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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퓨전

이건 소설이라기보다는 게임 시나리오에 가까울 만큼 일직선적인 스토리다.

라는 지적을 예전에 국어선생님한테 들은 적이 있는 소설입니다.

잡설은 넘어가고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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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소년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몇십 명이 한꺼번에 방으로 몰려드는 통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거의 강물에 떠내려가다시피 문을 넘어간 소년은 공간이 넓어져 물살이 느려져서야 안도했다.


넓은 방 안으로 쫙 쏟아진 물은 각각 방 안에 놓인 의자들에 차례차례 앉았다. 소년 역시 그들을 따라 5번째 줄의 어느 의자에 주저앉았다. 긁힌 왼팔을 살살 문지르며 슬쩍 뒤를 돌아보니 아직까지도 사람들이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다.


의자가 모자라는 거 아닐까.


소년은 나지막히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한 순간 인파는 거짓말처럼 뚝 하고 끊겼다. 하지만 여전히 의자는 부족해 보였다.


“자자, 서두르지 마시고 질서를 지켜 앉아 주세요! 의자는 아직 많습니다!”


출입문 근처에서 강물을 통솔하고 있던 남자가 외쳤다. 빠르게 인원을 파악한 남자는 패널을 열어 의자 몇 십개를 꺼내 곁의 여자에게 건넸고, 그의 동료처럼 보이는 여자는 그것을 가장 맨 뒷줄부터 차례차례 세워 놓았다.


남자의 계산은 정확해, 더 이상 주춤하며 서 있는 사람은 없었다. 소년은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방의 가장 앞쪽엔 누구의 것일지 모를 아이보리 컬러의 거대한 패널이 위치해 있었고, 그것의 옆쪽으로 수많은 책장들이 죽 길게 이어졌다. 구시대적이라는 생각을 한 소년은 책장으로부터 시선을 돌려 다시 뒤를 보았다.


“────!!”


인원을 통솔하던 남자의 목소리가 완전히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에 묻혔다.


“서로 처음 보는 사이일 텐데 잘도 떠드네…….”


소년이 혼잣말을 했다. 어디선가 날아든 욕설 역시 여기저기서 들리는 소리에 허무하게 지워졌다.


“──! ───!!”


남자는 소리를 몇 번 더 질렀으나 똑같이 집어삼켜졌다. 여자는 짜증을 내고 있는 그에게 뭐라고 말을 했다. 잠시 후 패널을 띄워 뭔가를 실행한 그는 크게 외쳤다.


“모두 조용! 조용히 해 주세요─!”


방 전체에 다른 목소리를 모두 묻고도 한참 남을 만큼의 큰 소리가 울렸다.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귀를 틀어막았고, 방금까지 떠들던 사람들은 모두 일순간에 조용해졌다.


“음, 됐고……. 그럼, 지금부터 안내 영상의 상영을 개시하겠습니다. 관람하실 때에는 떠들지 마시고 조용히 경청해 주세요─”


남자가 영화관 안내방송마냥 형식적으로 말했고, 그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방의 조명이 모두 팟 하고 꺼졌다. 그리고, 거대한 하얀 패널에서 뭔가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시작이다.


소년은 자신에게 되뇌었다. 그것은, 단순한 시작의 의미를 떠나 소년의 강한 의지를 담고 있는 주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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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지 색 벽지가 편안한 분위기를 내뿜는 방을 배경으로 웬 남녀가 서 있었다. 깍지를 낀 손을 뒤통수에 대고 살짝 웃고 있는 남자는 척 보기에도 꽤나 쾌활한 인상이다. 나이는 나와 비슷한 정도일까. 희미한 갈색이 도는 검정색의 짧은 머리카락과 주변 풍경이 그대로 비칠 것만 같은 까만 눈이 그가 아시아계 사람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반면 그의 옆에 서 있는 여자는 남자와 정 반대의 성질을 띠고 있었다. 잘록한 허리에 가볍게 올려져 있는 왼손은 새하얗고 약해 보였으며, 표정 역시 사뭇 진지한 느낌이 났다.

 

또한 남자가 아시아계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그녀는 외모에서 지역적인 특징을 찾을 수 없었다. 허리까지 늘어뜨린 긴 머리카락은 달을 연상케 하는 수려한 은빛이었으며, 눈동자는 피바다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붉었기 때문이다. 드라큘라 백작이 여성이었다면 이런 모습일까.


