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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판타지
 바닥에 매혹적인 느낌을 주는 갈색 카펫이 드리워져 있다. 내 옆에 있던 블레드가 그 카펫을 밟고 의뢰인에게 다가가 사파이어를 쥐어주며 말했다.

 "주문하신 물품입니다."

 "그래서. 이게 정말로 그 보석이 맞소?"

 블레드가 말하자 의뢰인은 그를 의심했다. 대부분의 의뢰인들은 이렇게 의심으로 시작한다.

 "그러실 줄 알고 문서도 가져왔죠."

 그는 보석상의 친필 사인이 담겨진 종이를 의뢰인에게 내밀었다. 의뢰인은 그제서야 안심하며 돈을 건네주었다. 금화가 3개였고, 다른 건 없었다.

 우린 의뢰인의 저택을 나왔다.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다. 아직 할 일이 있는 우린 먼저 은행으로 향했다. 몫을 나눠야 했기 때문이었다. 금화 한 개를 은화 열 개로 바꾼 뒤, 난 그에게서 금화 한 개와 은화 다섯 개를 받았다.

 "대장간에나 가볼까... 그보다 멜렌, 넌 어쩔거지?"

 "나? 난... 몰라. 너나 따라가지 뭐."

 "안 피곤하냐?"

 "응. 잔소리말고 어서 가기나 해."

 돈을 지갑에 챙겨넣은 뒤 대장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피곤해보이는 그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지만 그것도 다 팔자려니했다.

 대장간은 언제나처럼 더웠다. 원래 이런 곳에선 늙은 대장장이가 나와야 정상이지만, 우리 마을은 조금 달랐다.

 "왔냐! 모기 내놔!"

 "모기가 아니라 무기지 멍청아..."

 블레드가 대장장이에게 딴지를 걸었다.

 "암턴! 내놓으래두?"

 젊은 대장장이 총각이 원하는 건 우리들의 무기일 뿐, 우리들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무기를 뺏어간 대장장이는 "저 의자에 가서 쉬던지 말던지 맘대로 혀!"라는 말만 남겨놓고 모루로 가버렸다.

 난 벤치에 가서 앉았다. 고개를 떨구자 여태까지 단 한번도 자르지 않은 머리카락이 전부 앞으로 쏟아져버렸다.

 무기를 수리하는데엔 10분이면 충분했다. 싸구려 강철 장검과 조잡해보이는 연철 대검에게 뭘 바라겠느냐만... 아무튼, 대장장이는 특유의 욕설로 우릴 자극하며 수리한 무기들을 돌려주었다. 어떻게 다듬는건지는 잘 모르겠다만, 볼 떄마다 새것으로 변신한다.

 대장간을 나오자 추위가 음습했다. 우린 입고 있던 옷을 움켜쥐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오메- 추운거... 난 이만 집에 가서 쉬련다. 내일 보자 멜렌."

 "그래. 내일 10시까지 길드로 와. 예전처럼 지각하면 대장간에 무기 수리할 일이 또 생길 것 같으니까 일찍와줘."

 이것은 일종의 협박이었다. 블레드는 이해했을 것이다. 그는 피곤함이 극에 달했는지, 집으로 도망치듯 달려갔다. 프리랜서가 되어버린 난 아직 에너지가 넘치고 있었기에 길드에 들어가 의뢰목록을 확인하기로 했다. 우리 마을은 은행 옆에 대장간이, 대장간 옆에 길드가 있었으므로 쓸 데 없이 여기저기 누빌 필요가 없었다. 길드장이 제안한 아이디어였지만 지금도 참신하다고 생각한다.

 길드로 들어서자 거대한 게시판이 나타났다. 의뢰인들은 이 게시판에 여러가지 의뢰를 걸어놓는다. 초급 길드원들을 위한 심부름이 대다수인데, 괴물을 죽여 전리품을 얻거나 하는 위험한 의뢰는 조금 더 들어가야 했다. 나같은 경우엔 이 길드가 생길때부터 있던 선임 길드원이었으므로 특수 의뢰를 받을 권한이 있었다. 비록 수준은 중급에도 못미치지만, 특수 의뢰라고 해서 어려운 것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난 길드원들에게 인사한 뒤 가장 안쪽에 위치한 게시판으로 다가갔다. 세 개의 의뢰가 있었다.

