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세카이 엔드 #6

by 말라야 posted Apr 1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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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SF

 오늘은 아무런 꿈도 꾸지 않았다. 같이 자고 있었던 세카이는 부엌에 있을터였다.


 "이봐 세카이. 부엌이냐? 잠깐만... 이 냄새는..."


 혹시나 싶어 부엌에 가보자.....똑같은 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선생님! 오늘으은- 아!"


 "어제처럼 싱겁게 끓인 건 아니겠지... 윽!"


 혀가 오그라들 정도로 짰다. 조미료대에 있던 소금이 하나도 없었다.


 "야..... 뭔 짓을 한거야!?"


 "네에? 어제랑 같은- 레시피에- 네! 소금을 한 스푼 넣었을 뿐인데요오?"


 "한 스푼? 한 그릇을 다 넣었구만... 이거 어떻게 먹을라고 그래?"


 "히잉..."


 "비켜봐. 안해도 되는 일을 왜 궂이 해가지고 그러냐... 다음부턴 조심하라고."


 세카이를 옆으로 밀어내고, 김치찌개의 물을 덜어낸뒤 콩나물을 조금 넣고 물을 부었다. 몇 번 휘적이면 어느 정도는 먹어줄만한 콩나물 김칫국이 만들어졌다.


 "계, 계란 후라이는 제가...!"


 "됬네요 요녀석아. 그릇좀 날라라. 밥도 푸고."


 "네에-"


 몸살기운은 없어보였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사람이 하룻밤 자서 병이 쉽사리 낫는일은 드물었고, 더군다나 녀석의 중추회로는 잠을 잔다고 해서 수리되는 것도 아니었다.


 먹는 둥 마는 둥 한 식사를 끝내고 나서, 난 골동품점에 가기 위해 옷을 차려입었다.


 "저, 저도 데려가는건가요오?"


 "안돼. 아프잖아?"


 "하지, 하지만... 오늘 기침 한 번도오- 안했는데에..."


 "그래도 푹 쉬어두는게 좋을텐데?"


 또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눈치만 보는 강아지들이 주인의 마음을 사려고 불쌍한 척하는 것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러엄... 빨래랑 청소랑만 해둘게요오..."


 "아 몰라! 따라 올거면 오던가."


 "헤헤헤헤헤. 좋다아-"


 옷을 갈아입-히고 싶진 않았으므로, 장농에 넣어뒀던, 평범하게 생긴 분홍색 반소매 옷을 한 벌 꺼내 그녀에게 건네줬다. 어제의 옷은 아무래도 좀 더러웠다. 바지도 갈아입어야했기에, 바지도 최대한 안 이상해보이는 면바지로 주었다. 치마들이 왜 하나같이 프릴이 달려있는건지, 문정원의 딸이 너무 가엾게 느껴져버렸다.


 "가요오- 선생니임!"


 "그래. 이제 겨우 11시네. 여유롭게 가면 되겠다."


 내 팔에 반쯤 매달려 있는 세카이를 질질 끌어가면서, 우린 골동품점으로 향했다.


 골동품점으로 가는 도중, 바다를 보자, 어제보다 검은 부분이 늘어난게 보였다. 기분 탓이 아니라, 정말로 푸른 부분이 좁아져있었다. 정화기계 몇 개가 높아진 파도로 인해 부서져 항구쪽 방파제 위에 놓여있는게 보였다.


 정화가 덜 됐기 때문인지, 피서를 나온 사람은 생각보다 적었다.


 "바다가 더 검어졌어요오~"


 "정화기계가 몇 개 부서졌으니 범위를 줄일 수 밖에 없었겠지."


 "저게 다 부서지면 어떡해요오?"


 "여기선 이제 수영 못하지."


 "큰일이네요오..."


 얘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가게 앞에 와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굉장히 회사원같아보이는 사람이 주인 할아버지와 얘기하고 있었다.


 "여기, 소유증....입니다."


 "어어, 왔나? 세카이도 데려왔군."


 할아버지가 웃으며 반기자, 남자가 내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정확히는, 내 손을 꼭 붙잡고 있는 세카이에게로 시선이 간 것 같았다.


 "설마... 이 아이였습니까?"