“안녕, 유니온 제 3기 여러분! 내 이름은 아이카. 행동반 B의 서브 리더 자리를 맡고 있어. 사용하는 리펄서 타입은 그레이트 소드! 남자의 무기라고나 할까?”


아이카라는 남자가 유쾌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가만,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인데.


“…저기 아이카, 이건 네 자기소개하는 비디오가 아니거든? 좀 진지하게 할 수 없어?”


곁에 서 있던 여자가 아이카를 살짝 째려보며 말했다. 매끄러운 목소리와는 달리 내용은 짜증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녀의 말에 웃어보이며 아이카는 말을 이었다.


“이왕 할거면 좀 재밌게 하는 편이 좋잖아. ……아, 소개하지. 이쪽은 루릴. 유니온 최고의 커스터마이저이자 차가운 도시─아니, 아무 것도 아냐. 좀 까칠하게 굴긴 하지만 잘 대해줘. 의외로 착한 녀석이니까. 게다가 인기도 많─크헉!”


루릴이 안쪽으로 접은 오른팔을 빠르게 폄과 동시에 그녀의 손등이 가차없이 그의 명치에 꽂혔고, 아이카는 단말마를 지르며 잠시 영상에서 사라졌다.


“……후. 이거 상영불가 판정이라도 받으면 어쩌지. 다시 할 시간이 없는데.”


루릴이 손을 탁탁 털었다. 잠시간의 침묵 뒤, 아이카는 피격 부위를 왼손으로 잡고 힘겹게 일어섰다.


“아으……방심한 틈을 노리다니, 너무한 거 아냐!?”


아이카는 루릴을 한 차례 쓱 노려봤지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한 그녀를 보고 체념한 듯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 비디오는 아마 멀쩡하게 상영될 걸? 유니온의 높으신 분들은 재치가 있으시니까.”


“…………하아.”


루릴이 한숨을 뱉었다. 만감이 섞인 한숨을 정면으로 받은 아이카는 짜증을 내며 팔을 머리 뒤에서 내렸다.


“알았어, 알았다고. 대본은 집어치우고, 네 맘대로 하슈. 시간 없다고 했었지? 그럼 이제부터 이 비디오는 리허설 녹화본이 아니라 정식 상영물이다!”


“안돼.”


루릴이 어처구니없어하며 단박에 말을 잘랐다. 그러나 아이카는 그녀를 완벽하게 무시하고 계속했다.


“우선 시작하기 전에, 전체적으로 몇 가지 사과하지. 첫 번째로, 이 비디오는 철저한 대본에 짜여진 이야기였어. 즉석 비디오가 아니라서 정말 미안하다. 그 반성으로 이제부터는 정말로 대본 없이, 편집 없이 진행하겠어.”


그는 말을 끝내자마자 앞으로, 그러니까 카메라 쪽으로 다가와 팔을 쭉 뻗더니, 화면의 뒷쪽에서 웬 서류 다발을 들고 와선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마구마구 찢어버렸다.


“아──!!”


루릴이 그것을 보자마자 아이카의 뒤통수를 세차게 후려쳤다. 아악──! 하는 비명과 생생한 타격음과 함께 그는 이미 산산이 찢어진 종이다발을 놓쳐버렸고, 꽃가루가 흩날리듯 종이조각들은 바닥으로 자유낙하했다.


“이제 어쩔 거야, 이 멍청아!! 이게 네 개인 비디오야?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루릴이 크게 호통을 치며 마치 꼬마를 호되게 혼내는 엄마처럼 말 한 마디 한 마디마다 아이카의 머리통을 때렸다.


“…두 번째, 험한 꼴 보여서 정말로 미안하다. 평소에도 이러고 살기는 하는데──아악! 그만! 그만해! 누구 죽일 일 있어! 아아악! 아버지한테도 이렇게 세게 맞은 적은 없는데에에에!”


아이카는 처음에는 잠자코 맞다가 문장의 중간을 기점으로 그녀의 팔에 힘이 더 들어갔는지 처절한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듣고 있는 내가 다 아플 정도였다.


그렇게 한참을 맞고 있던 아이카는 끝내 다시 화면에서 사라졌고, 루릴은 다시 한 번 손을 탁탁 털곤 이미 육포가 되어버린 그를 거의 끌다시피 일으켰다.


“나 참, 엄살 한 번 심하네. 세게 때렸으면 얼마나 세게 때렸다고…….”


