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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퓨전

조아라에 연재했던 글입니다. 

마인크래프트 요소가 있습니다. 







전지전능한 내 친구 (마인크래프트 요소)

 

 

 

 

 

1. 내 친구는 전능하다.

 

 

 

띡띡띡띡띡띡띡!

 

찰칵!

 

“문짝! 문짝을 보자!”

 

저런 식으로 현관문을 열고 쳐들어오는 인간은 하나뿐이었다.

 

“나 바빠.”

 

나는 까칠하게 외쳤지만 남자사람친구인 하셀리안은 그에 아랑곳 하지 않고 내 작업장으로 직진해서 의자와 함께 와락 끌어안았다.

 

“야! 오른팔 건들지 마!”

 

나는 의자와 함께 휘청거렸지만 마우스를 쥔 손은 급작스러운 기습에 단련되어 있어서 흔들리지 않고 모니터 속의 엔더 드래곤을 격살했다. 마지막 화살이 빗맞았다면 달려드는 엔더 드래곤에게 내 소중한 캐릭터가 당할 뻔 했다.

 

“또 게임해?”

 

“어.”

 

“엔딩 봤으니까 이제 나랑 놀자.”

 

“마인크래프트에 엔딩롤은 있으되 엔딩 따위는 없음.”

 

나는 하셀리안이 징징거리거나 말거나, 286 컴퓨터에나 있을 법한 검은 화면에 하얀 영문이 서서히 올라가는 엔딩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흐음. 너 요즘 마인크래프트 다시 하니?”

 

“응. 질리지 않아. 마크, 문명, 시저.”

 

게임 삼매경으로 매일 새벽까지 달린 덕분에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왔다. 내가 그나마 프리랜서라서 다행이었지 회사원이었다면 진작 짤렸을 것이다.

 

하셀리안은 못마땅한지 혀를 찼다.

 

“그야말로 컴퓨터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마의 삼각지대구나. 나온아, 나랑 정말 안 놀아줄 거야?”

 

“네가 마크를 시작하면 서버 띄워서 초대해 주겠음. 우리 마크에서 놀자꾸나. 계정 하나 결제해줄까?”

 

“됐네요. 병아리 오줌을 갈취해 가지.”

 

“헹!”

 

하셀리안은 입술을 비죽거렸다. 셀리안이 삐지면 오래가고 뒤끝이 상당히 성가셨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새롭게 시작된 마인크래프트 첫화면을 주목했다.

 

마인크래프트 게임에서 첫날은 굉장히 중요했다.

 

마인크래프트는 밤이 되면 몬스터 천지가 되므로, 날이 밝을 때 모든 서바이벌 준비를 마쳐야 했다.

 

나는 능숙하게 나무를 캐서 삽과 곡괭이를 만들고 땅을 파 들어가기 시작했다. 빨리 돌을 파서 돌괭이, 돌도끼, 돌삽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너 요즘 나에게 너무한 거 아니니?”

 

“내가 뭘?”

 

하셀리안이 턱을 내 왼쪽 어깨에 고였다. 이 남자사람친구는 내가 한창 컴퓨터에 몰두할 때마다 방해하는 고양이 같은 친구였다.

 

하셀리안은 중3 때 전학을 와서 급격히 친구가 되었다.

 

성은 하, 이름은 셀리안.

 

그는 여신과 남신급 외모를 지녔을 뿐, 인종적으로는 평범한 한국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님은 사업차 해외를 떠도는 생활을 하셨기 때문에 자식인 셀리안을 한국에서 자취하라며 떨궈놓고 가셨다.

 

하셀리안의 인적 사항을 아는 학생은 전교에서 나 뿐이었다.

 

셀리안은 전학 오자마자 내 옆자리를 꿰어 차고는 그때부터 징글징글하게 나와 붙어 다녔다. 덕분에 어쩌다 사귄 남자친구들과 파경을 맞이하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내 애인들이 우리 사이를 의심해서는 아니었다.

 

나와 하셀리안은 주인님과 고양이에 가까웠다. 아무리 우리가 스킨십-거의 하셀리안의 일방적인-이 잦아도 우리 사이를 로맨틱하게 오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32살이 될 때까지 사귄 남자친구들이 오래 못 간 이유는 위축되어서였다.

 

하셀리안은 2미터 장신에 신화적인 얼굴과 몸매, 만능 스포츠맨, 수퍼 컴퓨터같은 두뇌, 문화적 교양이 철철 넘치고, 사람들 앞에서는 제왕같은 위엄을 과시했다. 어린 학생 시절에도 사이즈만 줄였지 마찬가지였다.