 아무래도 손창혁이라는 사람 같았다. 세카이를 내다버린 녀석의 아버지말이다.


 "누구였더라아... 아, 어제 편의점에서 로봇 찾던 사람 맞죠!"


 그가 가까이 와 쪼그려 앉아서 세카이를 바라보자, 세카이는 뭔가 알아보는 것 같았다. 그가 보는 것과는 조금 다르게 말이다.


 "이, 이건..."


 그는 당황해하며 일어나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할아버지는 테이블에 팔을 괸채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 잊어버린 모양이야. 나도 못알아보던걸."


 "10년을 같이 있었는데, 모른단말입니까?"


 "그래... 사람이 아니잖나. 그제, 전부 잊어버린 모양이네. 빗물에 씻겨진거겠지."


 손창혁은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곁에 있던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차라리 다행입니다... 차라리 다행이에요. 차라리 잊어버리는게 도움이 될겁니다....."


 늙은 남자가 우는 일은 평범하게 일어날 일이 아니었다. 무슨 부모를 잃은 사람마냥 흐느끼는게 참 기분이 그랬다.


 "뭐가 도움이 된다는- 뭐야."


 내가 다가가려는것을 할아버지도 아닌 세카이가 막았다. 그녀는 살금살금 손창혁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왜 그렇게 울어요?"


 "으, 응. 아저씨가, 누구한테 좀 심한 잘못을 했거든."


 "그래서 우는거에요? 미안해서요오?"


 "그래... 그래서 우는거야. 너무 비참하게 만들어서. 사람처럼 대해주지 못해서. 밥 먹을때도 따로 먹게 하고, 잠도 맨바닥에서 자게하고, 가끔은 심하게 다뤄서 다치게도 해서. 그래서..."


 "흐응. 그렇구나아~"


 그녀는, 잠깐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어갔다.


 "이해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사람이라면요오."


 "뭐라고?"


 "비참해도, 외로워도, 추워도, 아파도 말이에요오. 사랑이 부족하니까 그 사람을 이해했던 거 아닐까요오?"


 세카이는 잠깐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어갔다.


 "사람은, 항상 사랑받고 살아도 모자른 존재니까요오."


 "뭐... 뭐라는거야 저 꼬맹이가."


 갑자기 어른스러운 소리를 하다니, 당황하고 말았다. 벌써 철이 든건가?


 "그, 그래... 똑똑한 아이네. 이름이 뭐니?"


 "저는- 세카이고요~ 저 선생님은 이재철이래요!"


 "이래요가 뭐냐 이래요가..."


 훌쩍대던 그는 우는걸 멈추더니, 의자에서 일어나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미안합니다 이재철씨. 이런 모습을 보여서."


 "미안해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눈물 좀 닦으세요."


 어느정도 감정을 추슬렀는지, 손창혁은 나를 보며 말했다. 


 "부디 이런 저와 제 아들을... 용서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우린 벌써 용서했습니다. 하지만..."


 난 할아버지가 있는 테이블로 세카이를 이끌며 그에게 말했다.


 "우린 기억할겁니다. 그러니까 당신들도 기억해주십시오. 알겠습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한 그는, 그렇게 떠나버렸다.


 "착한 녀석이지. 2년 장기 출장을 갔다온 사이에 아들이 그렇게 되어버린게 문제였겠지만..."


 "하아... 못살겠네요. 저 사람은 얠 아꼈던 것 같은데... 세카이, 어딜 그렇게 쳐다봐?"


 손창혁이 나간 밖을 계속 바라보는 세카이가 영 이상했다.


 "네에? 아- 그냥, 그냥요오."


 "그냥이라니... 그런 그윽한 눈으로 보고 있으면 신빙성 없잖아."


 "헤헤에-"


 남자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세카이는 그걸 알기라도 하는 것 같아보였다.


 "허어... 그럼 이제, 장사하는 법을 알려줘야지. 자네 포스기는 좀 써봤나?"


 force의 포스인가 싶어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지만, 아쉽게도 pos(point of sales)의 포스였다. 할아버지에게서(성함은 '이창현'이었다) 어느 정도의 장사법을 터득하고 있으니,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포스기는 이 딱딱해진 머리로도 이해하기에 어렵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럼... 이만 가보겠네. 11시에 올테니 좀만 봐주게. 이제 몸이 안따라주니 큰일이야..."


