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후회 #1

by 하늘바라KSND posted May 0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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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판타지,연애

후회 ; 2014.02.04.,2015.03.30.,05.03,05 ;하늘바라KSND

 

한편 수수해 보이지만 반질반질한 표면이며, 고르게 짙은 갈색의 목재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음각으로 새겨진 기하학적 무늬의 테며, 절정마다 박혀있는 금박이며……. 흠 잡을 곳이라곤 좌-우에 하얗게 서리 앉은 책의 탑과, 그 사이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종이, 잉크병, 깃펜이 있는 그 위뿐인 책상을 경계로 나와 공주님이 대치하고 있었다.

 

안됩니다.”

 

공주님을 말리기 위해서 냉정하게 거절하려고는 했으나, 스스로도 뜨끔할 만큼 신경질적으로 크게 소리를 내뱉어버렸다. 공주님의 표정을 보기가 껄끄러워져서, 괜스레 신발 앞쪽을 카페트에 비볐다. 폭슬폭슬한 털에 신발은 아무런 저항 없이 앞뒤로 달랑거렸다. 그치만-. 이때 마주했어야 했다. 아무리 도망친다고 한들-.

 

남자는 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중의 하늘은, 어찌나 바쁘게 움직이는지 그 피부를 파란색으로 옅게 물들이고 있었다. 비라도 내렸으면- 했지만 비는커녕 잡티 한 점 없는 아름다운 하늘이었다. 남자는 스르르 눈을 감고 고개를 내려 정면을 향했다.

 

아니 왜? 왜 안된다는 거야? 혼담까지 오간 사이잖아!”

 

공주님의 높고 거친 목소리. 예상했던 바였지만 그 소리가 와르르 무너지며 쇄도할 때 나도 모르게 그 격류에 휩쓸리고 말았다. 그 소리를 따라 나도 이 방에서 벗어났으면- 했지만 소리는 어느샌가 날 내버려두고 대기 중으로 스며들어가고 말았다. 아니, 어쩌면 나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소리를 내버려둔 채 공주님과 대치하는 길을 선택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남자는 천천히 눈을 떴다. 조그만 마을. 그 마을 외곽의 작고 허름한 집. 그 작은 집 마당을 터뜨릴 듯 가득 채우고 있는, 은빛 반짝이는 미늘 갑옷을 입은 병사들과, 깔끔한 천 소재의 옷을 갖춰 입은 귀족 한 명. 남자는 그 해학적인 광경을 침착한 눈빛으로 훑었다. 그리고는 깊게 숨을 들이는 것과 동시에 눈빛을 거두어들였다.

 

저는 반역자입니다. 저는 당신의 아버지를 죽이려한 가문의 아들이란 말입니다!”

 

, . 딱히 상관없잖아.”

 

왜 이렇게 말을 못 알아들으시는 겁니까! 제가 문제가 아니라 공주님이 문제란 말입니다!”

 

그놈의 문제! 그래. 모든 놈의 문제는 항상 다 내 탓이지. 니가 뭔데? 문제인지 아닌지는 내가 결정해. 알아들어? 됐으니까-.”

 

반사적으로 속을 게워버린 공주는 되레 자기 말에 놀라버렸는지 하던 말의 끝을 흐리고는 의자에 풀썩- 내려앉은 뒤에 의자를 앞으로 끌어당겼다.

 

같이 도망가자.”

 

사뭇 진지한 공주님의 표정에, 공주님의 도망가자는 말과는 모순적으로 좌로도, 우로도, 앞으로도, 뒤로도 도망갈 틈을 찾지 못하고 공주님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더 이상 물러날 틈이 없다는 결론을 마지못해 인정하자, 조금 더 치사한 길이 보였다.

 

공주님. 공주님께서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사시다가 저기 저들 밑으로 내려가 같이 사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들은 우리와 다릅니다. 우리는 전혀 상상하지도 못하는, 그런-”

 

너도 거기서 살 거잖아. 그럼 됐어. 게다가 너도 잘 알잖아. 나 수 잘 놓는 거. 그걸로 어떻게든-”

 

안됩니다.”

 

그놈의 안된다는 소리!”

 

공주님께서는 대체 무엇이 부족하셨던 걸까? 나도 귀족 출신이지만- 가늠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그 고집을 들어주고 팠다. 분명 위험할 것일텐데도, 그녀를 위해서라면, 그녀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그녀를 말려야 했음에도. 그러나 참아야 했다. 조금만 더 있다간 이 이율배반적인 생각이 나를 완전히 집어삼켜버릴 것만 같아서, 획 뒤돌아버렸다.

