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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징징이 마을

 

 

 

“역시 나온 아가씨가 최고입니다. 여로에서 신선한 달걀을 먹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제가 어릴 때는 집안이 풍족했지만, 우리 백작가에서도 이렇게 굵고 깨끗한 달걀은 처음 봤습니다.”

 

“저는 거위나 오리알인 줄, 억!”

 

퍽!

 

“나온 아가씨가 달걀이라면 달걀인줄 알아! 이 친구 눈치 없기는.”

 

나는 하인들에게 달걀과 깨끗한 물이 담긴 철 양동이를 줘서 알아서 요리하게 했다. 양동이는 설치물이 아니라서 하인들이 자유롭게 옮기고 물을 펐다.

 

마크에서는 달걀만 가지고 만드는 요리법이 없었다. 하인들은 짐꾸러미에서 꺼낸 암염을 뿌려서 달걀을 삶거나 기름에 부쳤다. 하인들은 내가 준 생 돼지고기에서 떼어낸 지방을 지져서 기름을 냈다.

 

“아공간에 코코아 쿠키를 넣어놓고 그간 깜박 잊었네요. 오늘은 후식으로 쿠키를 드세요.”

 

“와아!”

 

“나온 아가씨 만세!”

 

이틀만에 기사들은 나를 여신으로 추앙했다.

 

내가 기사들에게 선심을 쓰는 것은 목적이 있어서였다.

 

나는 일행의 경계를 완전히 무장해제 시키고 필요한 정보를 얻었다. 단순한 기사들 가운데 제법 머리를 굴리는 테일도 책사처럼 머리를 전문적으로 쓰는 타입은 아니었던지라 풍족하고 맛있는 식사와 깨끗한 물, 안전한 잠자리를 연타로 제공받고 좋은 게 좋다는 적당주의에 물들었다.

 

‘풍족하게 살아서 물정 모르고 인심 좋은 아가씨 정도로 생각하겠지.’

 

나는 기사들에게 테일의 일대기를 들었다.

 

테일은 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이자 왕국에서 둘 뿐인 소드 마스터 롬바르드 변경백에게 갔다. 테일은 롬바르드 변경백 밑에서 훈련을 받으며 기사로 성장했다. 그러다 테일이 12살 때, 그의 부모가 차례로 독살을 당했다. 복잡한 정치 상황 때문에 숙부가 섭정을 맡았다. 테일의 아버지는 무슨 낌새를 눈치 챘는지 독살 당하기 직전에 코랄 기사단을 테일에게 보냈다. 가문의 전력을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코랄 기사단은 테일이 12살에서 20살이 될 때까지 잦은 암살 위협에서 지켜냈다. 코랄 기사단과 테일 사이에는 확고한 믿음과 충성심이 있었다.

 

테일은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려 있지만, 백작위를 되찾으면 예전의 영광을 일으킬만한 인물이었다.

 

테일은 비교적 정의로운 성향이면서 현실적으로 타협을 할 줄 아는 융통성을 가졌다.

 

‘역시 테일을 좀 적당히 키우고 자리 잡도록 도와야겠어. 이런 인물을 만나기는 쉽지 않아.’

 

나와 테일은 서로 필요하니까 더 믿을 수 있었다.

 

“테일 경, 징징이 마을에서 교환, 아니 점을 친 후 곧바로 돌아가야 하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일정은 제가 결정하기 나름입니다.”

 

“그렇다면 징징이 마을 옆에서 며칠 머물러도 된다는 뜻이군요.”

 

“징징이 마을이 신기하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모나리자의 미소를 발동시켜서 잠시 침묵을 지키며 테일의 눈을 마주했다. 무언가 의미심장한 얘기를 꺼낼 전조를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테일의 눈빛이 깊어졌다.

 

“나온 양,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경청하겠습니다.”

 

역시 눈치 빠른 남자는 편했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는 지금 당장 믿을 사람이 테일 경밖에 없어요.”

 

“그리 여겨주신다니 영광입니다.”

 

테일은 감격에 벅차다는 듯이 기대감에 차서 말했다.

 

“그래서 테일 경을 돕고 싶어요. 점괘가 좋아야 테일 경의 작위가 확정될 거라면 저 역시 든든한 편이 좋으니까요.”

 

“지혜를 청하고 싶습니다.”

 

“제가 아는 방법을 쓰려면 에메랄드가 몇 개 필요한데 마침 저에게 적당히 있습니다. 부담 가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백작가에서 의탁하는 동안 호위와 숙박비로 여기시면 됩니다. 징징이 마을에 우선 테일 경과 저만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예!”

 

테일의 맑은 하늘색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초롱초롱한 그의 눈에 ‘그냥 호갱이 아니라 생각보다 거물이군!’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이 정도는 귀여웠다. 그가 염치없이 요구한 게 아니라 내가 필요해서 하는 투자였으니 아깝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에메랄드는 한 칸에 64개씩 겹쳐서 큰 상자에 가득 차도록 캤으니 딱히 아쉬울 일이 없지.’

 

저장해둔 물건들을 가지러 내 첫 집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었다.

 

‘엔더 상자와 깔대기는 역시 편리하다니까.’

 

나는 엔더 상자에 깔대기를 잔뜩 이어 붙여서 귀중품을 가득 채웠다. 흑요석과 엔더라는 몬스터를 잡아서 나오는 눈알로 만드는 엔더 상자는 상자 속의 저장 공간을 연결해 주었다. 여러 개의 엔더 상자가 마치 한 상자처럼 똑같은 물건이 들어 있었다. 그렇다고 물건을 복사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멀리서도 원본 엔더 상자의 물건을 넣었다 뺐다 할 수 있어서 편리했다.

 

엔더 상자에서 물건을 꺼내면 깔대기에 들어있던 것들이 들어와서 리필 해 주도록 만들었다. 깔대기는 철을 많이 잡아먹기는 하지만 여러모로 편했다.

 

‘저장해 뒀던 게 떨어지면 또 캐면 그만이고.’

 

나는 ‘대한민국의_흔한_게임폐인.jyp’였고 게임 속 막노동에는 익숙했다.

 

 

 

======

 

 

 

“이럴 수가! 성지가 많이 파괴되었군요.”

 

“몬스터들이 난동을 부렸던 것 같습니다.”

 

징징이 마을에 도착한 기사들은 낭패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멀리 보이는 징징이 마을은 황폐 그 자체였다. 나는 이미 사막 마을에서 폐허가 된 징징이 마을을 봤기에 덤덤했다.

