서 났어?"

 "그냥 뭐,"

 능숙한 손놀림으로 뚜껑을 열더니, 요정이 날아서 유리병을 빠져나왔다. 손세하는 그것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러더니, 요정을 붙잡고는 날 밀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넘어진 나는 몸을 추스르고 방에서 나왔다. 이미 손세하는 거리를 질주하고 있었다. 마구 달리던 나는 결국 손세하를 놓치고 말았다. 더불어서 요정도 잃고 만 나는 거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소원도 못빌고 이렇게 끝나버린 것이다. 내 인생이.

 "요정 간수 잘하세요."

 "에? ...아아."

 거의 초주검이 되어버린 손세하를 질질 끌며, 경호원이 내게 요정을 건네주었다. 요정은 내 손바닥에 앉아 지긋이 날 응시했다.

 "이 여자는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든 해버리세요."

 경호원들은 손세하를 가로등에 앉혀놓더니, 이내 핸드폰으로 누군가를 부르는 것 같았다. 난 요정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소원을 빨리 빌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5

 집에 돌아온 다음엔 하릴없이 게임을 했다. 그래... 난 롤을 내 힘으로 다이아 2단계까지 올라가 본 여자다. 사람들은 내가 여자라는 것도 모르고, 그냥 잘하는 정도로만 알고 있을 것이다.

 -레드믹 : ㄷㄷ 님들 뉴스 봄?-

 게임을 하던 도중에 웬 뉴스타령인지 모르겠다. 이런 것들은 행정고시에 다섯 번이나 떨어진 나보다도 쓰레가같은 녀석들이다. 게임에 집중을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레드믹 : 한글이 세계공용어됨;-
 -옆집할머니 : ㅈㄹㄴㄴ-
 -레드믹 : 레얼임... 뉴스좀 쳐보셈-

 헛소리도 저런 헛소리가 없었다. 30분 뒤 우리 팀은 이겼다. 레드믹이라는 녀석은 처음부터 끝까지 세계공용어 타령을 하고 있었다. 말투가 너무 진지했기 때문에 결국 TV를 틀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뜬금없는 제안에 세계 정상들 전부 수긍, 한글의 과학성을 인정하여...-

 분명히 저건 소원이었다. 누가 벌써 소원을 빈 것이다. 키보드 위를 거닐던 요정이 어느새 마우스에 앉아서 울고 있었다.

 "야, 또 왜 울어. 허, 참."

 요정은 이윽고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당황한 나는, 요정이 먹다만 사탕을 내밀어봤지만 아무래도 금방 울음을 그칠 것 같지가 않았다. 이럴 땐 시간이 답이었기 때문에 난 그냥 TV나 계속해서 보기로 했다. 그러던 중 문득 생각이 들었다. 저 녀석은... 친구가 죽은 것을 알고 우는 것 같았다. 아니, 어떻게 안거지?

 그런 요정을 보고 있으니 고등학교 시절, 차에 치여 죽은 내 친구가 떠올랐다. 중학교때부터 알고 지내며 같이 통학하던 사이였는데, 막상 죽었다고 생각하니 쉽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난 다른 친구들과 함께 그 친구의 장례식에 갔었다. 친구들은 모두 울면서 그 녀석의 이름을 불렀는데, 난 울지도 않았고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다. 무표정하게 절했다.

 "새벽아, 넌 슬프지도 않아?"

 "몰라."

 절을 하고 부의금을 넣은뒤, 우린 편육만 조금 먹다가 장례식장을 나갔다. 술은 아직 마실 수 없었을 때라 취하거나 하진 않았었다. 나만 빼고 다른 친구들이 모두 슬퍼하는 기색이었다. 문제는 가장 슬퍼해야 할 내가 울지도 않고 너무 무덤덤했다는 것이었다.

 다음 날 아침, 난 너무나도 당연하게 교복을 입고, 가방을 매고 그 녀석의 집 앞으로 갔다. 웬지 집에서 그 녀석이 평소처럼 웃으면서, "야 이새벽, 니 좀만 늦게 오면 안되냐?"라고 말하면서 나올 것 같았다. 그리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잡담을 늘어놓으며 학교까지 갈 것 같았다. 혼자서 학교를 가는게 너무 어색했다.

