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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오브 연금술사는 어디갔냐고요?


제 뇌내에서는, 둘이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결말로 마무리지어졌습니다.



#1


 게임이라고는 지지리도 못하는 나였지만, 어째선지 게임에 열광하고 있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랬다. 1위는 한 명이었고 그 한 명을 제외한 모두는 최고가 아니었다.


 1789위라는 순위권에 들기까지 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해왔던가. 레벨 99가 되기까지 난 얼마나 많은 몬스터를 때려잡았던가. 장비를 맞추기까지 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였던가. 눈을 뜨면 난 폐인이었다. 어지간한 인스턴스 던전(4~8인이 모여서 보스를 공략하는 방식의 던전)은 혼자서도 가뿐하게 돌 수 있었고, 어느정도 손이 감각을 잡으면 난이도가 높은 던전이라도 어렵지 않게 클리어가 가능할 정도로 내 분신을 키워놓았다.


 이 정도 됐으면 다른 게이머들의 존경을 받아도 될 법한데, 1789위다. 내 위로 아직도 1788명의 슈퍼 폐인들이 있다는 소리다. 이게 뭐하는 짓인지도 모르겠거니와 저 1788명은 대체 정체가 뭔지 궁금했다.


 오늘부로 난 그 게임을 접는다. 키보드와 마우스로 두들기는 게임에 역정이 나고 말았다. 최고가 될 수 없는데도 최고를 향해 나아가려고 하다니... 이게 무슨 멍청한 짓인지. 컴퓨터는 원래 어려운 연산을 손쉽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도구다. 도구는 그 목적을 분명하게 해야한다.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컴퓨터를 끄고 집에서 나왔다. 하늘이 전체적으로 너무 밝아서 나도 모르게 눈쌀을 찌푸리고 말았다. 어두컴컴한 집을 나서면 이렇게나 밝은 세상이 있다. 게임으로 돈을 버는 자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면 내가 그 돈을 벌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이 참으로 좋게만 보인다. 이면에 비치는 부정과 비리 따위 안중에서 사라진다.


 책가방을 들쳐메고 학원으로 간다. 미친듯한 조명...이 아니라 햇빛이 사람을 어떻게 짜증나게 하는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학원으로 가는 아스팔트길을 걸어가는데, 그게 굉장히 힘들었다. 시골의 여름방학이나 서울의 여름방학이나 이 열기가 사람을 화나게 하는 것은 마찬가지인 듯 하다.


 학원으로 들어가면, 전설적인 에어컨느님이 시원한 손길로 날 반겨주었다. 오오 냉각수여! 오오 바람이여! ...NPC나 지껄일 대사를 나불대며 학원으로 들어갔다. 내가 다니는 학원은 K학원으로, 수학과 영어를 가르쳐서 흔한 기성세대들에게 '영수학원'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지긋지긋하고 얻어갈만한 지식도 없이 무조건 복습에 복습에 복습을 시켰기 때문에 엄마에게 차라리 다른 학원을 보내달라고 아우성쳤지만 헛수고였다. 차라리 O몬한자를 하는게 이것보다는 정신적으로 덜 고통받을 것이다.


 O몬학습... 초등학생땐 엄청나게 많이 했었다. 뭔놈의 과목은 또 그렇게 많은건지, 수학, 국어, 영어, 한자, 일어, 등등... 항상 학습지 표지에 그 과목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고등학생인지라 그런 건 이제 수준이 맞지 않았고, 난 그것을 이유로 이 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대현이 왔구나, 숙제는 다 해왔니?"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웬 스파이크 클럽이 연상되는 큐대를 만지작대는 선생이 말을 걸어왔다. 안해오면 저 가공할만한 길이의 큐대로 엉덩이를 안써온 문항 갯수만큼 맞아야했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준비가 철저했다. 가방에서 숙제를 꺼내 선생 앞의 책상에 펼쳐놓는다.


 "당연하죠. 절 뭘로 보시고."


 "쳇, 가서 앉아."


 쳇??? 도무지 이 선생의 머릿속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얼마 후, 큐대 타작이 이어지고 나서 55분의 지루한 수업이 시작되었다. 배웠던 내용을 그대로 알려주는 저 선생은 졸리지도 않은건가...라고 생각하다가 잠이 들고 말았다.



#2


 그래서 난 지금 에어컨느님의 손길조차 닿지 않는 학원 밖에 나와서 벌을 받고 있었다. 나와 같이 졸던 서유민이라는 여자애는 벌을 받다 말고(그냥 멍청하게 서있는게 전부였지만) 학원 문의 유리창문에 뺨을 댔다.


 "아~ 시원하다."


 고등학생이라지만 옷차림은 정말 애같았다. 연두색의 삼선 슬리퍼부터 시작해서, 헐렁헐렁한 베이지색깔의 반바지, 젖으면 다 비칠 것 같은 티셔츠에 안경은 또 왜 이렇게 귀엽게 생겼는지, 성폭행만 아니었으면 그냥...이 아니라! 아무튼 애같았다.