 

징징이 마을은 황량하고 스산했다. 마을이 군데군데 부서진 사막 마을과 달리, 성지랍시고 찾아다닌 인간들이 쓸모없는 건물들을 옆에 지었다가 허물어진 흔적들이 널려 있어서 폐가촌 같았다.

 

‘여기는 사람이 가끔 다녔을 텐데 징징이가 겨우 4명 살아 있군. 하긴 평범한 인간들은 징징이 마을을 보수할 방법을 모를 테니 당연한 일인가?’

 

“이 마을에 울타리를 설치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다들 힘내세! 징징이들의 환심을 사면 우리 주군께 도움이 될 테니.”

 

일행은 날 따라서 성지의 관리인들을 징징이라고 불렀다.

 

기사들은 실망한 표정을 감추고 내가 꺼내는 나무 울타리를 들고 뿔뿔이 흩어졌다. 부기사단장 헨리 왈로우는 나에게 미리 얘기를 들어두어서 징징이 마을을 넓게 둘러싸고 울타리를 세우도록 지시했다.

 

나는 테일과 함께 마을 한쪽 공터에 갔다.

 

“징징이들은 문을 세워두면 인구가 늘어난다고 합니다.”

 

나는 사막 마을처럼 나무 문짝을 줄지어 세워서 징징이를 위한 러브하우스를 건설했다. 지붕을 지을 필요도 없었다. 문짝만 잔뜩 세워 두면 그만이었다.

 

징징이 마을 최후의 생존자 네 명이 문짝을 보고 달려와서 덜컥거리기 시작했다.

 

덜커덩 끽 탈칵 덜커덩 끽 탈칵

 

수줍게 애꿎은 문짝만 여닫던 징징이들이 서로를 마주보며 하트를 뿅뿅 발사했다.

 

“저기 하트가 보이나요?”

 

“예? 아, 서로 마주보고 있군요. 징징이들이 마법문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하트는 내 눈에만 보였다.

 

며칠 기다려서 징징이 인구를 늘리는 사이에, 슬쩍슬쩍 징징이 마을 건물을 보수했다. 새 집도 크게 한 채 지었다. 기사들은 ‘성지의 관리자들이 신기한 힘으로 집을 짓고 있다’고 수군거렸다.

 

‘징징이는 잠을 안자니까 집을 짓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밤에 몬스터로부터 안전하려면 집이 있는 편이 낫겠지.’

 

나는 마법사로서 신기한 현상을 연구하고 싶다면서 집 근처에 머물렀다. 기사들은 어쩌면 내가 집을 짓고 있음을 눈치 챘을지도 모르지만, 허공에 블록이 나타나서 저절로 달라붙는 현상을 애써 외면했다. 내가 내 마법이라고 밝히지 않는데 굳이 추궁하려 드는 인물이 없었다. 테일은 말없이 날 따라다니며 호위했다.

 

나는 일행에게 당부했다.

 

“징징이 수가 많아지면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 철 골렘이 나타나니 놀라지 마십시오. 철 골렘은 크리퍼를 빼고 몬스터들을 공격합니다. 인간이 철 골렘을 때리지 않으면 철 골렘은 인간을 건드리지 않습니다.”

 

“그때 봤던 철 골렘이 그것이었군요.”

 

징징이가 늘면서 자연 발생하는 철 골렘은 한 기가 고작이었다. 나는 남몰래 철 골렘을 두 기 더 세웠다.

 

‘철 골렘 셋이면 징징이가 멸종하지는 않겠지.’

 

테일은 나에게 묵직한 에메랄드를 하나 건넸다.

 

“저희가 준비해 온 에메랄드입니다.”

 

에메랄드를 보는 테일의 눈빛은 복잡했다. 그걸 장만하기 위해서 힘들었던 흔적이 역력했다.

 

‘품질은 떨어지지만 크기는 비슷하군.’

 

나는 말없이 에메랄드를 받았다.

 

“점을 쳐서 받은 물건들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테일은 품에서 낡은 양피지 한 장을 꺼냈다. 그 안에는 왕후장상이 에메랄드 점을 쳐서 받았던 물건들과 해석이 들어 있었다. 내가 읽을 수 없는 글자였기 때문에 테일이 읽어주었다.

 

“가장 흔한 것은 식료품입니다. 밀이나 고기는 긍정적으로 해석하자면 풍작을 뜻하나 계승 후보에게는 평민이나 마찬가지라는 조롱거리로 통합니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사상이 없는 무례한 귀족들이군.’

 

“그 다음, 무구류가 있습니다. 가죽 갑옷이나 가죽 투구는 역시 평가가 나쁩니다. 철제 무기와 갑주는 무력이 강한 영주를 뜻합니다. 대체로 마법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드물게 다이아몬드로 만든 단단한 칼과 갑주가 나오는데 이것은 영구불멸한 고귀한 혈통을 증명해 줍니다. 귀족 자제가 이것을 받으면 가보로 삼기도 하지만, 대체로 충성심을 드높이기 위해서 왕실이나 황실에 바칩니다.”

 

‘힘이 부족하면 윗사람에게 뺏긴다는 소리군. 다이아몬드 칼이나 뽑아주려고 했더니 안 되겠네.’

 

“농기구는 다이아몬드가 아닌 이상 그저 그렇습니다. 잘 부서지지만 아름답고 투명한 유리와 신기하게 밤에 빛나는 돌은 혈통의 고귀함과 풍요를 의미합니다. 부싯돌과 검은 돌은 별로입니다. 나침반과 해시계는 아주 좋습니다. 징징이들만 주는 물건이므로, 위조한 물건이 아니라는 뜻도 됩니다.”

 

“오, 하긴 석탄은 누가 캐서 비슷하게 다듬어도 되겠군요.”

 

“알 수 없는 문자가 기록된 책으로 가득한 책장과 신비로운 빛을 내는 유리 약병과 붉은 가루는 위조품이 만들어진 선례가 있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발광석이 가장 무난해 보였다.

 

‘발광석은 흑요석으로 만든 지옥의 문을 통해서 지옥으로 가야 채취할 수 있지. 마법으로 만든 위조품은 며칠 안 가서 빛이 꺼진다니까, 발광석을 들고 가면 징징이 정품이라는 증명을 확실히 할 수 있겠군.’

 

징징이들은 가둬두지 않아도 낮에 주로 러브하우스에 모여 있었다. 나는 징징이들을 뒤져서 발광석을 주는 징징이를 찾았다.