 과거사는 이쯤 해두고... 한글 공용어에 이어서 다음은 뭘까. 대체 그 미친 갑부들이 무슨 소원을 빌게될지 새삼 궁금해지고 있었다. 요정에겐 미안한 소리였지만.

 요정은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날 바라봤다. 내가 소원을 빌면 이 녀석은 죽는다. 이 녀석은 지금 그것을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요정이었다면 분명 도망쳤을 것이다. 하지만 도망쳐도 경호원에게 금방 잡힐 게 분명하니, 요정은 애초에 단념한 것 같았다.


-6

 월요일 아침은 쏜살같이 찾아왔다. 손세하 이후로 몇 달간 아무도 노크하지 않던 집문을 누군가가 노크했다. 난 노크소리를 듣고 일어나며 말했다.

 "네에.... 들어오세요오... 으힉! 깜짝이야..."

 "아, 놀라셨습니까. 주무시고 계신데 죄송합니다."

 경호원 두 명이었다. 이들은 항상 둘이서 행동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여길..."

 "저희가 출장을 좀 가봐야할 것 같아서요."

 "출장이라뇨?"

 "요정을 회수하러 갑니다. 보통은 밤에 하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회수?"

 "음, 이걸 말씀드려도 될련지 모르겠지만... 대충 말하자면, 요정을 소지하신 분이 소원을 빌지 못한 상태로 죽거나 극심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저희가 요정을 다시 회수하러 가야합니다. 자그마치 30억이니까요."

 "아아."

 "그런 이유로 오늘은 저녁까지 보호를 해드릴 수가 없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어제처럼 도둑맞으시면 곤란해집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난 이들을 미행해보기로 했다. 회수라는 걸 어떻게 할지도 궁금했지만, 저 신비로운, 내 눈에만 보이는 경호원들이 평소엔 어떨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경호원들이 나가자마자 난 잽싸게 런닝복으로 갈아입은 뒤 그 위에 코트와 목도리를 걸치고 가방에 요정을 넣은채 밖으로 나왔다. 아직 경호원들이 보여서 다행이었다. 부스스한 머리를 빗으로 대충 빗어가며 난 그들을 따라갔다.

 집 밖으로 나오니 세상이 미쳐가는게 확실히 보였다. 흐린 하늘에서 눈이 오긴 커녕 오만원짜리 지폐가 내리고 있었다. 내가 보는 두번째 소원이었다. 사람들은 이삭줍기라는 그림의 여인들처럼 죄다 허리를 굽힌채 떨어진 돈들을 줍고 있었다. 난 그게 이상하게 무서웠다. 경호원들을 따라 지하철까지 탑승한 나는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그들을 관찰했다. 그들은 주위를 둘러보지도 않고 있었다. 대단한 무신경함이라고 생각했다.

 우린 서울의 동쪽 끝자락인 양원역에서 내렸다. 중앙선인데도 사람이 거의 없었고, 난 구리와 서울 사이에 이런 시골이 있을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양원역을 나오자 남자고등학교가 보였는데, 근처에 있는 다른 여자고등학교들에 비해 생긴게 딱 교도소같았다. 남자가 다니는 빌딩이라고 투박하게 짓고, 여자가 다니는 빌딩이라고 세련되게 짓는 건 늙은 사람들에게 상식으로 자리잡은 것 같았다. 주식회사라고 무조건 딱딱하게 짓는 사람들에게 뭘 기대하는건가. 나는.

 "저희가 회수하는 것을 보고 싶으신건가요?"

 "옴마야앗! ...들켰네요."

 경호원들이 어딘가로 사라졌다 싶더니만 내 뒤에서 나타났다. 난 화들짝 놀라고말았다.

 "아니,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습니다. 보고싶으시면 따라오시죠."

 결국 미행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렇다고해서 경호원들의 태도가 바뀐 건 아니었다. 우린 역의 건너편에 위치한 언덕을 넘었고, 곧 강렬한 소똥냄새와 함께 시골같은 풍경이 나타났다. 작은 규모의 배나무 밭과 비닐 하우스... 모두 시골에서나 보던 것들이었다. 우린 웬 초가집에 도착했고, 경호원 한 명이 대문을 두드렸다.