 -맘모스를 테이밍해주세요-

 -우리 남편을 새디스트로 만들어주세요-

 -내 노예가 되어주세요-

 터무니 없는 의뢰밖에 없었으므로 난 게시판을 나섰다. 중급 의뢰목록이 있는 곳으로 가려는데 마스터가 날 불러세웠다.

 "멜렌! 잠깐만 이 쪽으로."

 난 의자에 앉아 파이프 담배를 연신 피워제끼는 마스터에게 다가갔다. 평상시의 마스터라면 철 갑옷을 입고 샌드백과 함께 칼춤을 추고 있었을텐데, 오늘은 중후한 멋이라도 잡아보려는지, 갑옷도 없었고 항상 허리에 차고 있던 검도 보이지 않았다. 난 마스터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테이블에 있는 홍차를 마셨다.

 "마스터. 오늘은 조~금 멋있어보이네?"

 마스터는 입을 열지 않은채로 조용히 웃더니 말을 이었다. 구릿빛 피부에 짧은 금발 머리는 다시금 자신이 전사임을 깨우치게 해주고 있었다.

 "지금 받아놓은 의뢰 없지?"

 "응. 특별히 시킬 일이라도?"

 마스터는 내게 종이 하나를 내밀었다. 종이를 펼쳐보자 맨 윗줄에 '아트레드 말루'라는 이름이 적혀져 있었다. 아트레드 말루란 사람은 아트레드 남작이라고도 불렸는데, 그는 항상 성실하고 성격또한 모자란 데가 없으며 굉장히 똑똑해 여러가지 마법도 부리는 사람이라고 소문이 나 있었다. 차기 왕은 그가 될 게 너무나도 뻔할 정도로 그는 다재다능하고... 아무튼 최강이었다. 그런 사람이 우리 길드에 의뢰를 보냈다.

 의뢰 내용은 굉장히 짧았다.

 -클레느라가 필요하다. 보상은 금화 5000개와 3대를 이을 명예.-

 난 마스터를 올려다보았고, 마스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스터는 다른 길드원들이 아닌 내게 이 일을 시키고 싶었던 것 같아보였다.

 "하지만. 클레느라는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왕관이잖아. 그걸 내가 어떻게... 찾으라는거야, 이 바보 마스터야!"

 난 대뜸 화를 내버렸다. 의뢰가 터무니없기도 했고, 마스터의 행동도 상당히 의심이 갔기 때문이었다.

 "윽. 너무 망망대해라는건 알아. 하지만 이 일을 믿고 맡길 사람이 너하고 블레드밖에 없어서 말이지... 그리고 누구한테 바보래? 슈퍼 울트라 천치 멍청이 해삼 말미잘주제에!"

 오른팔이 대검 손잡이에 다가갈 뻔 했으나 간신히 참아낼 수 있었다. 마스터는 계속해서 말했다.

 "클레느라가 있을 법한 곳을 알아. 내일 블레드하고 같이 오도록."

 "안 그래도 내일 10시보다 늦게 오면 천국을 보여주게 해준다고 말해뒀어."

 "좋은 협박이군. 오늘은 여기서 잘건가?"

 난 의자에서 일어났다. 찻잔은 비운지 오래인 것 같았다. 머리카락을 가다듬고 마스터에게 말했다.

 "집에서 잘래. 할 일이 많아."

 마스터는 별 말이 없었다. 난 길드를 나와 내가 사는 집으로 향했다. 700골드나 주고 산 비싼 집이었다.

 클레느라... 난 그것을 찾는 데 포기하기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해야 찾을지 생각하고 있었다.

 아침은 아주 빨리 찾아왔다. 집을 대충 청소한 뒤 길드에 가기로 했다.

 아침의 길드는 어수선하다. 여러 길드원들이 자신들의 의뢰를 찾기 위해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같은 시간... 그러니까 9시엔 초급 길드원들이 아주 많았는데, 이 녀석들은 아침부터 의뢰를 수주하지 않으면 당장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신분이었으므로 새벽부터 분주히 움직이는 근면성실한 사람들이었다.