 

나는 증인이 될 기사들을 모두 불렀다.

 

“테일 경, 이 징징이가 느낌이 좋군요.”

 

나는 발광석을 주는 징징이를 지목했다. 징징이 교환식을 위해 테일이 준 에메랄드를 돌려줬다.

 

테일은 준비해온 에메랄드를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로 징징이에게 바쳤다. 징징이는 품에서 커다란 발광석 블록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발광석 블록은 다른 블록처럼 한 변이 1m씩인 정육면체였다.

 

테일은 기대하고 있었던 물건이 나오자 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오오! 밤마다 신비로운 빛을 내는 발광석이군요! 황궁에서 봤던 발광석과 똑같이 생겼습니다!”

 

부기사단장 헨리가 호들갑을 떨었다. 그들은 마법처리를 한 비단을 펼쳤다. 오러를 써서 발광석을 조심스럽게 들어올려 비단 천에 올려 감싸 묶었다.

 

“이렇게 대단한 물건을 받다니 티를로인 백작가가 앞으로 찬란히 빛날 징조입니다!”

 

“티를로인이여, 영원하라!”

 

“행운의 여신 나온 아가씨 만세!”

 

“와아아!”

 

기사들은 환호성을 울렸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징징이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교환을 했다.

 

‘발광석은 내 인벤토리에도 있지만, 귀중품이니 싹쓸이 해 가자.’

 

나는 금력을 과시하며, 아니 에메랄드력을 과시하며 징징이들을 털었다.

 

징징이만 주는 각종 포션들은 물론이고, 내가 만들 수 있더라도 재료 수집에 많은 노동을 요구하는 물건들을 위주로 탈탈 털었다.

 

테일은 기사들이 환호하도록 놔두고 나에게 다가와 조용히 속삭였다.

 

“고맙습니다.”

 

테일의 목소리는 조금 떨렸다. 테일은 만감이 교차하는 눈빛으로 내 손을 잡았다 놓았다.

 

 

 

 

 

 

 

6. 황금의 상속녀

 

 

 

성지에서 내려오면서 일행의 규모는 불어나 있었다.

 

“메에에~.”

 

“음머~!”

 

“꿀꿀!”

 

“꽥꽥!”

 

“컹컹!”

 

“야아옹.”

 

사람의 숫자는 같은데 뒤를 따르는 동물들이 늘어났다. 나는 성지에서 나오는 길에 종류별로 동물을 유인해서 한 쌍씩 붙잡았다. 징징이 마을 주변에 동물들이 꽤 많아서 작업은 순조로웠다.

 

‘마크에서는 길들이기가 되는 동물이 정해져 있는데 여기는 일단 모두 길들이기가 통하는군.’

 

늑대는 뼈를 주면 목에 목걸이가 채워지면서 길들었고 오셀롯은 날생선을 주면 고양이가 되었다.

 

게임에서는 소와 닭 같은 동물들은 각자 좋아하는 먹이를 손에 쥐면 졸졸졸 따라와서 농장에 가둬두는 방식으로 살림을 늘렸다. 그런데 여기서는 먹이를 주면 받아먹고 늑대처럼 목걸이가 걸리면서 길들었다.

 

‘이런 점은 편해.’

 

“목에 긴 줄을 묶어서 짐말에 연결해 둬.”

 

내가 동물을 길들여 와서 하인들에게 잡으라고 시키자 펄쩍 뛰며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온 아가씨, 성지의 것을 건드리면 안 좋지 않을까요?”

 

“몬스터는 사냥하고 나무로 불을 때잖아요.”

 

“그건....”

 

온건하게 반대하는 기사도 있었다.

 

“나온 아가씨, 성지의 동물들은 잡아도 소용없습니다. 도축하려 들면 거품이 되어서 사라집니다. 지금까지 마법사와 학자들이 연구를 했지만 모두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나는 생긋 웃었다.

 

“여태 저 말고 동물을 유인하는데 성공한 사람은 있었나요?”

 

“어,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좋은 게 좋다는 입장이었다.

 

“신기합니다. 성지의 동물들은 그저 신이 그려놓은 장식일 뿐이라는 말이 정설로 통했습니다. 나온 아가씨 앞에서는 순한 가축이 되는군요.”

 

동물들은 졸졸 잘 따라왔다. 일행이 이동하는 속도가 빠르지 않았기에 묶어둘 필요는 없었다. 그렇지만 이동하다가 어디 걸린다거나 해서 이탈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짐말에 밧줄로 묶어 두었다.

 

부기사단장 헨리 왈로우는 편견 없이 감탄했다.

 

“성지 동물은 보기도 좋고 건강하지요. 사람이 기를 수만 있다면 대단히 훌륭한 종자를 얻는 겁니다.”

 

다행히 성지의 동물들은 네모 상자로 조립한 모양이 아니었다. 현대인인 내 눈에 익숙한 모습이었다. 오랜 세월에 거쳐서 품종 개량을 거듭해 유용한 가축으로 다듬어진 형태였다.

 

“성지의 닭에 비하면 인간들이 키우는 닭은 비쩍 마르고 성질 더러운 까마귀에 불과합니다. 더구나 이 닭은 커다란 달걀을 매일 한두 개 낳는군요. 저는 정말 탐이 납니다.”

 

원래 성지의 닭이 낳는 달걀은 아이템 형태여서 사람들 눈에는 안 보였다. 내가 길들인 닭이 낳은 달걀은 남들 눈에도 보였다.

 

‘최소한 양계장을 만들어서 달걀만 뽑아 팔아도 한 재산 건지겠군. 사람들이 달걀로 부화 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부기사단장 헨리 왈로우는 진심으로 부러운 눈치였다.

 

헨리 왈로우 뿐 아니라 낙농업에 지대한 관심을 비추는 기사들이 있었다. 기사들은 녹봉으로 시골의 장원을 받는 경우가 많아서 우량한 종자에 대한 정보를 서로 교환했다.

 

“이게 닭이야, 오리야? 오동통해서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네. 물에서 헤엄치지, 사람을 물지 않지, 내 평생 이렇게 사납지 않은 닭은 처음 본다니까! 달걀은 거위알 보다 커서 한 알만 삶아도 접시에 가득 차.”

 

“이렇게 깨끗하고 튼튼한 얼룩소는 또 어떻고? 체격이 크지, 순하게 잘 생겼지, 우유를 양동이에 가득 주지.”