 "사람이 죽었는데 대문을 열어주겠어요?"

 "잘 보시기 바랍니다."

 대문은 열렸다. 상당히 놀라웠다. 대문을 연 사람은 노인이 아니라 20대쯤 되어보이는 남자였다.

 "응? 뭐야 당신들은."

 남자는 경호원들을 볼 수 있는 것 같았다. 상당히 신기했다.

 "요정을 회수하러 왔습니다."

 "그... 그런 거 없어!"

 뚱뚱해보이는 남자는 그대로 대문을 쾅 닫아버렸다. 난 살짝 소리에 놀라고 말았다.

 "후..."

 결국 남자와 얘기하던 경호원이 대문을 발로 뻥 차버렸다. 대문이 너무나도 쉽게 열리자 건너편에 있었던 남자가 흠칫 놀라며 당황했다.

 "아니 이, 이 새끼들, 들이... 주, 주거침입, 입죄로 신고한, 한다? 어?"

 경호원 둘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남자에게 걸어갔다. 당황한 남자는 집으로 들어가 문을 잠궜지만, 그것은 경호원들을 얕본 것이었다. 대문도 발차기로 열어버린 경호원에게 쇠고리가 채워진 집문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으아악! 꺼져! 꺼지라고!"

 집에서 남자의 비명이 들렸다. 난 안에 들어가보기로했다. 집은 거실을 입구로 오른쪽에 복도가 있는 묘한 형태의 구조였다. 난 남자가 있을 곳으로 가보았다.

 "저희 회사의 규칙에 따라, 귀하는 제 1082조 37항에 의거하여 처벌을 받게 됨을 알려드립니다."

 "꺼, 꺼져! 나한텐 요정이 있어! 늬들따위 한방에 죽여버릴거야!"

 방에는, 구석에 처박힌채 썩은내를 풍기기 시작한 노인의 시체 두 구가 있었다. 그 옆에 들어찬 책상위에 뭔가 이상한 옷을 입은 요정 두 명(?)도 보였다.

 "설마... 노인들을 팔아서 요정을 산건가요?"

 내가 물어보았다. 남자는 화를 내며 말했다.

 "그, 그게 뭐, 가 어때서! 어차피 뒤, 뒤질 새끼들이었어!"

 뒤질 새끼들이라니... 그 전에 저건 몸이 죽은 것 아닌가? 의문점이 한두개가 아니었다. 냄새가 하도 역해서 난 거실로 나왔다. 거실 바닥을 보니 조금 심하게 다룬듯한 종이 상자가 보였다. 셀로판 테이프로 붙여진 쪽지는 노인들이 남자에게 얼마나 헌신적이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냄비 안에 감자 쪄놨으니까 꺼내 먹어-
 -그리고 어제 니가 말했던 인형이다-

 저 남자는 한낱 미물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불연성쓰레기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안도감이 들었다. 난 무의식적으로 내 인생을 이 남자와 비교해보고 있었다. 윗사람과 비교해서 박탈감을 느끼기보단, 아랫것들과 비교해서 안도감을 즐기는 것이다.

 방에선 몇 차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남자가 신음을 내며 쓰러지는 것 같았다. 경호원이 각각 한 명의 요정을 들고 방을 나왔다. 요정의 옷이 상당히 압권이었지만 거론하지 않기로 했다. 내 가방 속에 있는 요정보다는 차림새가 나았기 때문이다.

 "남자분이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를 팔아서 요정을 얻어냈더군요. 그런 놈들은 매가 약입니다."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는 남자는 복도로 나오며 입으로 웬 일본어를 중얼대고 있었다. 이 남자는 아무리 봐도 하는 짓이 중증 오타쿠같았다. 요정을 인형취급하면서 마음대로 가지고 놀고, 그런 것 때문에 친조부모를 팔았다는 사실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기라도 하면...

 경호원 한 명이 남자를 기절시켰다. 눈을 뜨면, 남자는 요정도, 조부모도 사라지고 혼자 남은 자신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긍정적이진 않을 것이다. 사회가 돌아가는 것처럼.