 

셀리안은 나를 친혈육처럼 여겼다. 그것도 시스터 콤플렉스가 강한 남자 형제였다.

 

일반인인 남자 친구와 은으로 백일 반지를 맞추고 온 날, 우리의 백일을 축하한다며 하늘에서 나타난 셀리안은 우리를 납치하다시피 헬기에 싣고 요트로 데려가 지중해를 한 바퀴 돌고 왔다. 셀리안은 나에게 선상파티를 위해서 필요하다며 졸부처럼 과시하기에 딱 좋은 다이아 세트를 선물했다. 나는 거절했지만 남자친구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연애 감정은 눈꼽만큼도 없는 작은 심술이었다. 누나나 여동생을 뺏긴 원한을 그런 식으로 푸는데 몇 번 반복되다 보면, 아무리 멘탈이 강한 남자라도 자존심이 너덜너덜 해 질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셀리안이 나에게 질척하게 들이대지도 않았다. 굳이 말하면 결혼은 자기와 하자고 조르긴 하는데, 그것도 남에게 뺏기기 싫어서 떼쓰는 것이지, 나를 여자로서 원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정말 다른 친구들 말대로, 차라리 나와 셀리안 사이에 핑크빛 연애감정이라도 싹트면 싶을 정도였다.

 

지금 생각하면 셀리안이 막 전학 왔을 때 잘 해줄 것이 아니었다. 하필이면 내가 중2때 밤을 불살라가며 썼던 대하 장편 소설 주인공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바람에 친근감이 들어서....

 

“나온아, 응? 응?”

 

“또 뭐?”

 

나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너, 차원이동 소설 좋아하잖아. 만약 작가인 네가 차원이동을 한다면 어떤 소설로 가고 싶니? 아니면 네가 좋아하는 게임 속으로라도?”

 

나는 게임 화면에서 화로에 구운 유리창을 집에 붙이며 잠깐 생각했다.

 

“내 소설은 곤란해.”

 

온갖 엽기와 피폐, 몬스터를 포함한 자연 재해, 재앙 캐릭터로 넘쳐나는 내 소설들은 참말이지 인세에 펼쳐진 지옥도였다. 다행히 내 소설에서 피가 튀고 해골이 굴러다녀도 제법 인기가 있는 덕분에 원룸에서 나 혼자 먹고 살만큼 인세를 벌었다.

 

그런 참혹한 소설로 게임폐인 여자(32세)가 차원이동을 해봤자 순살이었다.

 

“알긴 아는구나. 네 소설이 어떤지.”

 

셀리안이 의미 모를 감탄사를 내뱉었다.

 

“차원이동 소설 주인공들이 16살에서 고3 사이의 어리고 파릇파릇한 학생들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지. 아무것도 모르는 중고딩들이 실컷 구르고 고생하면서 한국식의 휴머니즘을 외쳐야 그 세계 최고 권력자가 될 인간들의 시선을 빼앗는다고. 그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미친 자로 날뛸 수 있거든.”

 

“헐!”

 

셀리안의 얼굴이 굳었다.

 

“내 나이를 봐. 32살이면 지구의 중세를 연상케 하는 대부분의 판타지 세계에서는 그냥 아줌마야. 32살이면 세상이 더 이상 아름답지만은 않고 시니컬해지며 복지부동의 미덕을 알게 된다고. 32살 아줌마가 철없는 중고딩처럼 판타지 세계에서 설치고 다니면 욕 댓글이 폭주할 걸? 그걸 피하기 위해 환생이 있고 회춘이 있긴 하지. 어쨌건 나는 소설 주인공들과 달리 눈가와 이마가 정상적으로 탄력을 잃고 코밑에 팔자 주름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고. 하긴 셀리안 너처럼 탱탱한 아기살결에 꽃미남 얼굴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긴 하다만.”

 

“그, 그래서 네가 어린애들만 어디 한 번 고생해 보라고 차원이동을 내보내는... 아니, 너도 앞머리를 내리면 동안처럼 보여.”

 

“거울이나 보면서 입에 침을 발라라.”

 

거울 얘기하다가 무심코 책상에 올려둔 손거울을 봤다. 게임 할 때는 앞머리를 핀으로 올렸다. 덕분에 이틀간 씻지 않아 내 이마에 야생의 개기름이 출현한 모습을 확인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차원이동 얘기야? 너는 판타지, 그중에서도 차원이동 소설을 끔찍하게 싫어했잖아?”

 

“으음. 어제 읽었어.”

 

“뭘?”

 

“‘비탄의 하리에나 셀리안’ 전권.”

 

“크흐흑! 진짜? 아놔, 볼 화끈거린다. 그거 절판된 지가 언제인데 어떻게 구했... 하긴 돈 앞에서 불가능은 없지.”