 

내가 길들인 소는 하인들이 우유를 짜낼 수 있었다. 내가 양동이를 단숨에 채우는 편이 빠르지만 사회적 체면을 고려해서 허드렛일은 가능하면 피했다.

 

“멧돼지같은 집돼지들만 보다가 이런 투실투실하고 난폭하지 않은 돼지를 보니 살 것 같군.”

 

기사와 하인들이 한탄하며 흘리는 얘기를 들어보니 일반적인 가축은 야생성이 많이 남았고 살점도 적었다.

 

“이런 양은 기르는 보람이 있겠어. 보통 양보다 열배는 넘게 털이 많아.”

 

일반 양은 몸이 작은 산양이었다. 털이 좀 긴 염소라 할 만큼 털이 짧고 성겼다.

 

마크 양은 통통하고 털이 넘치도록 북슬북슬했다.

 

“늑대개와 고양이는 충성심이 대단하군. 어떻게 길들이신걸까?”

 

“원래 길들여 놨던 것들이 따라왔다잖아.”

 

나는 성지의 동식물을 최대한 채집했다.

 

하다못해 지역만 달라져도 동식물의 품종이 달라지므로, 성지 안팎의 차이는 더 심할 게 분명해서였다.

 

‘마크의 동식물은 재료만 충분하면 순식간에 불릴 수 있지. 다른 품종들은 그런 방식으로 늘릴 수 없을지도 몰라.’

 

테일은 끙끙거리고 있었다.

 

종자를 분양받고 싶은 눈치였지만 차마 체면 때문에 말을 못 꺼냈다. 괜히 욕심 부리다 나라는 호갱님의 기분을 거스를지도 몰라 자중했다.

 

테일은 욕심을 꿀꺽 삼키고 사심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온 양, 지금 속도로 가면 며칠 안에 노숙하지 않고 여관에 묵을 수 있게 됩니다. 비르타 남작의 영지에 도착할 겁니다.”

 

“잘 됐네요.”

 

징징이 마을에서 돌아가는 길은 비교적 쾌적했다. 몬스터들은 나오자마자 팔팔하게 뛰어가는 기사들에게 썰렸다.

 

몬스터들이 떨구고 간 아이템은 남들의 눈에 안 보였지만 나는 줍지 않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양만으로도 충분히 넘쳐서 주울 필요가 없었다.

 

나 혼자 다닐 때와 달리 몬스터 소리에 긴장할 필요 없고, 대화 상대가 있으니 매우 유쾌한 여행이었다. 그래도 인간이 사는 마을에서 지붕 밑에 편안하게 침식하는 것은 무척 기대 됐다.

 

“비르타 남작령이 성지에서 가장 가깝나요?”

 

“아, 그렇진 않습니다. 사실 더플린 영지가 가장 가까운데 돌아가느라 이틀 허비하는 셈입니다.”

 

테일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귀족들은 인맥으로 빽빽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귀족가들 사이에 원한관계는 그들의 혼맥만큼 복잡 다단했다.

 

“더플린 영지는 르통 백작가 소유입니다. 르통 백작가와 선선대에 원한이 있어서 조심하는 차원에서 비르타로 갑니다.”

 

“저런.”

 

“하하, 별 거 아닙니다. 제 조부께서 당시 르통 백작이 사들이려던 경매품을 두 배의 금액을 치르고 낙찰 받으셨습니다.”

 

“가보인가요?”

 

테일의 표정이 짜게 식었다.

 

“해리엇 지방에서 오래전 생산된 해리엇 명주 마지막 병이었다고 합니다. 과실주의 재료인 해리디어트 나무가 300년 전에 모두 말라서 더 이상 나오지 않지요.”

 

테일의 표정에는 일순간 짜증이 넘쳤다. 애주가였던 조부가 그깟 술병 하나에 가문의 자산을 반 넘게 탕진하고 유력 귀족인 르통 백작과 원한을 졌으니.

 

“더플린은 르통 백작가에서 신경쓰지 않는 외진 땅이고, 비르타 남작은 천생 시골 영주라 별 일은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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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일이 생겼다.

 

비르타 남작령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테일이 내 신분을 보증했기 때문에 다른 평민들과 달리 줄을 설 필요도 없이 바로 성문 안으로 들어섰다.

 

비르타 남작령은 외지였지만 제법 단단하게 바위로 축성해 놓았다.

 

“예전에는 성지에 순례자나 참배객이 끊이지 않아 관광명소로 이름이 높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성지 주변이라 평범한 작물이 잘 자라지 않아 겨우 먹고 사는 게 고작이지만요.”

 

성지 주위에는 농사가 잘 안 되고 가축도 별로 크지 않아서 영지가 별로 없었다. 그나마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영지는 예전에 선조가 비축했던 자산을 축내거나 혹은 이름뿐인 작위와 영지를 탐내거나 해서 들어온 하급 귀족 나부랭이들이었다.

 

“번거롭게 비르타 남작을 찾아가서 허례허식에 시간을 낭비하느니 여관에서 묵고 빨리 출발하는 편이 낫습니다.”

 

테일은 ‘남작의 성이라봤자 볼 것도 없고요.’라고 중얼거렸다.

 

피차 경제적으로 불우한 사정을 아는데 손님 대접을 받겠답시고 찾아가서 좋을 일이 없었다.

 

그래서 테일이 올 때 들렀던 여관으로 곧장 갔다. 여관은 건물과 시설이 비교적 반듯했다. 가뭄에 콩 나듯이 들르는 참배객들 때문에 적당히 바가지를 씌우면 유지가 되는 모양이었다.

 

여관에 먼저 들어갔던 기사가 큰 소리를 냈다.

 

“왜 우리가 묵을 방이 없다는 말이냐! 2층과 3층에 그토록 많은 방에서 하다못해 중요한 손님들을 위해 둘도 못 비운다니?”

 

테일 일행은 무슨 일인가 싶어서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평소에는 마을 주민들이 자리잡고 있던 실내가 텅텅 비어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먼저 오신 손님이 미리 전층을 예약 하셔서....”

 

“손님이라니? 방이 부족하면 안채라도 내놓는다면서?”

 

여관 주인은 다급하게 달려 나와 쩔쩔매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 그것이....”

 

테일과 헨리의 얼굴이 굳었다.

 

“이미 남의 것이 된 물건에 탐욕을 부리는 꼴이 마치 돼지와 같구나. 쯧!”

 

날카롭게 빈정거리는 소리에 테일 일행이 고개를 돌렸다.