 "...뭐하니?"


 "여기 창문 짱 시원해. 으어어~ 너도 대볼래?"


 얼굴만 보면 극락이라도 경험하는 것처럼 보였다. 얼굴이 시원하면 뭐하냐, 다른 부분이 더운걸. 그 때 문이 세차게 열리면서 그녀가 옆으로 넘어졌다.


 "우부와악!"


 "개짜증...뭐, 뭐야."


 문을 열고 나온 녀석은 이재원이라는 '놈'이었다. 게임은 일체 하지 않는 운동파라서, 몸이나 성격이나 과격한 부분이 있었다. 트레이닝복을 굉장히 즐겨입어서, 여름인데도 긴 바지를 입은채 얇은 가디건을 걸치고 있었다.


 하필이면 그 파워한 손놀림에 고꾸라져버린 유민은 그대로 눕더니 일어날 생각을 안했다.


 "바닥이 더 시원해~ 으어어~"


 "얀마, 드러워! 빨리 일어나."


 재원이 건넨 손을 잡고 그녀는 일어났다. 그 뒤로 우린 멀뚱히 서서 더위와 싸웠다.


 "아, several 못해먹겠네. 너희들 나랑 같이 게임이나 하러 가자."


 "게임? 뭔 게임. 아니 그보다 너도 게임을 하는구나."


 "그러게? 너 원래 운동하는 애 아니었어?"


 "컴퓨터 게임 아니니까 착각하지마. 아무튼... 갈래 안갈래?"


 학원을 땡땡이치고 신문물을 경험해보라는 재원의 유혹에 우리 둘은 그대로 넘어가버렸다. 하지만 가방이 문제였다. 하는 수 없이 우린 일단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4교시 중 1교시. 이른 아침인데도 날은 굉장히 더웠다.


 그리고 때가 도래했다. 선생이 잠시 자리를 비우자마자, 우리는 가방을 들고 잽싸게 학원을 나섰다. 일탈이란 재밌지만 그 뒤에는 알 수 없는 공포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일탈을 하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런 공포따위 알고 싶지 않았다.


 재원은 우리들을 이끌고 PC방도, 오락실도 아닌 작은 빌딩으로 향했다. 빌딩에는 간판도 없었고, 내부로 들어가서야 간판이라고 할만한 이름이 나왔다. 재원이 우리를 데려간 곳은 '인형관'이라는 이름의 공간이었다. 이름만 봐도 좋지 않은 기운이 엄청나게 느껴졌다. 난 옆에 유민을 두고 망설였다. 이렇게 순수해보이는 여자애와 같이 이런 곳을 들어가도 되는건지 제대로 판단이 서질 않았다.


 "음... 잠깐만."


 "뭐야, 이제 와서 겁나냐? 겁나면 학원으로 가던가. 시간은 아직도 많으니."


 "아니, 그건 아닌데."


 "뭐야 여기는? 인형 파는 곳이야?"


 "인형끼리 싸우는 곳이지."


 "뭐?"


 난 황당해서 너털웃음을 짓고 말았다. 재원은 상당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자애들끼리 하는 소꿉놀이라고 생각하지마."


 봉제인형끼리 서로 치고받고 싸운다니... 그리고 그런 것을 진지하게 가게처럼 운영하는 곳도 있다니! 소꿉놀이 퀄리티가 아니라고 인형이 싸우면 거기서 거기 아닌가? 난 어제까지 해왔던 그 게임을 생각했다.


 한 남자가 담배를 물고 인형관에서 나왔다. 입에서 연기를 풀풀내던 그 남자는 연신 욕지거리를 하면서 누군가를 자꾸 욕했다.


 "그래서 들어갈거여 말거여."


 "재밌겠네! 들어가보자."


 유민은 상당히 신나보였다. 아니 그런데, 왜 저런 남자가 인형끼리 싸움을 시키는 곳에서 나온걸까. 우린 인형관의 안으로 들어갔다.



#3


 철권을 연상시키는 아케이드 오락기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오락실과의 차이라면, 여기의 오락기들은 일렬로 정렬되어있지 않고 군데군데에 하나씩 붙어있었다는 거였다. 무엇보다도 이 오락기들은... 모니터가 없었다.


 "너희들은 카드가 없으니까, 저기가서 하나씩 등록하고 와."


 "게임을 하는데 카드가 필요해?"


 "일종의 계정같은거야. 잃어버리면 큰일난다. 난 저기에서 한 게임 하고 있을테니까, 등록이 끝나면 나한테 와."


 그 말을 끝으로 재원은 오락기 앞에 앉아 게임을 시작했다. 우린 재원이 말한대로 계정을 만들기 위해 종업원에게 다가갔다. 종업원은 재원이나 아까전의 남자의 느낌보다는, 좀 더 상냥한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저, 처음인데..."