 

‘비탄의 하리에나 셀리안’은 내가 중2때 쓴 최초의 장편 판타지였다. 인터넷에 연재를 시작했다가 초보 작가의 패기로 인기를 끌어서 출판까지 했다.

 

6권짜리 소설이었다. 16살의 한국인 남자애가 판타지 세계로 차원이동을 해서 피 똥싸며 고생하다가 결국 대륙을 통일한 황제가 되고 이어서 인간으로서 최초로 신이 된다는 줄거리였다.

 

결말만 보면 화끈 통쾌한 성공 스토리 같지만, 내용은 몹시 암울했다. 비교적 가볍게 언급하고 지나갔으나 소설 속 주인공인 하셀리안은 제목처럼 소설 내내 진창을 굴렀다.

 

집안에서 사랑받으며 자란 귀여운 막내 하셀리안은 세상이 장밋빛이라는 꿈을 꾸는 순진한 중3 소년이었다. 그는 어느 날 사이비 종교 단체의 테러에 휘말려서 일가족과 함께 참변을 당하고 홀로 이세계로 차원이동을 했다.

 

예쁨 받으며 큰 아이답게 하셀리안은 그의 따뜻한 마음씨와 오지랖으로 이세계에서 순박한 산골 마을 사람들과 순식간에 친해졌다. 하셀리안은 대단한 친화력을 발휘하며 동화같은 마을을 발전시키다가 이웃 영주의 손에 탈탈 털렸다.

 

소설 속에서 귀엽고 순진한 막내 하셀리안은 전쟁, 기아, 온갖 정치적 모략과 배신에 시달리며 철저하게 인간을 믿지 못하는 회의적인 군주가 되어 갔다. 잔혹한 절대 군주가 되어서 이웃 왕국 몇 개 쯤은 본보기로 씨를 남기지 말고 불태워 버리는 극단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당시 유행하던 양산형 판타지 소설과 비슷했다.

 

독자들은 처음에는 벌레 한 마리 제대로 못 잡는 찌질한 중3 소년이, 차츰 힘과 권력을 갖춰가며 시원시원하게 몇 만명의 단위로 적을 썰어 넘기는 먼치킨이 되어가는 모습에 환호했다.

 

결말에 대륙을 최초로 통일해 하리에나 제국의 황제가 된 하셀리안은 에필로그에서 신으로 업그레이드했다.

 

무술을 갈고 닦아서 화경, 현경을 넘어 생사경을 초월하여 마침내 신이 된 하셀리안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게 완벽해졌다.

 

그는 신이 되자마자 차원이동을 해서 원래의 지구로 돌아와 시간을 되돌려 가족을 사고에서 구해내고 사이비 종교 단체의 테러를 무산시켰다. 그리고 깨달았다. 오래 전 잃어버린 가족과 재회했지만 더 이상 마음속에 어떤 따뜻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음을.

 

내가 중2때 썼던 글답게 심오한 철학적인 의미를 담아보고자 했으나 독자들이 좋아했던 부분은 주로 피 튀기는 칼질과 복수였다.

 

“하리에나 제국은 어때? 주인공이 한국인이니까 널 보면 같은 한국인이라고 반가워 할텐데.”

 

“오우, 노우! ‘비하셀’은 내 소설 중에서 가장 인명을 경시하는 사상이 판치는 곳이야. 더구나 하셀리안, 그러니까 비하셀 주인공의 시선은 데드 플래그를 꽂는다고.”

 

나는 차원이동 소설을 좋아하고 어린 주인공들을 처절하게 굴리는 글을 즐겨 썼지만, 나더러 그딴 세상에 가라하면 ‘ㅗ’를 두 번 먹일 거다.

 

“나온. 네 소설 중에서 ‘금붕어와 아리아’는 어때? 바이올린을 든 한국 여자가 차원이동을 해서 차디찬 황태자의 마음을 녹인다는 따뜻한 이야기 말이야. 영화로 만들어지는 바람에 어린 초등학생들이 네가 매우 동화적인 순수한 글만 쓰는 줄 알고 다른 책을 주문했다가 멘탈 붕괴에 빠졌다던가.”

 

배급사는 하셀리안 부모님이 세우셨다. 하셀리안 부모님이 내 소설을 영화화 하도록 투자하셨다.

 

덕분에 원룸을 샀다.

 

“싫음. 거기도 여주가 나타나서 남주와 잘 되어서 역경을 딛고 황제, 황후가 되기 전까지는 나라 사정이 개판 5분전.”

 

나는 하셀리안의 말에 건성으로 답변하면서 게임을 즐겼다.

