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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똑딱대는 소리가 계속될 것 같던 정적을 깨고, 내 귀를 때린다. 그 소리에 이불을 슬그머니 걷어차며 깨어난 나는 시계를 보면서 생각한다.


 '시계가 좀 시끄럽군. 다른 걸 사야하나.'


 매일매일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사실상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한다. 시계란 그런 것이다. 시계 자신의 역할에만 충실하면, 시계의 다른 것들은 길거리의 가로등처럼 무시하게 된다.


 짧은 바늘은 8, 긴 바늘은 4. 지금 시각은 8시 20분에서 플러스마이너스 5분이다. 난 똑딱거리며 바삐 움직이는 시계에서 눈을 떼고, 포근하고 따듯한 이불의 품에서 벗어나 타일이 만연한 화장실로 향한다. 세면대에서 수도꼭지를 틀고, 차가운 물을 한움큼 퍼서 멍해진 내 얼굴에 갖다댄다. 오한이 내 얼굴을 휩싸고 지나갔지만, 몇몇 물들은 내 얼굴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수건으로 그들을 닦아내고 나서야 얼굴은 비로소 물이 없이 깨끗해진다.


 금요일은 그냥 그렇다. 아무런 일도 없는 날이다. 나는 오늘, 저 시계를 대신할 또 다른 녀석을 구매하러 가기로 했다. 어젯밤 다리미로 박박 민 면바지와 와이셔츠를 입고, 집을 지켜줄 열쇠와 시계를 살 수 있는 지갑을 챙긴 뒤 집을 나선다.



-2



 시계를 파는 곳은 시계방이지만, 어째선지 금은방에서도 시계를 팔고 있다. 집에서 조금 걸으면 금은방이었고, 오래 걸으면 시계방이었는데, 오늘은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시계방으로 향했다.


 시장속에 위치한 텁텁한 분위기의 그곳으로 들어가자 이상한 기분이 몸을 휩싸고 돌았다. 낡은 자명종과 멍청하게 생긴 뻐꾸기가 유리로 된 진열장 위에 늘어서있다. 난 그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저기요-"


 진열장 너머 머나먼 곳에서 한 노파의 목소리가 들린다. '예, 예.' 노파는 미닫이 문을 열고 나와 성큼성큼 내 앞으로 다가왔다. 걷는 것 하나도 힘들어 보일 법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상당히 건강한 것 같았다.


 "무슨일로 오셨수?"


 "아... 시계를 사려고 하는데요."


 "팔 시계가 없는데..."


 그녀의 말에 난 황당할 지경이었다. 시계방에서 시계를 팔지 않는다는 건 무슨 소리인가. 노파는 진열장 밑에서 어떤 상자를 꺼내더니, 내게 말했다.


 "그래도 하나 있구려. 에구구, 이게 마지막 물품인가보네. 그냥 가져가구랴."


 일반적인 갈색 상자엔 1000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상자엔 아무런 그림이나 글씨가 쓰여져 있지 않았다. 굉장히 의심스러운 상자였다.


 난 지갑에서 1000원을 꺼내 억지로라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상자를 받아든 나는 시계방을 나선 뒤 집으로 돌아왔다.



-3



 똑딱거리는 시계를 탁자위에 올려놓고, 1000원밖에 안하는 값싼 시계가 든 상자도 낡은 시계와 똑같이 탁자위에 올려 놓았다. 생각해보니 건전지를 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일단은 상자를 열어 시계를 확인해야했다.


 갈색 상자를 열자 갈색 상자보다 약간 작은 크기의 또 다른 상자가 있었다. 상자는 눈이 부실만큼 하얀색이었고, 오른쪽 위에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LiFe CLoCk-


 대문자와 소문자가 아무렇게나 적혀진 시계는, 일반적인 디지털 시계를 담고 있었다. 하얀색 테두리에 검은 화면, 계란말이와도 같은 생김새와 양손에 잡히는 적당한 크기. 난 설명서를 탁자에 두고 낡은 시계가 있던 자리에 새로운 디지털 시계를 놓았다. 다행히도, 이 시계는 220V의 코드를 꽂아서 돌리는 장치였다. 코드를 꽂자 검은 화면에 녹색 숫자가 떠올랐다.


 -00y:000d:02h:05m-


 시계엔 AM이나 PM같은 표시가 없었다. 난 탁자에서 설명서를 펴 읽기 시작했다.


 -LiFe CLoCk : 당신의 남은 시간은?-

 -제작사 : Puppy Essence

 -이 시계는 당신의 삶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말해주는 시계입니다.-

 -시각의 조절은 불가능하며, 사람에 따라 시각은 틀리게 나옵니다.-

 -y는 year, d는 day, h는 hour, m은 minute을 나타냅니다.-

 -예를 들어 시계에 08:021:04:15라고 쓰여져 있다면, 당신의 수명은 앞으로 8년 21일 4시간 15분까지 라는 것입니다.-

 -수명이 다하면 어떤 식으로든 죽게 됩니다.-

 -당사는 이 제품으로 인한 절망적인 상황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난 다시 디지털 시계를 보았다. 그럼 내게 남은 시간이 앞으로 2시간 5분이라는 뜻인가? 갑자기 만감이 교차하는 것을 느꼈다. 2시간 5분, 아니 4분 후면 내가 죽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저 시계가 내게 농담을 던지는 것처럼 보였다. 난 아직 창창한 20대다. 군대도 다녀오지 않았고, 이제 막 자취방을 얻었고, 대학교에서 여자친구를 사귄지도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인 내가 2시간 3분 후면 죽게 된다.


 그 노파에게 웬지 모를 분노를 느끼고, 난 침대에 누워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글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이건 너무 비현실적인 일이었고, 난 이 사태를 이해하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결국 시계를 믿지 않기로 한 나는 시계를 다시 상자에 담은 채 시계방으로 향했다. 이 시계를 도로 환불할 생각이었다. 갑자기 1000원을 준게 후회되었다.

  • profile
    하늘바라KSND 2013.04.07 23:38
    문체가 조금 바뀌셨네요?
    오랜만이라 그런가...
    어째서인지 시각적인 묘사가 많아진 것 같네요.

    재밌게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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