 "예, 들어가 좀 쉬십시오."


 할아버지는 그렇게 가게를 나섰고, 가게에는 나와 세카이 둘만이 남았다.


 "먼지가 좀 많은게 아니구만... 저녁은 어떻게 할래? 편의점에서 때울까?"


 "제가 사올게요오- 제가."


 "그래. 난 신라면 작은거랑 김밥 두 줄. 넌 먹고 싶은거...는 좀 그렇고, 나랑 비슷하게 사와."


 "네네~"


 그렇게 세카이도 가게를 나섰다. 골동품점에 올 손님이 얼마나 있겠는가. 난 세카이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게를 나와 바람이나 쐬기로 했다.


 별도 보이지 않고, 검은 바다가 칠흑같이 어두워지는게 볼만했다. 정화기계들은 계속해서 정화를 지속하지만, 피서를 나왔던 사람들은 대부분이 빠져나간 상태였다. 이런식으로 하루는 끝을 고하고 있었다.


 로봇물고기를 유심히 살펴보던 중, 익숙한 두 목소리가 곁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멀찌감치 편의점이 있던 곳 너머에서, 날 차버린 여자친구와 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내쪽을 향한채 신나게 얘기를 하며 걸어오고 있었다. 난 보이지도 않는걸까, 아니면 자랑하고 싶은걸까. 후자의 경우라면, 그 날 그 전화의 우는 소리는 거짓이었던걸까.


 그리고 그런 그들의 앞에서 엄청나게 많은 짐을 든 세카이가 봉투를 든 채 끙끙거리며 편의점에서 나오고 있었다.


 "아니 뭘 저렇게 사댄거야."


 세카이는 나오기가 무섭게, 앞도 보지 않고 걷던 부장남과 부딪히고 말았다. 남자는 무릎이 조금 아플 뿐이었을테지만, 어찌나 세게 부딪혔던지 세카이는 엎어지고 말았다.


 "아- 이런. 괜찮은건가?"


 "괜찮겠지, 그냥 가자~"


 "좀 다친 것 같은데..."


 "겨우 애 하나 넘어진 것 가지고 왜 그래. 제대로 간수 못한 부모잘못이지. 저렇게 많은걸 어린애한테 시키는 부모가 어디있어?"


 "으음..."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가로등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내게 실망감과 안도감을 같이 주었다. 난 세카이에게 빠르게 걸어갔다. 도중에 그녀가 날 보며 놀랐지만, 난 무시한 채 세카이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칠칠치 못하게 넘어지기나 하고... 뭘 그렇게 산거야?"


 "아-, 헤헤헤. 좀 많이 샀나요오?"


 "카드 쥐어주니까 뵈는게 없구나. 삼만원어치??? 봉투 내놔.....다 참치캔이잖아..."


 "참치김치볶음밥 만들어드리려고요오!"


 "...손이나 잡아. 넘어지지 말고."


 세카이를 일으켜세우고, 우린 가게쪽으로 몸을 돌렸다. 부장남은 날 보더니, 뒷목을 긁적이며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엄청 죄송합니다."


 "죄송해할 것 없으십니다."


 그리고 그녀 곁을 지나가며 낮은 어미로 말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가, 사과를 해야죠."


 순간 부장남의 눈빛이 살짝 놀란것처럼 바뀐 것 같았으나 신경쓰지않았다.


 가게로 돌아온 우리는 컵라면...도 없이 참치캔만 3만원어치를 샀을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부장남과 그녀가 갈때까지 기다린뒤, 다시 편의점으로 가서 참치캔을 어느정도 환불하고 먹을 것을 사먹은 뒤 가게로 돌아왔다.


 배가 어느정도 부르니 손님이 왔다.


 "아, 어서오세요. 찾는 거라도 있으신지요?"


 손님은 평범한 체구의 남자였다. 다만 좀 입은게 연구원 같았다. 남자는 진열되어있던 하드디스크를 꺼내보더니 말했다.


 "이 하드. 얼마에요?"


 "265만원이요. 보다시피 윈도우 7 시절에 쓰던 거라서요."


 "...일시불이요."