 난 광장에 비치되어 있는 벤치로 다가갔다. 광장에선 사람들이 체스나 결투를 즐기고 있었다.

 "이걸로 3점! 오늘 저녁은 내 차지다!"

 누군가가 결투에서 이겼는지, 레이피어를 높이 들며 만세를 외치고 있는 게 보였다. 난 그들을 무시하고 책을 펴들었다. 근처에서 길드원들이 날 보고 수군대는게 들려왔다. 대부분이 부정적인 말이었다.

 "멜렌이다 멜렌. 저 여자는 선임으로 들어와선 하는 일도 없이 마스터한테 꼬리나 치고 있대!"

 "생긴건 반반하게 생겨가지곤... 쯧쯧. 창녀촌을 가야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다냐? 내가 작업한번 걸어볼까?"

 항상 듣는 말이므로 무시하는건 어렵지 않았다. 중간에 날 툭툭 건드리고 다니는 녀석들도 즐비했다. 이들은 마스터가 없을때만 이렇게 수군댔고, 마스터가 나타나면 쥐죽은듯 조용하게 있는 이른바 졸렬한 자들이었다.

 결투가 6번정도 진행되고나서야 난 책을 덮을 수 있었다. 시간은 9시 59분. 블레드가 광장에 도착한 것이었다.

 "늦진 않았네... 의뢰 일로 할 말이 있으니까 따라와."

 "오케이. 앞장서."

 난 블레드를 데리고 마스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마스터는 어제의 의자에 앉아 검을 닦고 있었다. 하지만 그 빛나는 갑옷은 보이지 않았다.

 "왔는가? 둘 다 거기 앉도록."

 "의자가 하나밖에 없는데?"

 "그러면 서있던지."

 결국 의자를 먼저 차지한 내가 앉고, 블레드는 서있기로 했다. 미안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어쩌랴. 세상은 선착순인것을.

 마스터는 어제의 일을 설명한 뒤, 블레드가 나와 함께 하도록 설득시켰다. 블레드는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는지 단박에 OK해버렸지만, 난 이 한달짜리 여정을 남정네 한 명과 떠나야 한다는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좋아. 마침 준비도 끝냈으니까 바로 출발해볼까?"

 벌써부터 들뜨기 시작한 그를 마스터가 제지했다. 마스터는 검집에 검을 넣으며 말했다.

 "칼로네 숲. 그곳이 유일한 곳이다. 이 정보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게 아니니까 아마 숲은 조용할거야."

 "어떤 정보통을 고용한건지 모르겠지만... 대단한데?"

 블레드가 마스터를 칭찬했다. 마스터는 블레드에게 허리춤에 찬 검을 건네주었다. 블레드가 검을 받고 어쩔 줄 몰라하자 마스터가 말했다.

 "살아서 돌아와라. 언제나처럼 말이지."

 워낙 규모가 큰 임무였기에 우린 그에게 맹세했다. 절대로 살아돌아오겠다는 맹세를.

 길드에서 나온 나와 블레드는 곧바로 지도를 펼쳤다. 지도엔 우리가 사는 도시를 중심으로 주변의 국가, 대륙, 신기한 곳들이 그려지고 표시되어 있었다. 우리 국가는 빈시텔그라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국력으로는 꼴등에서 2번째를 달렸고, 제정또한 굉장히 좋지 못했다. 이번 의뢰로 받는 금화를 기부하면 제정이 많이 나아질 정도였다. 하지만 우린 별로 국가의 중요성을 못느끼고 있었다.

 칼로네 숲은 국경선에 끼어있는 곳이다. 규모가 크긴 했으나 대부분이 숲이었고, 숲 중앙엔 유적이, 그 유적 주변엔 늪이 펼쳐져 있어 볼만한 경치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있는 도시에서 북서쪽에 있었다.