 우린 강서로 돌아가던 중 헤어졌다. 저들은 혜화역을, 난 집을 가야 했으니까.


-7

 돈은 아직도 하늘에서 펑펑 내리고 있었다. 강서에만 내리는 비를 SNS로 듣고 사람들이 상당히 몰려 있는 것 같았다. 저걸 보고 있으면 돈에 깔려 죽게해줘! 같은 소원은 절대로 빌 수 없었다. 깔려 죽기도 전에 저 사람들이 전부 줏어갈테니까.

 집에 돌아가기 전에, 난 서초구에 위치한 국제전자센터에 가보기로 했다. 남은 300만원은 내가 좋아하는 일에 쓰기로 생각한 것이다. 

 "그럼, 3DS XL 본체하고, 포켓몬스터 X, 젤다까지 더해서... 총 34만원입니다. 고맙습니다~"

 게임기를 샀다. 사실 세 달 전, 포켓몬스터 광고에 나오는 님피아가 너무 귀여워서 게임기를 살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다. 그 놈의 아르바이트가 내 발을 묶고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지만... 이젠 아니었다.

 집으로 슬슬 걷고 있으니,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지만 받기로 했다. 난 전화에 상당히 굶주려 있었다.

 [ 여보세요? ]

 "예, 누구세요."

 [ 새벽아 나야. ]

 목소리는 낯익었지만, 여자들 목소리가 다 거기서 거기인지라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누구더라? 기억이 잘 안나는데."

 [ 너의 친구, 너의 수호신, 널바라기! ...진짜 몰라? 실망이다? ]

 널바라기라니... 친한 녀석이라면 때릴 것이다.

 "음... 김혜진?"

 [ 걔 말고. ]

 "이민지?"

 { 걔도 아닌데. ]

 "이예지?"

 [ 아니야! 잘 좀 맞춰봐 인마. ]

 "홍정민?"

 [ 에효... 권은화! ]

 "아, 발음하기 힘든 이름이네."

 난 권은화를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발음하기 힘든 이름'과 '꿔누나'가 그녀의 별명이었다.

 [ 그래. 요즘 뭐하고 지내냐? ]

 손세하에 이어서, 권은화도 고등학교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연락한 적이 없었다. 사실 몇 번 얼굴 마주칠 기회는 있었겠지만 나 아니면 그녀에게 사정이 꼭 생겼기 때문에 만난 적이 없다고 봐도 되었다. 고등학교 땐 큰 체격으로, 항상 날 귀여운 눈으로 바라보며 보디가드를 자처했던 그녀였다.

 "그냥 대충 살아. 너는?"

 [ 나도 당연히 대충 살지! 너 행정고시 준비한다면서? ]

 "에... 어. 그나저나 웬일이냐. 10년만에 이렇게 연락이 닿고."

 [ 갑자기 보고싶어져서. 어디서 좀 만날래? ]

 뭔가 이상했다.

 "아니... 좀 바빠."

 [ 그럼 너희 집으로 갈게. 괜찮지? ]

 "그렇게 만나고 싶어?"

 [ 으응... ]

 "왜?"

 [ 사실 만나면 말해주려고 했는데... 나 수요일에 죽는대. ]

 "뭐래, 요즘은 죽는것도 요일까지 정해주냐? 헛소리하면 그냥 안만날거다."

 [ 아, 아니야 새벽아! 사실 나, 홈쇼핑에서 파는 요... 요정 샀어, 돈이 없으니까 목숨으로. 그, 그래서 오늘 소원 빌었어. ]

 나와 같은 쓰레기는 한 명이 아니었다. 수화기 너머로 그녀가 우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소원 빌었는데."

 난 망설이다가 물어보기로 했다. 휴대폰을 든 내 손이 떨리고 있었다.

-8

 

 [ 만나서, 얘기하자. 나 지금 양재쪽인데, 어디야? ]

 

 "남부터미널역."

 

 [ 가깝네! ]

 

 우린 근처에 있을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돈 눈을 헤치고 카페에 도착하자, 저 멀리서 한 남색 코트의 여자가 몸을 덜덜 떨면서 가만히 앉아있는게 보였다. 여자라고 보기에는 조금 큰 체구, 권은화였다.