“차라리 밖에 나가서 맨몸으로 뮤턴트 놈들한테 배를 째이고 오겠다! 허구한 날 두들겨 패! 약하게 치면 내가 말도 안하겠다. 누굴 샌드백으로 보냐!?”


아이카가 한이 서린 눈으로 그녀를 노려봤다. 쌓인 게 엄청나게 많은 듯한 그의 눈동자에 순간적으로 푸른 스파크가 일었다.


“…이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뤄두고, 일단은 진행부터 하자. 지금 몇 분째 허비한지 모르겠다구.”


“아까 안됀다고 하지 않았냐……?”


대충 넘기려는 기색이 역력한 루릴의 말에 아이카가 어이없어했다.


“그러고는 싶은데……시간이 없어. 그리고 네 말대로 상부 놈들이라면 엉망진창도 좋다면서 넘어갈 것 같고, 될 대로 되라지 뭐.”


“………이럴 거면 아까 난 대체 왜 맞은 거야……? 아, 진짜…….”


“…? 아이카?”


“……아무것도 아냐.”


갑자기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는 루릴을 보면서 아이카가 침울해하며 작게 혼잣말을 했다. 루릴은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인지 ‘쟨 갑자기 왜 저래?’ 같은 말이 나올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럼, 시작할까…….”


아이카가 말을 마친 그 순간, 갑자기 화면은 새까맣게 변했다. 여기저기서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저기, 여러분! 조금 있으면 다시 재생되니 조용히 해 주세요!”


사람들을 진정시키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금 전까지 루릴에게 두들겨 맞고 있었던 아이카의 목소리였다.

 

기시감의 정체를 알아차린 나는 검은 화면 밑쪽의 긴 막대를 보았다. 수직으로 선 직사각형 너머로 아직 한참 남은 여유 공간이 이 비디오가 얼마나 더 재생될지를 알려 주고 있었다. 난 그것을 보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해서, 다시 시작. 갑자기 까만 화면을 보여줘서 정말 미안. 좀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거든. 그 부분은 편집된 거라고 생각해 줘."

 

공간이 조용해진 뒤 몇 초가 지나자, 화면이 다시 밝아지며 아까 그 방과 두 사람이 보였다. 아이카는 밝은 분위기로, 그러나 처음보다는 죽은 분위기로 말을 시작했다.

 

"자기소개는 생략하고, 이 비디오는 철저한 시나리오는 고사하고 앞으로의 진행 방향도 딱히 정해진 게 없는 100% 리얼 버라이───가 아니라 유니온 소개 영상이야. 아무쪼록 재밌게 봐 줬으면 좋겠어─."

 

"아── 이젠 모르겠다……나도 이번엔 재밌게 하려 노력은 해 보겠는데, 나한테 기대는 하지 마."

 

"에이~ 무슨 소리야? 무진장 기대하고 있다구. 드디어 이 딱딱한 녀석의 개그 센스를 확인할 수 있겠구만! 이런 기회는 평생 있을 까 말까──끄악!"

 

루릴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얼굴을 하고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선언했고, 괜히 말을 덧붙였다가 그녀의 심기를 건드려 버린 아이카는 등에 질러진 회심의 일격을 그대로 맞고 '크리티컬 히트!' 라는 메시지를 띄우며 또 쓰러졌다.

 

"이거……혹시 정해진 패턴인가?"

 

"아마도……."

 

내가 황당해하며 내뱉은 말에 왼쪽에 앉아 있던 남자가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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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치고 긴 분량 때문에 1 / 2로 나눠서 게시합니다

일단 쓰고 나니까 이게 어떤 장르인지 구분이 안가서 퓨전으로 해놓긴 했는데 뭐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네여

 

추신 - 글에 모르는 용어들은 파트 2에서 설명됩니다?

추신2 - 한글 파일에 써놓은 걸 그대로 붙여넣었다가 폰트랑 크기가 안 바꿔져서 고생 좀 했는데 이거 원래 이런가요?

Who's 슈팅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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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음...

  • profile
    하늘바라KSND 2013.01.19 22:04
    에...예.

    한글에서 바로 끌어오면 그렇게 됩니다.
    그러니 한 번 메모장에 붙여넣기 후에 다시 복사하시면 좋아요!ㅎㅎ
  • profile
    슈팅스타* 2013.01.20 08:44
    메모장에서 끌어와도 띄어쓰기를 다시해야 한다는게 유머
  • profile
    하늘바라KSND 2013.01.20 16:35
    A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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