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에르시온 - 1화

by SCUD posted Sep 2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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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판타지

 

 

 

 

 

 바람이 새차게 불었다.

 

 상식적으로 기상현상이란 것을 찾을 수 없는 그 곳에서 바람이 불었다.

그 평범하지 않은 사실은 그곳을 걷던 루시페르에겐 어떤 종류의 호기심도 제공해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에 대한 원인 제공을 한 것이 자신이기 때문이었다.

 

 "생각치도 못한 곳에서 시작되는군.."

 

 그가 두 발을 딛고 있었던 그 거대한 다리엔 사람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어떻게 창조된 지 모를 그 거대한 다리는 일반적으로 차원의 문 쯤으로 받아들여지는 곳이었고,

따라서 차원 도약을 시도하는 자가 없는 이상 그 다리에서 새찬 바람을 일으키며 등 뒤에 달린 두 날개를 휘몰아치는.. 아니, 날개가 스스로

휘몰아치는 듯한 그 현상을 볼 자는 없었다.

 

 루시페르의 표정은 이를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담담했지만, 그의 내심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당황한 기색이 섞여있는 몸짓을 하며 날개를 거둬들었다. 그리고 발걸음을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제길.."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짧은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그것엔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깊은 무력감에 빠져버린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을 죽도록 자책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감정이든 모든 것의 원인이 된 것은 그의 날개였고,

그것이 하얗게 새고 있었다는 것은 루시페르로 하여금 그의 긍지를 모조리 빼앗아가는 현상이었다.

 

 마계의 지배자로서의 긍지. 그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종류의 우월한 긍지였다.

 

 마계의 주민들은 모두 천성이 악하다.

창조되기를 그렇게 창조되기도 했지만, 일평생을 살아가며 만들어지는 그들의 가치관에는 악이 너무나도 큰 자리로 자리잡는다.

따라서 그들은 남을 지배하는 것을 좋아한다. 바꿔 말하면, 그들은 남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은 절대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족들의 계급 사회가 순수한 힘의 순서가 되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런 그들의 위에 군림한다는 것은 당연하게도 절대적인 힘을 가져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루시페르는 그 절대적인 힘을 지녔고, 그는 마계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다. 때로는 경외의 대상으로, 때로는 공포의 대상으로, 그는 모든 마족의 위에 군림했다.

 

 그 긍지를 잃을 위기에 처하며 루시페르는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고 있었고,

어느새 그의 앞에 숨이 막혀버릴 듯이 거대한 무언가가 자리잡았다.

 

 루시페르는 자포자기하는 심경으로 그 숨막힐듯 거대한 통로로 몸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