 

2층 계단에서 느물거리며 내려오는 중년의 사내가 더러운 오물을 보는 눈초리로 테일과 그의 기사단을 훑었다. 중년의 사내 주위에 호위하며 서 있는 기사들이 피식거리며 노골적으로 비웃었다.

 

“르통... 백작!”

 

헨리가 신음을 흘리며 말했다.

 

테일의 기사들이 발끈 화를 내려는 것을 테일이 손을 내밀어 막았다.

 

“티를로인의 테일입니다.”

 

테일은 정식 계승 전이라 백작보다 지체가 조금 낮았다.

 

“흥! 천박하기는 조손이 똑같구나. 남의 것에 걸근거리기는!”

 

“뭣이!”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으드득!

 

철컹! 챙! 철컹!

 

두 패거리의 기사들이 칼을 빼들고 흉흉하게 대치했다.

 

고풍스러운 주점 내부가 순식간에 살기로 가득 찼다.

 

주점 주인은 하얗게 질렸다.

 

귀족과 거상들이 묵는 고급 여관에서 푹 쉬리라는 기대가 엇나간 나는 급격히 피로가 몰려왔다.

 

쿵!

 

“하룻밤 선불.”

 

한껏 긴장해서 일촉즉발 터지기 직전이었던 기사들의 눈이 갑작스러운 울림에 시선을 돌렸다. 그들의 눈이 한껏 커졌다.

 

“...금?”

 

“설마 저 크기로 금이라고?”

 

내 발 앞에는 가로, 세로, 높이 1미터인 금 블록 한 개가 놓여 있었다. 이 금 블록은 아무나 옮길 수 있었다.

 

내가 블록을 오른쪽 클릭하는 느낌으로 붙이면 진공접합 한 것처럼 단단히 붙기 때문에 기사들이 오러나 마나를 주입해서 떼야 하지만, 키보드로 'Q'자 명령어를 누르는 감각으로 블록을 한 개씩 던지면 그냥 땅에 블록이 놓였다.

 

한 변이 1미터인 순도 99.99%의 황금 정육면체였다.

 

나는 다크서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한껏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테일 경, 여관에 방이 없다면 다른 곳으로 가요.”

 

눈에 살기를 머금었던 테일이 순식간에 레이디를 모시는 예의바른 귀족 청년으로 돌아왔다.

 

“죄송합니다. 나온 양. 사소한 일로 지체하게 되다니 제 실책입니다.”

 

테일이 깍듯한 태도로 내게 사과했다.

 

아마 르통 백작은 테일이 성지에 다녀온다는 소식을 듣고 번거롭게 며칠 씩 여관을 잡았을 것이다.

 

테일은 내 작은 불편에 비해서 르통 백작의 공들인 수고 따위는 하찮다는 태도였다.

 

테일이 정중하게 날 공경할수록 르통 백작의 체면이 구겨졌다.

 

“이, 이이!”

 

순식간에 사소하고 해묵은 원한 때문에 피로한 숙녀를 방해한 쪼잔남으로 전락한 르통 백작의 얼굴에 금이 갔다. 르통 백작은 입술을 실룩거렸지만 한 발 늦었다.

 

“히, 히익! 스... 소소, 손님!”

 

여관 주인은 붉으락푸르락 변하는 얼굴로 제꺽 달려와서 내 앞에 넙죽 엎드렸다.

 

“여관은 아니지만 제 사촌의 집이 제법 넓고 깨끗한 축에 속합니다! 과거에 조용한 곳을 선호하시는 귀족분들을 모시던 곳입지요!”

 

여관 주인은 호들갑을 떨며 안내를 자처했다. 그가 하도 수선스럽게 떠들어대서 르통 백작은 2차전을 벌일 기회를 끝내 잡지 못했다.

 

테일과 나를 필두로 코랄 기사단이 줄줄이 여관에서 빠져 나왔다. 코랄 기사단은 피식피식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닭 쫒던 개가 된 르통 백작의 기사들이 얼굴을 와작 구겼다.

 

 

 

 

 

 

======

 

 

 

칵칵! 턱! 카각! 턱! 쨍!

 

한 기사가 끌과 망치로 금 블록 모서리를 부쉈다.

 

첫 등장에 돈지랄, 아니 금지랄을 해서 귀족 사회에 임팩트를 주려던 내 의도와 다르게, ‘하룻밤 선불’이라는 내 말은 번역되지 않았다.

 

고위 귀족인 백작 계승자가 정중하게 모셔온 외국 여자가 여관에서 금덩이를 투척하는 골드 랭귀지 만으로 충분히 뜻이 전달 됐다. 사람들은 내가 금 블록을 통째로 하룻밤 삯으로 내놨다는 사실을 몰랐으므로 자기들끼리 알아서 교섭을 끝냈다.

 

여관 주인의 사촌은 벌벌 떨리는 손으로 금덩이를 받아 막대저울에 올렸다. 막대저울은 고풍스럽게 세공되어 있었다.

 

“옛날 물건이지만 마탑에서 품질을 보증하며 판매했던 저울입니다. 눈금을 조금도 속일 수 없습니다.”

 

관광지로서 주가를 올리던 전성기에 샀다고 덧붙였다. 여관 주인의 사촌인 별장 호텔 주인은 그렇게 말하고 금을 계량했다.

 

“전원에게 모두 최고급으로.”

 

내가 요구하자 별장 호텔 주인은 나와 기사들에게 귀족 30명이 쓸 수 있는 특실 건물을 통째로 넘겼다. 하인들은 고급 객실로 안내했다. 나는 하인들을 차별하지 않았으나 자기들끼리 알아서 그렇게 나눴다. 신분상 차이로 인한 관습에 굳이 내가 태클을 걸 필요는 없었기에 나서지 않았다.

 

실내 장식은 많이 없어졌지만 귀족들의 호화스러운 별장 호텔식으로 운영되던 건물이라 생각보다 멀쩡했다. 호황을 누리던 시절에 갖가지 마법을 설치해서 청결과 안락함을 유지하는 건물이었다.

 

‘마치 휴전선에 7성급 호텔을 세워둔 격이군.’

 

찾아오는 고객이 대거 줄었으나 막대한 비용을 투자한 건물을 헐값에 팔거나 포기할 수 없어서 후손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관리했다. 그나마 전성기에 정원을 크게 일구려고 마법사들에게 의뢰해서 땅을 거름지게 만들어 놓은 덕분에, 옛날에는 정원이었던 자리에 농사만 지어도 먹고 살만 했다. 어쩌다 몇 년에 한 번씩 손님이 오면 가계에 큰 도움이 된다고 귀띔했다. 지역 유지 행세는 하면서 지낸다는 소리였다.