 남자가 주는 카드를 슥 긁어서 다시 건네준다. 이러면 265만원 결제가 끝났다. 윈도우 7 시절에 쓰던 하드디스크를 사는 이유는, 그 때가 AV의 전성기였음이기 때문이리라. 요샌 그런게 안나온다. 저 하드디스크도 내용물을 볼수가 없으니, AV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주택복권같은 녀석이었다.


 남자가 나가고 나서 생각해보니, 요새 전국에서 AV의 역사를 찾아나간다는 운동을 본적이 있었다. 어떤 배우는 어떤 영상을 만들었고... 뭐, 그런 것에 대한 운동 말이다. 요샌 AV도 없고, 돈 몇푼만 있으면 먹을 수 있는 약들이 욕구를 채워줄 수 있었으니 이런 운동이 마냥 나쁜건 아닌 것 같았다.


 이 가게는 손님이 없으나 한 번에 큰 돈을 벌여들이니 유지가 될 수 있는듯하다. 지금도 265만원이나 팔았지만, 골동품 자체의 주인이 할아버지였으니 마진 100%였다. 그 후 11시가 되도록 손님은 오지 않았고, 할아버지가 다시 돌아오셨다.


 "아까 모르고 못 준 게 있더구먼... 받게."


 그가 내게 준것은 노랗게 변색된 소유증이었다. 물에 묻은 자국이 군데군데 보였으나 개의치 않았다. 소유증은 깨끗하게 코팅된 상태였다.


 "이제 확실히 자네 로봇이야."


 난 그렇게 미묘한 기분을 느끼며, 세카이와 같이 퇴근했다. 11시에 보는 별하늘은 은하수가 펼쳐져 있어 보기 좋았다. 날씨도 선선했고, 해변가에는 폭죽을 태우는 사람들이 몇 보였다.


 "저거, 저...저거 저저저저도 해보고 싶어요오-."


 "뭐, 폭죽?"


 "네네. 폭주욱..."


 "흠... 그럴까."


 "그래요오!"


 그리고는 내 팔을 들고 질질 끄는 세카이였기에, 난 어쩔수없이 해변가로 직행했다. 그곳에서 폭죽을 팔던 잡상인에게 폭죽과 라이터를 산 다음, 해변가로 나오기 전 계단에 앉아 그녀에게 스파클러를 쥐여줬다.


 "들고 있어봐."


 "이, 이건 저 사람들이 쏘는거랑 다른데요오?"


 "그냥 봐봐..."


 스파클러 끝에 불을 붙여주자, 치지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밝은 불똥이 사방으로 튀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것을 보기 시작하더니,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쁘지?"


 "엄청 예뻐요오..."


 반응이 정말 어린애들같아서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어렸을 때의 날 보는 것 같아서 말이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나는, 어렸을적부터 이 동네에서 살았다. 세카이가 있던 곳과 똑같은 위치에서 내가 스파클러를 보고 있었는데, 처음 이걸 켰을때에는 불길이 뜨거울까봐 끝까지 잡지 못하고 놓쳤던게 기억났다.


 지금은 내가 세카이에게 스파클러를 보여주고 있으니, 시간이 우습게 느껴졌다.


 세개밖에 사지 않았던 스파클러를 전부 써버린뒤, 우린 계단을 내려와 해변을 밟았다. 진짜로 쏘는 폭죽을 쓰기 위해서였다. 이미 그녀의 눈은 반짝거리며 내가 빨리 폭죽을 쏴주길 바라고 있었다.


 "빨리빨리, 어서 쏴봐요오!"


 난 불을 붙인뒤. 그녀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불발인데 이거. 원래 불붙이면 바로 빵빵 나와야하거든."


 "아아... 그럼 이건- 꺅!"


 작은 놀림이었다. 난 폭죽을 해안가쪽 하늘로 겨누게 했고, 폭죽은 순차적으로 나오며 형형색색의 불꽃을 보여주고는, 사라졌다. 자그마한 폭죽놀이가 끝나고 돌아가려던 우리에게 잡상인이 말했다.


 "이틀 뒤에 여기서 폭죽 한 번 거나하게 터트리니까, 관심있음 보러오슈. 아주 그냥 인생에서 지워지지 않을 폭죽쇼를 보여주도록 하지!"


 "아아...예."