 

 난 일단 점원에게 주문하기로 했다. 테이블 위에 아무것도 없이 멍하게 앉아있는 그녀의 모습이 워낙에 초라해보였기 때문에, 뭐라도 놓아야지만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타로...밀크티? 그걸로 주세요."

 

 "사이즈는요?"

 

 테이블 위에 나와있는 메뉴를 빤히 바라본다. 그리고 라지와 점보가 있다는 것에 안심한다. 사이즈 정보가 없었더라면 멍청하게 "스...스몰!" 이랬을테니.

 

 "하나는 라지, 하나는 점보요."

 

 "펄은 넣어드릴까요?"

 

 "안넣은걸로."

 

 "네, 앉아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리고 나서야 나는 권은화의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고등학생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나에 비해, 그녀는 어디 하나 달라진 곳이 없었다. 단발에 붉은 이어폰과 붉은 뿔테의 안경을 쓰고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가졌는데, 오늘은 표정이 좀 어두울 뿐이었다.

 

 "자...잘 지내니?"

 

 통화할 때와는 전혀 다른 억양이었다. 나는 살짝 당황하고 말았다. 수요일이 되서 멍청하게 돌아다닐 그녀를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냥 그렇지... 그런데 너, 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 그리고 소원은 어떤 걸 빈건데?"

 

 뭔가 따지는 식으로 말을 걸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에는 그렇게 팔팔하던 권은화가 어째서 이렇게 위축된 것일까.

 

 "소...소원 있지. 과거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빌었거든."

 

 "바보아니야?"

 

 "아, 아니야! 나, 정말로 과거에 돌아갔었어.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해서, 계속 성적이 좋았던 것도 다 그것때문이야."

 

 당췌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확실히 성적은 장난 아니게 좋았다. 여차하면 전교에서 1등이었고, 못해도 3등은 하는 녀석이었다.

 

 "정말 완벽한 삶이었는데, 수요일이면 전부 끝이라는 편지가 왔어. 요맘때쯤에 소원을 빈 게 아닌가 싶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과거로 돌아갔으면 요정을 사지 말았어야지."

 

 "맞아. 새벽아, 너 평행이론 알지?"

 

 "주문하신 타로 밀크티 나왔습니다~"

 

 "아, 잠깐만."

 

 난 자리에서 일어나 밀크티를 들고 돌아왔다. 빨대를 꽂아 권은화에게 건네자, 그녀는 마시는 듯 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모든 세계에는 요정이 있고, 그것을 파는 업체가 있어. 하지만 이 세계의 업체는, 내가 살던 세계의 업체와는 너무나도 달라."

 

 "잠깐 잠깐! 너 너무 제멋대로 얘기한다구. 설명을 좀 해줘."

 

 "....알았어. 30년도 전의 일이지. 적어도 내게는."

 

 그녀는 30여년 전의 오늘, 소원을 빌었다고 말했다. 그 소원이 '다시 살게 해달라'는 소원이었고, 그 결과 그녀는 정말로 30년을 다시 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요정을 사고나서 일주일 후인 이번주 수요일, 업체에 의해 그녀는 죽게 되는 것이다. 육체는 알아서 잘 쓰이겠지만 정신이 날아갈 테니...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녀가 말을 끝마쳤을 즈음에는, 밀크티가 이미 비고 없었다.

 

 "뭔가 나만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 같네."

 

 "그러는 자리니까 그렇지. 그럼 넌 사실 60살의 노인네인건가."

 

 "노인네는 무슨!"

 

 아직 팔팔하다고 생각했다. 30이라는 나이가. 하지만 아니었다.

 

 권은화는 마지막으로 나와 포옹한 뒤, 그대로 헤어졌다. 난 그녀에게 요정을 샀다는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 요정이 있다고 말했어도 그녀는 나쁜 짓을 할 사람이 아니었지만, 대신 나를 걱정할 것 같았다. 그런 걸 바라지는 않았다.