 

“따뜻한 물에 목욕부터 하고 싶어.”

 

“바로 욕조를 올려 보내겠습니다.”

 

“적당히 편하게 입을 옷을 준비해줘. 평상복으로.”

 

“조금 유행이 지난 옷도 괜찮으시다면 예비용으로 두어 벌 있습니다. 밤을 새서라도 새 옷을 내일 아침까지는 마련하겠습니다.”

 

별장 호텔 주인은 평상복이라는 말에 안도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어느새 정갈하게 하녀복을 갖춰입은 여급이 내게 공손히 인사를 했다.

 

“아가씨, 저를 따라와 주십시오.”

 

하녀는 나무 욕조에 향유와 꽃잎을 잔뜩 뿌리고 내 목욕시중을 들었다. 하녀는 구식이지만 보존 기간을 늘려주는 마법이 걸려 있어서 멀쩡한 귀족의 평상복을 가져왔다.

 

“아가씨, 안마를 받으시는 동안 치수를 맞추겠습니다.”

 

하녀를 따라온 중년 여자가 즉석에서 내 치수를 재고 가봉을 해서 옷을 나에게 맞추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얇은 비단 가운을 입고 침대에 누워 하녀에게 안마를 받았다. 하녀는 안마 솜씨가 수준급이었다.

 

안마를 마친 뒤 통이 크게 넓지 않아서 편한 푸른 비단 드레스를 입고 식당으로 갔다. 식사는 담백하면서도 소화가 잘 되는 요리법을 써서 제법 괜찮았다.

 

“손님.”

 

별장 호텔 주인이 나와 테일에게 굽실거리며 고급스러운 보석함을 보였다.

 

“저희는 집안 대대로 성지를 지나시는 지체 높으신 분들을 대접해 왔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오신 분들이셨지요. 그래서 이 지역의 여관들은 번역 마법이 걸린 도구를 필수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다 팔고 몇 개 안 남았는데 여러분께서 여기 머무르시는 동안 대화에 불편함이 없으시도록 써주신다면 영광이겠습니다.”

 

“번역 마법이 걸려 있다고?”

 

내가 눈을 반짝거리며 묻자 별장 호텔 주인은 냉큼 답변했다. 내가 테일을 통해 반지를 주고받으며 의사소통하는 모습을 보고 편의를 제공하려고 신경 쓴 점이 가상했다.

 

“예. 우선 저도 반지를 한 개 꼈습니다.”

 

별장 호텔 주인은 보석함을 열었다. 보석함에는 비단천 위에 반지 5개와 팔찌 2개, 목걸이 1개가 있었다. 마법을 새긴 물건은 투박했지만 거기에 보석을 달아서 가격을 올렸다.

 

“듣기만 가능한 반지야? 아니면 말하고 듣기 모두 통하는 마법이 걸려 있나?”

 

“말하기, 듣기 모두 가능합니다.”

 

“알겠어. 내가 모두 사지.”

 

“예에에?”

 

공손하게 답변하던 별장 호텔 주인이 화들짝 놀랐다. 나는 오만하게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다른 여관에도 있다며? 모아줘. 금 덩이 하나로 부족하면 말하고.”

 

차와 후식을 즐기는 사이 별장 호텔 주인이 하인들을 보내서 온 동네를 휩쓸고 다녔는지 한보따리 모아왔다.

 

“여기는 번역 마법이 걸린 장신구입니다. 이쪽은 높으신 분들에게 안락함을 제공하는 물건입니다. 온도를 조금씩 조절하거나 작은 불을 피울 때 쓴다거나 하는 마법구들이지요. 가격은 미리 매겨왔습니다. 바쁘신 분을 기다리게 하는 건 도리가 아닌지라 크게 흥정하지는 못했지만 손해를 보는 거래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가씨께서 이걸 모두 사신다면 금 바위 반이면 충분합니다.”

 

“눈치가 빨라서 좋군. 이건 수고비.”

 

나는 눈부시게 투명하고 빛나는 에메랄드를 한 알 꺼내 탁자에 올려놨다. 징징이들이 교환에 응하는 알이 매우 큰 에메랄드였다.

 

“가, 감사합니다!”

 

별장 호텔 주인은 몇 번이나 허리를 접었다 펴고 나서 송구스러운 듯이 에메랄드를 챙겼다.

 

‘과거의 유산이로군.’

 

이 지역은 호황기에 흥청망정 써제껴대는 귀족들을 상대로 접객하다 보니 사치품이 많았다. 사치품의 특성상 살 때는 마법사들이 부르는 게 값이었으나, 팔 때는 똥값으로 떨어졌다. 조금씩 팔아가면서 가산에 보탰지만 주변에서 이런 물건이 흘러넘치다보니 시세가 바닥을 쳤다.

 

별장 호텔 주인의 태도는 지극히 공손했고 대체로 정직하게 나를 대했다.

 

‘자국 고위 귀족의 중요한 손님인 나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후환이 두렵겠지. 내가 혼자 도착했다면 크게 한탕 뜯어내려 들거나 아니면 강도떼를 잔뜩 만났을 거야.’

 

곧 백작이 될 고위 귀족 테일은 나의 훌륭한 방패였다.

 

나는 졸려오는 눈꺼풀을 가볍게 손가락으로 두드리고 테일에게 번역 반지를 끼워주며 말했다.

 

“테일 경, 중요한 연구가 있으니 잠시만 기사분들게 호위를 부탁드려요.”

 

“알겠습니다.”

 

나는 별장 호텔 주인을 돌아봤다.

 

“부르기 전까지 이 건물의 하인들을 모두 물려 주게.”

 

“예! 손님.”

 

테일은 기사 몇 명을 차출하고 자신이 직접 내 방 문 앞에 섰다.

 

 

 

======

 

 

 

나는 내 방 문을 닫고 들어왔다.

 

방은 상당히 넓었다. 별도로 달려 있는 응접실은 작업실로 쓰기에 딱 좋았다. 응접실의 넓은 공간에 인챈트 테이블을 설치했다.

 

인챈트 테이블 주위를 여러 개의 책장으로 포위하듯이 둘러싸자 책장에서 흘러나온 마법 문자가 인챈트 테이블로 쉴 새 없이 밀려들었다.

 

‘인챈트 테이블은 여러 물건에 마법을 부여해준다. 마크와 다른 마법 물품에도 통하는지 시험해 보고 싶어서 근질거렸는데 드디어 기회가 왔군.’