 그러한 숲으로 가기까진 4일에서 5일이 걸렸다. 이 마을에서 출발할 경우 항구도시 큐네를 경유해 가야했으므로, 우린 처음 목적지를 큐네로 잡은뒤 다음 목적지를 잡았다. 3일동안 걷다보면 숲 근처에서 바로나라는 이름의 촌락이 나왔으므로, 그 곳은 우리의 두번째 목적지이자 베이스캠프가 되었다.

 "쫄았냐 멜렌?"

 "쫄긴 누가 쫄아! 그깟 왕관 찾으면 그만 아냐?"

 "숲에 없을수도 있는데."

 "몰라, 그건 그 때가서 생각하면 되겠지."

 난 너무 책임감이 없었다. 사실 이 의뢰도 굉장히 낮은 비중의 임무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린 성벽을 넘고 서쪽에 위치한 해안으로 곧장 걸어갔다. 항구도시니까 해안에 있겠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결국 밤이 깊었고, 우린 노란빛의 해안가에서 노숙을 했다. 정말정말 멍청한 우리 블레드님께서 북쪽과 남쪽을 헷갈렸기 때문이었다. 바다가 서쪽이고, 평야가 동쪽인걸 알면서도 남쪽을 북쪽이라고 우겼다. 정말 진심으로 죽이고 싶었다.

 그렇게 모닥불을 피우고 가방에 넣어둔 침낭을 꺼내 잠들 준비를 하는데, 평야에서 누군가가 해안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언뜻보면 환각처럼 보이기도 했으나 안타깝게도 진짜였다.

 그 실루엣은 빗자루를 탄 마법사로 보였다.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닿았고, 로브같은 것을 입고 있었는데, 날아오는 것 치고는 상당히 느리게 오고 있었다. 난 침낭을 준비하던 손을 멈춘채 계속해서 그것을 바라보았다.

 "뭘 보는거야? 아까부터."

 "저길 봐. 누군가가 오는 것 같아."

 "누가 온다고?"

 블레드도 나와 똑같은 자세를 취하며 실루엣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내 가까워지더니, 소녀의 모습으로 변했다. 중간부터는 빗자루를 들고 그냥 뛰어오고 있었다.

 난 소녀에게 다가갔다. 하늘색의 커텐이 쳐진듯, 살랑거리는 머릿결이 내 피부에 스쳤다.

 "너는...?"

 소녀는 우리를 모르는 듯 했다. 그냥 냅다 날아온건가? 멀찌감치에서 블레드가 우릴 응시하고 있었기에 난 소녀를 데리고 그에게 갔다.

 "와우. 꼬마애네. 이런 밤중에 평야에서 뭘 하는거지?"

 "꼬마애라니! 이 몸은 말이다! ...14살이나 드신 몸이라구!"

 "그럼 아직 꼬마애잖아."

 "꼬마애네."

 내가 덧붙였다. 나도 블레드도 꼬맹이라고 하면 놀림조가 되어서 소녀가 싫어할 것이라는걸 알고 있었다.

 "꼬마야. 이름이 뭐니?"

 "수."

 "수? Sue?"

 "잘 알고 있네. 내 이름은 수! 수님이라고 불러!"

 수... 그보다 수님이라니! 이제 스물이 넘어가는 우리가 이런 꼬마애한테 존칭을 표할 일이 있을까?

 "왜. 귀족님이시냐?"

 "응. 난 라니타 왕국에 있는 요타콘다 가문의 첫째따님이시다! 지금은 수행중이라서 이런 가난한 국가까지 여행온거지만..."

 "그런 가문은 처음 들어보는데. 우리가 워낙 촌구석에서 살았나보다."

 블레드는 실없는 웃음을 보여주었다. 수는 모닥불 옆에 앉더니, 로브에 숨겨둔 작은 가방에서 구슬을 하나 꺼내며 말했다.

 "배고프다. 뭐 먹을 거 없어?"

 "먹을거라. 뭐하면 이 생선이라도 먹어볼래? 귀족님 입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블레드가 건네주는 생선은 사실 내가 먹을 생선이었다. 하지만 나보다 어린 것이 굶는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언짢았기에 난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생선을 집어든 수는 냄새를 맡더니 그대로 그 생선을 바다에 던져버렸다. 등에 있던 검을 뽑으려는데, 블레드가 "아직 어린애잖아"라는 수법을 사용하며 날 이도저도 아니게 만들어버렸다.