 이틀 후면 주말이다. 한 번 와볼만도 싶었다. 우린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뻗어버렸다.


 침대로 들어가자 잠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눈을 깜박거리자 새벽이었다.


 "뭐...뭐야. 잠든건가."


 해가 막 뜨려는 새벽에 뜬 이유가 뭔가 싶어서 갸우뚱거리는데, 곧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미친듯한 바람소리에 창문들이 덜커덩거리고, 저 멀리서 간판이 날아다니는것이 보였다. 확실한 태풍이었다.


 그런 어수선함속에서 초인종을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옆에서 자고있는 세카이를 깨우지 않으며, 조심조심 인터폰 앞으로 다가가봤다.


 "누구세요?"


 [ 안녕하세요. ]


 예수를 믿으라는 사람인가 싶었다. 하지만 정장 차림새라던가, 꽤 젊어보이는 나이를 보니 꼭 그런 사람 같지는 않아보였다.


 "무슨 일이시죠?"


 [ 세계기계연합에서 나왔습니다. 실례지만 문 좀 열어줄 수 있으신지요. ]


 일단은 문을 열어주기로 했다. 집으로 들어온 사람은 여자 한 명이었다. 안경을 쓰고, 여름이라는 계절에 맞지 않는 얇은 버버리 코트가 인상적이었다. 어깨까지만 늘어트린 머리카락은 나름대로 매력이 있었다.


 "여자 혼자서 남자 혼자 사는집에 들어오시다니."


 "혼자는 아닌 걸 알기 때문에 들어왔습니다."


 "사람은 저 혼자입니다만."


 "...일단, 사직 당하신 점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 회사, 야근수당도 뭣도 지급하지 않는 파렴치한 곳이더군요."


 "예? 하지만 사장님은 야근수당이라고..."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2억 9500만원은, 저희가 지급하도록 지시한겁니다. 기계연합에서 주라는 말만 피하라고 했더니, 그딴 식으로 말했나보군요."


 곧 그녀는 어딘가에 전화를 걸더니, 내가 다니던 회사의 이름을 대면서 폭파시키라는 무서운(...) 지시를 내렸다. 곧 전화를 끊은 그녀는, 소파에 앉더니 내게 말했다.


 "이른 새벽부터 찾아오는 실례를 범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제 이름은 김유리, 연합 환경부장님의 비서입니다. 저희측에서 이재철씨에게 알려드릴 소식은 두가지가 있습니다."


 "두가지?"


 "예. 하나는..."


 그녀는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들더니, 내가 소소하게 참여했던 공모전의 로봇을 보여줬다.


 "저희가 주최한 공모전에, 당신이 기획했던 자성관리기계가 뽑히게 되어 조만간 양산에 들어갈 계획입니다."


 "하지만 이건 솔직히말해서 페이퍼로나 가능한 걸텐데..."


 "마더 컴퓨터에 쓸 CPU가 없다고 생각하셨겠죠?"


 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성관리기계는, 인공위성들과 비슷한 위치에서 지구의 자성을 건드리는 꽤 매니악한 녀석으로 기획됐다. 하지만 이 기계들과 네트워크로 교류하며 명령을 내리는 마더 컴퓨터가 필요했는데, 이 마더 컴퓨터는 처리능력이 아주 뛰어난 단 하나의 코어만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단점만 뺀다면, 이 기계는 멍청한 기후를 어느정도 고치는게 가능했다. 폭풍으로 검은 바다를 없앨 수도 있을테고, 아침엔 해가 창창하다가 저녁엔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씨도 더는 없을터였다.


 "요새는 로봇들도, 컴퓨터도, TV조차도, 16개의 코어를 기본으로 사용하죠."


 "싱글코어는 이제 골동품밖에 없잖아요. 아닙니까?"


 "애석하게도 아니게 됬네요."


 그녀는 소파에서 일어나더니, 날 이끌고 내 방으로 향했다. 새근새근 자고 있는 세카이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며, 그녀가 말했다.


 "여기에 훌륭한 싱글코어 CPU가 잠들어있잖아요."


 "그 말은..."


 "마지막 세카이형의 종말을 고할 때라는거죠."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그런 것도 모른채 자고 있는 세카이가 더욱 더 불쌍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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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리와 부장남의 정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