 "뭐가 처음이세요...가 아니라, 계정 말씀이시죠? 이 종이에서 표시한 부분만 채우고 저한테 주세요. 맞다, 짐도 어지간하면 맡기시고."


 종업원은 친절한 억양으로 우리에게 웬 서류를 나눠줬다. 우린 꽂혀있던 펜을 사용해서 서류의 양식을 채운 뒤 종업원에게 가방과 함께 서류를 건네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린 하얀색의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카드는 정말로 새하얬는데, 종업원의 말로는 캐릭터를 만들면 그 캐릭터의 이미지가 카드에 새겨질 것이라고 했다.


 "근데 이거 어떻게 하라는거지."


 "그냥 꽂는거 아니야? 이렇게. 옴마!"


 유민은 의자에 앉더니 냅다 카드투입구에 카드를 꽂아버렸다. 그러자 게임기 위에서 웬 고글이 나타났다.


 "이걸 쓰고 하는건가~ 오오오 신기술~"


 하염없는 소리나 하며 고글을 쓴 유민은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내가 하는 말조차도 들리지 않는 것인지, 아무리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옆을 지나가던 남자가 말했다.


 "뭐해? 이 여자애 지금 게임중인거 안보여?"


 "예? 아니, 그건 아는데요."


 "이 게임 한 번도 안해봤지 너."


 난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은근한 목소리로 날 비웃으며 지나갔다. 기분이 쓸 데 없이 나빴다. 결국 난 유민의 맞은편에 있는 기기에다 카드를 꽂고 고글을 썼다.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더니, 파도소리와 함께 이상한 화면이 나타났다. 캐릭터로 보이는 것과 여러가지 조절하는 것이 있는걸로 보아, 캐릭터 생성 화면같았다. 이 게임은 타이틀도 없는 것인가...


 캐릭터를 조절할 방법이 없어 고민하던 중, 갑자기 손에 뭔가가 잡혔다. 게임 패드였다... 이 패드를 쥐여준 사람에게 경의를 표할 거라는 생각과 함께, 난 패드를 조작해서 캐릭터의 모습을 잡아줬다. 인형이 싸우는 게임이라면서, 캐릭터는 완전히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가능한 한 이상형으로 잡아주자 서유민이 나타나버렸다. 단발을 장발로 고친 뒤 확인을 눌렀다. 닉네임은 대충 COTORI HIME 정도로 했다. 일본어로 작은 새 공주라는 황당한 이름이었다.


 외모를 고치자 다음은 체형이었다. 체형은 모든 스테이터스에 전반적인 영향을 줬는데, 이 영향이 상당히 심각했다. 어찌보면 밸런스 파괴로 보였지만 밸런스형이 있다는 것을 보면... 다른 체형들은 불이익을 참고도 그것을 커버할 수 있을만한 장점이 있는 것 같았다. 체형은 라이트, 밸런스, 헤비가 있었는데, 라이트는 조금 작은 어린애의 느낌이었고 헤비는 보디빌더의 느낌이었다. 성능의 차이로는 라이트가 더 빠르지만 약했고, 헤비가 더 강하지만 느렸다.


 이제 끝났나보다 하고 있는데, 다음 단계가 또 나왔다... 인형의 재질과 시작 무기를 선택하는것. 재질도 천, 나무, 합금의 세가지로 체형과 비슷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나무를 선택했다. 무기는 단검, 소검, 장검, 대검중에서 가장 강해보이는 대검이었다. 그렇게 만들자 검이 너무 커서 바닥에 질질 끌려다니는 느낌이 되었다. 상관없었기 때문에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라고 하려고 했지만, 재원이 고글을 벗기고 말았다.


 "아, 야! 이제 좀 하려고 했는데!"


 "이건 또 뭔 소리여. 집에 안가냐?"


 "어?"


 시계를 보자 저녁 3시였다. 인형관에 도착하고 5시간이 훌쩍 넘은 상태였다. 분명 캐릭터만 만들었을 뿐인데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지난걸까. 옆을 보자 완전히 기진맥진한 서유민이 날 보고 있었다.


 "으아아아~ 아무것도 안했는데 쓰러질 것 같애~"


 우린 맡겨놓았던 가방을 찾고, 건물을 나왔다. 재원과는 방향이 달랐기에 헤어졌고, 우리 둘은 잠시나마 같은 길을 걷게 되었다.


 "별 일이네. 캐릭터만 만들었는데 시간이 그렇게 빨리 가다니..."


 "어, 너도? 나도 그런데!"


 "설마 계속 이렇게 해야하는건가? 얼마 하지도 않고 몇 시간씩?"


 "에이 설마... 그런데 캐릭 만드는거 은근히 재밌었어."


 "그...그래. 아무튼 내일 보자."


 우린 그렇게 헤어졌다. 집에 가서 엄청나게 혼났지만 이상하게 싫지는 않았다. 게임때문일까, 그녀때문일까. 어쩌면 둘 다 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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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라야님 축하합니다.^^ 2014.02.25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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