 "이런 건 별로야. 베이컨 같은 건 없어? 당신들 모험가 아냐?"

 "오늘 큐네에 도착할 예정이었어. 하지만 저 슈퍼멍청이 때문에 완전히 멀어져버렸지."

 "호오. 당신 이름이 슈퍼멍청이?"

 블레드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 이름은 블레드. 저 사악한 여자애 이름은 멜렌이야."

 "접두어가 심히 거슬리는구나?"

 "사랑하는사람에겐 악착같고 한결같은의 첫글자만 따서 만든거야."

 이러던 와중, 수는 아까 꺼낸 구슬을 내게 건네주었다. 붉은 빛이 영롱한 구슬이었다.

 "선물. 잃어버리면 평생 원망할거야."

 "헤에... 고마워. 나도 선물을 줘야겠는데-"

 난 구슬을 배낭에 넣고 그 배낭에서 다른 물건을 꺼냈다. 심심할 때마다 줄곧 듣던 오르골이었다. 값도 쌌으므로 도시에서 다시 구입하면 그만이었기에 난 오르골을 수에게 건네주었다.

 "오르골이야."

 "오오! ...르골."

 수는 허무맹랑한 한마디를 남기더니 오르골을 열었다. 마법석이 박혀있었기에 별다른 원동력 없이 오르골이 돌아갔다. 오르골의 음악은 세계적인 가수 밀라냐의 노래 중 하나였다.

 "아, 이거 들어본 적 있어. 밀라냐의 고급잉여 맞지?"

 수도 그것을 아는 것 같았다. 워낙 유명하긴했으므로 못 맞추는게 더 이상했다.

 블레드가 수를 위한 침낭을 하나 준비해놓자 수는 당연한 것처럼 그 침낭에 누워 잠들었다. 나도 블레드도 피곤했기에 이만 눈을 붙이기로 했다.

 아침이란걸 알기까지는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난 일어나자마자 나뭇가지를 주워와 모닥불을 피운뒤, 바닷물을 끓여 식수를 만들었다. 바닷물에 세수를 하게되면 따가운 느낌이 들었고, 난 그게 너무 싫었다. 귀찮더라도 식수로 세수하는게 낫다.

 "으음... 일찍 일어났네?"

 블레드도 어느샌가 일어났다. 가장 일찍 잔 수는 여태까지도 자고 있었지만, 별로 신경이 쓰이지도 않았다. 밤에 쳐놓은 그물을 걷어 생선을 구해온 블레드는 불을 떄우고 남은 나뭇가지에 비늘 벗긴 생선을 꽂아 모닥불 옆에 설치했다.

 "좋았어. 이제 수도 슬슬 깨워볼까? 어이 수!"

 수는 생각보다 잠이 많았다. 우린 그녀를 깨우는 게 쉽지 않음을 감지했고, 결국 포기했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자기가 알아서 일어날 것이다.

 생선을 조금 남긴채 식사를 끝낸 우리는 침낭을 가방에 넣고 북쪽으로 갈 채비를 했다. 그 때가 되서야 수도 일어날 수 있었다.

 "깨워줬어야지 바보들아!"

 "누구보고 바보래? 그보다 빨리 거기서 비키지?"

 내가 화를 내자 그녀는 침낭에서 나와 로브를 챙겨 입었다. 졸린 눈으로 생선을 뜯는 모습이 귀여웠다.

 "그런데. 넌 지금 어딜 가고있지?"

 블레드가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생선을 입에 문 채로 말했다.

 "나? 난... 몰라. 딱히 갈 데가 없는데."

 "그래? 그럼 우리들이랑 같이갈까?"

 둘이서 서먹서먹하게 가는 것보단 나은 방법이긴 했다. 수는 흔쾌히 수락했고, 우린 더 이상의 지체없이 큐네로 출발할 수 있었다.

 "멜렌? 이름이 멜렌 맞지?"