 

이만물러나겠습니다.”

 

잠깐만!”

 

귀족은 왼손을 가볍게 들고는 남자를 향해 걸어 나와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네 걸이 될 때 쯤 멈추었다. 서로를 관찰하던 두 사람 사이에는 평온함 가운데 묘한 위화감이 감돌았다.

 

나리하.”

 

나리하라! 오랜만에 듣는군, 이제유.”

 

몸소 누추한 여기까지 납신 걸 보니 어지간히 중요한 일인가봐?”

 

-. 그렇지. 반란군의 수괴가 공주를 납치한 사건인걸?”

 

무엇이 그렇게도 즐거운지, 진한 미소가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 나리하의 얼굴을 그가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에 더 기세가 등등해진 나리하는 한 발짝 그에게 더 다가갔다.

 

? 이렇게 될 줄 몰랐나? 그렇게 당하고도 말이지.”

 

아니. 어쩌면-”

 

아니!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을 할 뿐이다. , 칼을 들어라!”

 

나리하의 말에 이제유는 순순히 칼을 빼들었다. 금속의 광채가 서로를 향해서 날아들었다. 나리하의 얇으면서도 길쭉한 칼이 가볍고 경쾌하게. 어쩌면 살짝은 급하게 이제유를 향해 오른 쪽 위해서 날아들었다.

 

부탁이니까-. 이 내가 부탁하는 거니까! 날 여기 혼자 두지 말아줘-.”

 

나도 모르게 멈칫-하자 드르륵 소리가 들려오고는 얼마 뒤. 등 뒤에서 푹신-한 느낌이 등 뒤에서 머리로 찌르르 흐르는 것과 함께 진-하게 달콤한 향이 확 풍겨왔다. 그와 동시에 날 보내지 않으시겠다는 듯 두 팔로 내 허리를 감싸 안으시는 공주님. 나는 다만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다시, 멈추었던 발걸음을 계속했다. 그러자 스르르- 힘없이 풀어지는 팔. 뒤돌아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공주님의 목소리가 촉촉했으니까-. 눈물이 잔뜩 묻어있었으니까. 공주님의 눈에서 방울방울 맺히는 눈물을 본다면, 더는 도망칠 수 없을 것만 같았으니까. 그러니 눈 감을 수밖에-.

 

-하고 허공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빨간 핏방울이 방울방울 공중을 날았다. 그들이 환상 속에 도착했을 때부터 예정된 이야기. 아니 어쩌면 환상이 시작될 때부터 결정되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 결말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그 이야기는 이제 절정에 다다라 있었다.

 

잠깐!”

 

그리고 그 절정을 장식하는 날카로운 소리. 그 소리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들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고개들 돌렸다. 모두의 시선이 쏟아진 대문에는- 많은 인파를 헤쳐 오느라 잔뜩 헝클어진 한 여인이 있었다. 여인은 뜨거운 시선에도 전혀 뜨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건지, 아랑곳 않고 나리하만 노려보았다. 그녀의 그 눈길에 화답하듯, 나리하는 입을 열었다.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공주님. 이제 즐거운 소풍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실 시간입니다.”

 

집이라니? 여기가 내 집인데 돌아가긴 어딜 돌아가?”

 

걱정하지 마십시오. 공주님께서 처신만 잘 하신다면 아무런 일도 없을 것입니다.”

 

아니-”

 

공주님을 모시거라.”

 

나리하의 일방에 가까운 말이 끝나자마자 공주에게 접근하는 두 명의 병사들. 옥죄어오는 그들의 포위망을 피하기 위해 공주는 몸부림을 쳐보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병사들의 손길만 거칠어질 뿐이었다. 조금씩- 조금씩- 병사들에 이끌려 공주는 이제유에게서 멀어졌다. 마침내 그녀의 집으로부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자, 사물의 경계가 문지른 듯 희미해졌다. 이어 아득-히 멀어지며 현실감을 잃어가는 화상(畵像). 점점 커지는 삐-하는 이명과 함께 공주의 세상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연작 소설입니다. 총 세 개로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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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걱님과 함꼐하는 하늘섬 환상세계 시나리오 작성 중.

자세한 경과는 이야기 연재란에서.

 

Lighna형과 함께하는 프로젝트, D.A 시나리오 작성 중.

프로젝트 D.A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http://projetda.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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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안녕하세요 하늘바라 KSND 입니다. 

(96년생)

성별 :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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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활동 : 소설쓰기, 댓글, 뻘글, 글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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