 

테일이 빌려준 저렴이 마법 반지를 봤을 때부터 인챈트 테이블에 올려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기사들은 과도하게 친절을 베풀어서 한 시도 내게서 눈을 떼지 않고 철통 같은 호위망을 펼쳤다.

 

아무리 내가 나를 마법사로 소개했다지만, 징징이들이 주는 특별한 물건들을 자유자재로 쓰는 모습을 보이기는 꺼림칙했다.

 

‘자아, 인챈트 테이블을 열고.’

 

나는 인챈트 테이블의 회색 칠판같은 창에 작은 마법 번역 반지를 올렸다.

 

“오예! 합!”

 

나는 저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다가 급히 두 손으로 내 입을 막았다.

 

‘마법 번역 반지도 인챈트 창에 들어가고 마법 종류가 표시 되는군. 그런데 1레벨이라니 확실히 수준이 높진 않아.’

 

번역 반지를 인챈트 테이블에 올리자, 처음 보는 마법 문자가 나타났다. ‘번역’ 이라는 뜻으로 추측했다.

 

‘이제 추가로 마법 부여가 되는지 봐야겠군. 그런데 설마 마크의 인챈트만 되는 건 아니겠지? 상당히 그럴 가능성도 높지만....’

 

마크에서는 인챈트 테이블에 무기와 갑옷, 각종 생활 도구를 올려서 마법을 걸 수 있었다.

 

마법 부여를 하는데 필요한 재료는 경험치였다. 마크에서 광석을 채굴하거나 몬스터를 잡으면 경험치가 쌓였다. 경험치가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더 강하게 마법이 걸렸다.

 

‘반지는 장신구인데 도구 보다는 갑옷에 속할까? 옷차림의 일부이니. 그러면 갑옷에 걸리는 마법은 몇 가지 보호 마법과 낙하 데미지를 줄여주는 마법, 내구도를 올려주거나 주위의 적에 피해를 입히거나 물 속에서 작업을 편리하게 해 주는 마법들이 있지.’

 

일상 생활에 대단히 유용한 마법들은 아니지만, 갑옷처럼 보호 기능이 걸린다면 비싼 값에 팔 수 있었다.

 

‘일단 시도. 흐음~. 처음 보는 마법 단어군. 다른 종류의 마법이 걸린다는 뜻이야. 경험치도 50레벨만큼 잡아 먹는군. 그런데 어차피 마법이 다 쓸모 있고 좋은 것만 걸리지는 않으니까 50레벨 투자한다고 결과가 좋다 장담 못해. 그래도 일단 경험치를 가장 많이 깎아먹는 단어를 골라서 고고고!’

 

인챈트 테이블에서 뜨는 세 가지 선택지 중에 하나를 찍었다.

 

신비로운 빛이 반짝거리다 점멸하며 반지에 푸르스름하면서 보랏빛을 띠는 광택이 머물렀다. 인챈트가 성공했다는 표시였다. 이 광택 역시 나만 볼 수 있었다.

 

인챈트가 성공하자, 마법 반지에는 내가 추가로 걸어둔 마법에 더하여 원래 기존에 걸려 있던 마법까지 표시 되었다.

 

반지에 추가로 걸린 마법은 다섯 가지였다.

 

“광채 2, 이건 뭐야? 반지가 조금 더 반짝거려 보이는 건가. 이런 잉여 효과 같으니라고! 녹슬음 방지 1. 으음, 내가 만든 물건들은 원래 녹이 슨다는 개념이 없이 늘 새것 같아서 잊고 지냈는데 일반적인 금속은 녹이 스니까 쓸모 있다고 봐야겠군.”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일반 무기와 갑옷에도 녹슬음 방지 마법을 걸 수 있다면 수요가 폭발할 것이 틀림 없었다.

 

“무게 감소 3, 어억, 뒷목이!”

 

뒷목 잡을 뻔 했다. 조그만 반지 하나에 무슨 편리함을 추구하겠다고 무게 감소 따위가 3레벨로 걸렸는지!

 

“화상 부위에 접촉 시 소독 1. 의료 계통 마법이라니, 오 맙소사, 하셀리안 님의 은총이로다.”

 

나는 하늘에 있을 지 없을 지 모르는 하셀리안에게 마음 속으로 ‘고맙다! 내 친구야!’를 열 번 외쳤다.

 

“먼지 정화 1. 이건 다른 마법 물건에도 있다고 들었는데. 만약 그 마법과 똑같다면 아마 꾸준히 소량씩 먼지를 제거해 주나 보군.”

 

왠지 조잡하게 이 마법 저 마법 체계 없이 걸렸다.

 

마크 인챈트 테이블이 원래 그런 식이어서 익숙했다.

 

나는 탁자 위에 수북이 쌓여 있는 마법 물품을 돌아보고 ‘으흐흐!’하며 음침한 웃음을 흘렸다.

 

‘몽땅 마법을 걸어주지!’

 

내 경험치는 한보따리의 마법 물품을 모두 최고 레벨로 마법 부여하고도 남았다.

 

나는 의욕이 솟구쳐서 작게 기합을 넣었다.

 

“아자, 아자!”

 

마법 물품과 손님을 위해 준비해 둔 소품들을 인챈트 테이블에서 잔뜩 시험하면서 몇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마법 물품에는 마법이 걸리지만 보통 물건에는 거의 안 걸리는 군.”

 

같은 은반지라도 기존에 마법이 걸려 있는 은반지는 인챈트 테이블에서 새로운 마법을 부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냥 은반지에는 마법이 걸리지 않았다.

 

“매질의 차이일까? 아마 마법이 잘 깃들게 전처리 과정이 필요하다는 뜻인지도. 내가 조합대로 만든 도구는 이 전처리가 포함되었을 것이고.”

 

나는 작업에 집중하면서 중얼중얼 혼잣말을 늘어놓았다.

 

“마법사들이 만든 마법 물품에는 다양한 마법이 걸려. 내가 만든 도구에는 여전히 마크에서 정해진 마법만 걸리지만. 그럼 이번에는 책을 만들어 볼까?”

 

나는 인챈트 테이블에 내용물이 백지인 책을 한 권 올렸다.

 

소가죽 1장과 파피루스 3장을 조합해서 만든 하드커버 양피지 책이었다.

 

“책도 50레벨 경험치를 선택해서 클릭.”

 

갈색 표지의 양피지 책이 반짝거리는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인챈트가 걸렸다.