 배낭을 멘 채 해안을 따라 걷고 있는데, 아직까지도 생선을 물고 있는 수가 내게 말했다. 뭔가 볼 일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 왜?"

 "내가 어제 준 구슬있지. 그거 쓰는 법 알아?"

 "아니."

 난 생각보다 무뚝뚝했지만, 할 말이 그것밖에 없었다.

 수는 웃으며 말했다.

 "그거 정령이야!"

 "멜렌, 너 좋은 거 받았네?"

 "정령? 어린애 장난 같은 소리를 하는구나."

 난 코웃음을 쳤다. 내 엄지손톱만한 구슬이 정령이라니... 웃기는 소리다. 마법도 있을까 말까 토론이 쟁쟁한데 정령따위 믿을까보냐!

 ...하지만 수의 표정은 진지했다. 난 혹시나 싶어 주머니에서 구슬을 꺼냈다. 우리 셋은 이러면서도 계속해서 걷고 있었다.

 구슬은 아직도 붉은 빛이 감돌고 있었다.

 "멜렌 검은 싸구려라서 정령이 들어갈 구멍이 없네? 블레드도 그렇고... 둘 다 미스릴제 정도는 써야하는거 아니야?"

 너무나도 건방진 그녀의 태도에 난 주먹을 날릴뻔 했으나, 그녀의 다음 한마디로 인해 기분이 풀렸다. 다음엔 절대로 안봐줄거야.

 "하는 수 없지. 큐네에 가면 이 몸이 검이라도 하나 장만해줄게!"

 "아싸 공짜검!"

 난 구슬을 계속해서 보고 있었다. 구슬 속에 뭔가가 들어있었기에 자세히 확인해보니 계속해서 꿈틀대는게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기에 꽤 놀라웠다.

 "이 꿈틀대는게 정령인지 뭔지?"

 "그래. 정령! 아마 그 녀석이 검에 박히면 모험이 재밌어질걸?"

 아직까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금화 400개짜리 미스릴 검을 가진다는 것 자체로도 충분히 이 여정이 나아질 것 같았다.

 나와 블레드는 설레는 가슴을 부여잡고 밤이 깊도록 큐네를 향해 걸었다. 수는 출발할때부터 빗자루를 타고 있었기에 별다른 투정이 없었다. 몬스터도 보이지 않아 정말 평화로웠다. 하긴, 요즘 멸종위기니까 몬스터들도 각자의 생존비법을 찾아나가느라 힘들 것이다.

 오밤중이 되도록 걷자 드디어 거대한 선박들과 주홍색의 불빛이 만발한 항구로 도착할 수 있었다. 대충 보아하니 여기가 큐네였다.

 "일단은 여관! 여관을 찾아야돼!"

 블레드가 절규했지만 사실 내 마음도 간절했다. 우리 세 명은 대장간대신 여관에 향하기로 했다. 항구에서 번화가까지는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었기에 우린 금새 여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관 안은 담배냄새와 술냄새, 춤추는 여자들의 향연이 펼쳐져 있었다. 우린 잠을 자러왔지 밤거리를 즐기러 온 것이 아니었으므로 조용히 2층에 가 방을 잡기로 했다.

 "2인실 하나랑 1인실 하나요."

 "예, 은화 40개 되겠습니다."

 하룻밤 묵겠다는데 더럽게 비싸게 받는구나... 우린 저녁을 주문한 뒤 로비로 향했다. 2층에 위치한 로비는 아무도 없이 조용했다. 나무 의자에 앉은 우리들은 대충 내일 할 일을 생각해보았다.

 "누구누구때문에 하루 까먹었고... 오늘은 여기 도착했으니까 이제 28일 남았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군... 맞다. 수, 너하고는 숲 앞에서 안녕이야."

 "숲? 칼로네 숲 말하는거야?"

 "그래. 거긴 아주 위험해."

 "그러면 꼭 가야겠네!"

 수는 반색을 하며 기뻐했다. 우린 그게 너무나도 황당했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라니타에서 이런 누추한 곳까지 온 두번째 이유라구!"

 "첫번째 이유는 뭔데?"

 "어... 아무래도 마법수양이겠지?"