 

 집에 돌아오자, 뜬금없는 시간여행 이야기로 피로해진 나는 침대에 누워버렸다. 요정은 여전히 방안을 잘도 날아다니고 있었다.

 

 오늘 밤을 자고 나면, 수요일이 온다. 그리고 5일의 시간이 남는다.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걸까. 어쩌면 그냥 육체에 고스란히 갇혀서,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의 느낌을 계속해서 느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슬퍼져서 견딜수가 없었다. 왜 난 빌지도 못할 소원을 하나 얻기 위해서 내 몸을 판거지?

 

 

-9

 

 울다가 잠이 들었는지, 눈을 뜨니 해가 쨍쨍했다. 8시 34분. 너무 춥다. 12월 25일, 성탄절이 밝았지만 눈은 내리지 않았다.

 

 난 권은화에게 전화해보았다.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자정이 될 때까지 그녀는 뭘 했을까.

 

 소원을 빌기 위해서 곰곰히 생각해봤지만, 여전히 빌만한 소원은 없었다. 그 때, 누군가가 집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이새벽씨? 소원은 비셨습니까?"

 

 "아으... 아직이요..."

 

 "5일 남았습니다."

 

 그리고 경호원은 가버렸다. 부스스한 머리를 샴푸로 감아주고, 헤어드라이어에 말리며 컴퓨터를 켰다.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바꾼 사람도 있는건가... 아이콘의 이름이 '니똥꼬탐험가' 로 바뀌어 있었다. 대단하다. 이런 일에 30억을 쓰는 사람도 있다.

 

 니똥꼬탐험가를 더블클릭해 인터넷을 연다. 아니 대체 왜 이름을 이런 식으로 한 건지 모르겠다. 외국 사이트들의 언어가 서서히 한국어로 바뀌어가고, 유튜브에 나와있는 외국인들도 서툴지만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구사해가기 시작했다.

 

 뉴스에는 토익, 토플 등의 영어 자격 시험이 전부 폐지된다는 소식이 들려오며 뭔가 한국주의적인 세계로 변모해가는게 느껴지고 있었다.

 

 이게 정말 잘 하는 짓인지 의심스러웠다. 창문 뒤에서 노려보는 고양이가 싫어서 커텐을 치는 느낌이었다.

 

 권은화가 말했던 업체란, 대체 뭘까. 그녀는 30여년간 그 업체에 대해서 조사해보려했지만, 요정을 파는 지금의 업체는 설계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다고 했다. 저승에서 찾아온 사기꾼들이라도 되는건가?

 

 난 경호원을 불러보기로 했다.

 

 "이봐, 경호원 아저씨들! 거기 있어요?"

 

 "아저씨는 아닙니다만... 무슨일이십니까?"

 

 "잠깐 들어와보세요."

 

 두 명의 경호원들은 거리낌없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너무 당돌해서 놀라고 말았다.

 

 "궁금한 게 있는데."

 

 "뭐든지 말씀하세요."

 

 "당신들은 누구세요?"

 

 "저희들은 주식회사 페어리코프스에서 고용한 직원들입니다."

 

 "어떤 식으로 고용됬는지 알려주실 수는 없을테고... 회사는 뭐하는 회사에요?"

 

 "아시다시피 요정을 파는 회사입니다. 그 전에는 속옷 수출입을 주로 했었습니다."

 

 "뭐어요? 잠깐, 그럼 권은화는 어떻게 됬어요?"

 

 "누굽니까 그게."

 

 "모르쇠로 일관하지 마세요. 어제 봤잖아요!"

 

 "카페에서 만나신 분 말이십니까? 그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었는데요?"

 

 "말도 안돼."

 

 난 다시 권은화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이지?

 

 "평행세계 얘기를 하시던데, 그쪽 세계의 업체로 정신이 옮겨진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럼 이쪽 세계의 몸은요?"

 

 "잘 모르겠군요. 어떤 방식으로든 소멸하는 쪽을 선택했겠죠?"

 

 등골이 서늘해졌다. 설마, 자살한 건 아니겠지? 그럴리가 없다.

  • profile
    하얀악어 2014.05.09 13:59
    읽는 내내 상당히 몰입이 강하게 되네요!
    다만 게임으로 구현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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