 

“오호~. 소리 키우기 3레벨. 인챈트 책은 마크에 없는 마법까지 걸리는군.”

 

인챈트 책은 내가 딱 원하는 마법을 물건에 걸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었다. 단점은 랜덤하게 여러 가지 걸리는 일반 인챈트와 달리 한 번에 한 가지 마법만 걸렸다. 인챈트는 한 물건에 한 번 밖에 못 거니까 장단점을 잘 살펴야 했다. 그리고 인챈트 책을 모루에 올려 넣고 물건에 걸 때, 경험치가 또 한 번 더 들어갔다.

 

‘그래도 내가 필요한 마법만 원하는 물건에 정확히 걸 수 있으니 재료와 경험치 문제만 아니면 인챈트 책이 편리하지.’

 

나는 인챈트 책을 몇 권 찍어내다가 매우 특별한 마법을 발견했다.

 

“인챈트 효과 중복! 오옷! 이거면 다른 마법을 또 걸 수 있다는 뜻이네. 이거 좋다.”

 

나는 인챈트 책을 수십 권 만들었다. 만들면서 탁자에 놓인 양피지에 마법 문자를 옮겨 그려서 어떤 마법 단어가 무슨 효과를 일으키는지 기록했다.

 

 

 

 

 

 

 

 

나는 의욕이 솟구쳐서 작게 기합을 넣었다.

 

“아자, 아자!”

 

마법 물품과 손님을 위해 준비해 둔 소품들을 인챈트 테이블에서 잔뜩 시험하면서 몇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마법 물품에는 마법이 걸리지만 보통 물건에는 거의 안 걸리는 군.”

 

같은 은반지라도 기존에 마법이 걸려 있는 은반지는 인챈트 테이블에서 새로운 마법을 부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냥 은반지에는 마법이 걸리지 않았다.

 

“매질의 차이일까? 아마 마법이 잘 깃들게 전처리 과정이 필요하다는 뜻인지도. 내가 조합대로 만든 도구는 이 전처리가 포함되었을 것이고.”

 

나는 작업에 집중하면서 중얼중얼 혼잣말을 늘어놓았다.

 

“마법사들이 만든 마법 물품에는 다양한 마법이 걸려. 내가 만든 도구에는 여전히 마크에서 정해진 마법만 걸리지만. 그럼 이번에는 책을 만들어 볼까?”

 

나는 인챈트 테이블에 내용물이 백지인 책을 한 권 올렸다.

 

소가죽 1장과 파피루스 3장을 조합해서 만든 하드커버 양피지 책이었다.

 

“책도 50레벨 경험치를 선택해서 클릭.”

 

갈색 표지의 양피지 책이 반짝거리는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인챈트가 걸렸다.

 

“오호~. 소리 키우기 3레벨. 인챈트 책은 마크에 없는 마법까지 걸리는군.”

 

인챈트 책은 내가 딱 원하는 마법을 물건에 걸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었다. 단점은 랜덤하게 여러 가지 걸리는 일반 인챈트와 달리 한 번에 한 가지 마법만 걸렸다. 인챈트는 한 물건에 한 번 밖에 못 거니까 장단점을 잘 살펴야 했다. 그리고 인챈트 책을 모루에 올려 넣고 물건에 걸 때, 경험치가 또 한 번 더 들어갔다.

 

‘그래도 내가 필요한 마법만 원하는 물건에 정확히 걸 수 있으니 재료와 경험치 문제만 아니면 인챈트 책이 편리하지.’

 

나는 인챈트 책을 몇 권 찍어내다가 매우 특별한 마법을 발견했다.

 

“인챈트 효과 중복! 오옷! 이거면 다른 마법을 또 걸 수 있다는 뜻이네. 이거 좋다.”

 

나는 인챈트 책을 수십 권 만들었다. 만들면서 탁자에 놓인 양피지에 마법 문자를 옮겨 그려서 어떤 마법 단어가 무슨 효과를 일으키는지 기록했다.

 

 

======================================================

(여기까지 앞편에 합쳤습니다.)

 

 

 

 

 

 

 

 

7. 청혼

 

 

 

나는 조금 지친 상태로 응접실 문을 열고 나왔다. 테일 경과 기사 두 명이 문앞에 서 있었다.

 

“테일 경, 지켜 주셔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방해 없이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어요.”

 

“언제라도 제가 나온 양께 힘이 된다면 영광이겠습니다.”

 

나는 싱긋 웃었다.

 

“이건 고마움의 표시에요.”

 

나는 작은 보석이 박힌 투박한 반지 두 개를 테일에게 건넸다.

 

“아까 사들이신 마법 물품 아닙니까?”

 

“루비는 테일 경, 에메랄드는 왈로우 경이 쓰세요. 루비 반지는 물리 충격을 3할 감소시켜요. 불에 대해 내성이 올라가고요. 에메랄드는 물리 충격을 1할 감소시키며 약한 독을 정화시켜주죠. 으음~. 덤으로 루비 반지는 신선한 공기를 조금씩 흘리고 에메랄드는 먼지를 조금씩 없애서 청결을 돕는답니다.”

 

짤그랑!

 

두 개의 반지가 바닥에 떨어졌다.

 

덥석!

 

테일이 두 손으로 내 손을 붙잡았다.

 

“결혼합시다.”

 

테일의 투명한 하늘색 눈동자가 번쩍번쩍 빛났다. 그의 눈빛에 깃든 야심은 순수해서 차라리 깨끗했다.

 

“나온 양, 유서 깊은 저의 혈통과 나온 양의 재력이 만나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결합을 이룰 겁니다.”

 

테일은 지금은 흩어져 있으나 가문을 건사할 재물만 있다면 다시금 모여들 무력을 피력했다.

 

“제 아름답고 강인한 육체와 마법사로서 당신의 정신적 능력을 물려받을 아이를 상상해 봐요!”

 

나는 이사도라 던컨의 제안을 들은 버나드 쇼의 썩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나의 별로인 육체와 당신의 무구한 두뇌를 닮은 아이가 태어나면요?”

 

거절할 리 없는 완벽한 청혼이라는 확신에 차 있던 테일이 당황했다.

 

“나온 양, 저는 결코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

 

“졸리니 농담은 그만 두고 내일 아침에 봐요.”

 

나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하품을 하며 문을 닫았다. 울상이 된 테일이 문 너머에서 중얼거렸다.

 

“농담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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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여성향, 역하렘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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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는 장르에 따라 없/있/많이/역하렘 나눠서 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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