 그러면서도 그녀는 제대로 된 마법을 빗자루로 공중부양하기 정도밖에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우린 의심스런 눈초리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진짜다? 아니, 진짜래두!"

 "그럼 좀 괜찮은 마법 좀 써봐."

 "흥, 누가 못 쓸 줄 알고?"

 그녀는 앉은 상태에서 눈을 감더니, 갑자기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우린 그 모습을 보고 이상하다고 여겼지만 잠시 후, 정말로 마법이라는 게 나타났다.

 블레드는 영문도 모른채 의자에서 넘어져버렸다. 나도 넘어질 뻔 했으나 간신히 테이블을 부여잡고 일어설 수 있었다. 수가 말했다.

 "봐봐. 땅바닥을 기름 바른것처럼 바꿔주는 마법이야!"

 "이야... 이거 신기한데? 다른 마법은 없어?"

 난 블레드를 쏘아본 뒤 다른 마법을 쓰려는 수를 제지했다. 이번에도 이런 마법을 썼다간 분명히 한 명은 죽을 게 뻔했다.

 마침내 여관 주인이 식사를 가져왔다. 우리 길드가 있던 도시인 유즐레에서 만든 와인은 서비스로 끼어있었다. 식사는 우유와 꿀을 더한 스테이크와 약간의 피클, 바게트와 샐러드, 버터였다. 저녁 식사같지 않은 식사였다.

 "내일은 수가 검을 사주는대로 여길 떠나자. 우린 시간을 지체할 틈이 없어."

 내가 말하자, 블레드가 대꾸했다.

 "숲을 전부 뒤질 필요가 있을까? 그냥 가운데에 있는 유적만 조사해도 되지 않아?"

 "글쎄. 늪지대가 독으로 뒤덮여있는데 유적으로 가는 게 가능할까."

 "무슨 얘기를 그렇게 심각하게 해? 뭐 잃어버렸어?"

 그러고보면 수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수, 클레느라 알지?"

 "아... 그 왕관?"

 "그래 그 왕관. 우리 둘은 그걸 찾고 있어."

 "호오~ 신기하다~"

 난 바게트 빵을 한 입 베어물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빵은 고소해서 향이 아주 좋았다. 빵을 먹은 다음엔 와인을 한 잔 들이켰는데, 의뢰가 끝나고 마시는 축하주같아 느낌이 이상했다.

 "그런 건 왜 말하는건데? 죽고싶냐?"

 "뭐 그냥... 궁금해하잖아? 그리고 너 취했다."

 와인을 한 잔밖에 마시지 않았는데도 난 취해있었다. 피로가 쌓여서 그런가... 난 블레드의 인도를 받아 숙소로 향했다. 침대에 눕자 내가 침대 속으로 빨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잘 자 멜렌."

 "잘 자기는 개뿔이..."

 별로 그를 해코지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에 난 곧바로 잠들어버렸다. 오늘은 왠지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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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디어가 안떠오름... 해결책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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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바라KSND 2012.03.12 00:15
    제목이 신박하네요.ㅎㅋㅋㅋㅋㅋㅋㅋ

    오타가 군데군데 보이네요.. 한글에 넣어서 맞춤법 검사나 한 번 써놓고 다시 읽어보셔요.ㅎㅎ

    그리고 예를 들면
    제정-황제가 집권하는 정차 형태
    재정-어떠한 단체나 개인이 쓸 수 있는 돈
    같은 뭔가 한끝 차이로 틀려버린 것도 있네요.ㅎㅎ

    아이디어.... 아무래도 이 다음 이야기에서는 검을 사러 가려는데 문제가 생겨서 꽈당 쿵 한다던가 마침내 숲에 갔는데 초반부는 에이뭐야 방심했는데 그것때문에 식겁하고 어찌어찌 도착은 했는데 입구가 안보여서 고생하고 들어가서는 어찌어찌하다가 내부 분열이 일어나서 누가 혼자 가다가 문제생겨서 끼야악 하다가 팀원이 구해주고는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래서 어찌어찌 가져왔는데 그 마스터에서 반전이라던가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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