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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살 - ep0.시작 - 1

by 백조자리 posted May 0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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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판타지

ep0. 시작

 

피가 이루는 천.

그것은 소설 속에서나 등장할법한 천이지만 그 믿기지 않는 천은 지금 존재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이뤄진 혈천의 표면에 튕겨져 나온 돌이 물리력을 가했다. 피가 튕기며 물결이 치자 지나가는 남자의 얼비친 모습까지 물결치며 흔들렸다.

하이덴베르드

수도와 가장 가까운 도시이자 무참히 파괴되어 폐허가 되어버리기 전에는 울창한 밀림과 아름다운 강의 풍경을 자랑했던 도시. 도시, 아니 폐허의 강은 이제 피로 물든 채 흘렀다. 그 위쪽에서 얼마나 많은 죽어가는 사람을 이곳에 던졌기에, 시체와 함께 피의 강물이 흘러내려오는 것일까. 하이덴베르드의 폐허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영광을 추억할 것들이 가득했다. 이곳에 남아있는 최소의 흔적들조차 그 영광의 증거였다.

“하, 승리라는 것은 말만 승리지, 실상은 패배나 다름없군.”

이 고통스러운 승리자의 책임을 패배자들은 책임질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제 그들의 나라는 없기 때문에, 하지만 승리하고 남은 대륙의 사람들은? 그들이야 말로 대륙의 패배자이다. 전쟁으로 모든 것이 부서져버린 폐허를 다시 일으키는 것은 패배자들, 그러니까 역사의 입장에서 보자면 승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역사의 입장으로써의> 패배자들이 동원되기는 하겠지만 그들은 저것에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강의 상류로 걸어 올라가던 남자는 등 뒤에 꽂힌, 정확히 말해서 검집 없이 허리쯤 오는 가죽 벨트에 매여져있는 양손 검을 빼내어 강 건너 숲 쪽을 겨냥했다.

“비무장이십니까?  누구시길래 그렇게 숨어 계시는 겁니까? 아, 이곳에서 만나기로 한 분이 혹시?”

숲 안에서 숨어있던 사람은 검으로 겨냥되자 기분이 약간 언짢아졌다. 하지만 그는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숲에서 걸어 나왔다. 그리곤 말을 걸었다.

“꽤 오랜만입니다..”

“오래간만이군요. 프란츠.”

“자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제가 시간을 아끼는 종류의 사람이란 것을 아실 겁니다.”

그동안 만나지 못해 섭섭했다는 듯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는 두 사람은 아무리 말을 꾸밀 수 있어도 표정까지 꾸며낼 수는 없었다. 두 사람 모두 서로를 대단히 경계하는 눈빛으로 쳐다봤고 그래서 두 사람 모두 결국 한바탕 웃고 말았다.

“이제 경계를 풀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하하하,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가 서로 경쟁하는 입장도 아니니 좀 친해져 봅시다. 그럼, 무슨 임무인지 아실 것이라 봅니다.”

“어차피 수도로 가야할 것을 여기서 만나자고 하신 이유가 무엇인지요?”

“그 때 제의하셨던 그 내용이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지요. 신대륙, 처음 발견했던 당신의 이름을 따서 루키아스라는 이름이 붙었던가요? 그곳에 있는 빙화(氷花)라는 에너지원을 가지고 와서 마법력을 불어넣고, 신대륙의 기술력을 마법과 합침으로써 재건을 돕는 프로젝트. 그럴 듯 했습니다. 전 그래서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했죠. 따라서 당신의 임무는 공개적으로는 신대륙의 조사가 되지만, 비밀스럽게 빙화를 탈취해 돌아오는 임무가 추가되는 것입니다.”

“제 생각을 받아들여 주신 점, 감사히 여깁니다.”

루카스는 다시 상류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혈천의 피는 대부분 씻겨내려갔다. 하지만 루카스의 기분은 그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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