 

마인크래프트 게임 화면에 밤이 찾아와서 몬스터들이 내 움집을 둘러싸고 온갖 괴음을 내질렀다. 나는 땅바닥을 계단형으로 파들어 가며 흙과 돌을 헤치고 철광석을 찾는 한 마리 하이에나가 되었다.

 

“석탄만 있고 철광석은 안 나오네. 오~ 금레기 발견! 철이 없어서 못 캐잖아.”

 

“마인크래프트는 어때?”

 

“응?”

 

“네가 좋아하는 게임으로 차원이동을 한다면 말이야. 마인크래프트 좋아하잖아.”

 

“뭐야, 아직도 그 얘기? 차원이동에 흥미가 돋는다면 책꽂이에서 내 책들을 읽어.”

 

“싫어. 네 글을 읽으면 주인공들에게 감정이입이 되어서 괴롭단 말이야. 네가 어린 나이에 차원이동을 겪는 주인공들의 고통을 알아?”

 

하셀리안은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다.

 

“간신히 철을 발견했는데 몇 개 없어서 곡괭이를 둘 만들지, 곡괭이 하나에 양동이 하나 만들지 고민해 봐야겠다.”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철광석을 캤다.

 

“....”

 

“아, 뭐라고 했지? 마인크래프트로 차원이동은 별로야. 뭐, 크리에이티브 모드라면 천하무적이긴 한데, 그래도 마크는 쫌 그렇지. 나 혼자 로빈슨 크루소 찍을 것도 아니고.”

 

“마을을 찾으면 주민들이 있잖아.”

 

“워워, 징징이랑 놀라고?”

 

마인크래프트 징징이 주민들의 얼굴은 모아이와 닮았다.

 

“그리고 내가 스티브 얼굴을 갖고 싶지도 않음.”

 

주인공 캐릭터는 네모상자 스티브였다. 캐릭터 스킨을 예쁘게 만들어서 사용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네모 블록이라 한계가 있었다.

 

마인크래프트는 기본적으로 거의 모든 것이 네모모양이었다. 레고처럼 네모 블록을 가지고 쌓거나 부쉈다.

 

“불만 사항은 등장인물들의 외모야?”

 

“불만 사항이 아니라, 나는 내가 차원이동 소설을 즐겨 쓰다보니 그런 소설들의 배경이나 설정이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는지 알기 때문에 싫다는 거야. 차라리 아예 멋모르는 어린 학생이라면 동경심이라도 품지.”

 

“그래도 넌 해야 해.”

 

“응?”

 

하셀리안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넌... 겪어 봐야 해.”

 

고개를 돌리자 처음 보는 하셀리안의 표정이 있었다. 셀리안의 두 눈동자는 황금빛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태양의 코로나같은 홍채가 길게 세로로 찢어지고 머리카락은 이글거리는 아지랑이에 감싸여 나풀거렸다. 신성한 푸른 날개가 하셀리안의 어깨에서 돋아나 펼쳐졌다.

 

내가 ‘비탄의 하리에나 셀리안’에서 묘사했던 막 신으로 각성한 주인공의 모습과 일치했다.

 

“너만이 날 이해할 수 있으니까.”

 

 

 

 

 

 

 

2. 너는 내게 차원이동을 선물했지.

 

 

 

아득하게 들리는 동물의 소리에 눈을 떴다.

 

“메에에~ 메에에~”

 

‘양?’

 

정신을 차리자 추위가 찾아왔다. 부르르 떨었다. 나는 칙칙한 얇은 티셔츠와 면바지 차림이었다.

 

눈밭에서 눈을 떴는데 장갑은 커녕 신발도 없이 맨발이었다.

 

‘여기가 어디지?’

 

주변을 휘휘 둘러봤더니 사방이 눈 덮인 산이었다. 공황에 빠진 나는 무심코 내가 서 있던 봉우리의 정상으로 발길을 옮겼다. 일단 높은 곳으로 오르면 주변 지역을 확인할 수 있으며 나무 그늘에 가려지지 않은 따뜻한 햇볕을 받을 수 있어서였다.

 

다행히 나는 미끄러지지 않고 힘차게 산을 탔다.

 

봉우리 정상에서 나는 또 한 번 넋이 나갔다.

 

“이게... 뭐야? 여기는 눈 산인데 저기는 사막, 저 쪽은 밀림이라고?”

 

산은 정상을 기준으로 반대쪽은 정글이었다. 나는 당황하기도 했고 당장 추운 쪽보다 따뜻한 온기가 있는 정글로 팔을 휘저으며 뒷걸음질 쳤다.

 

파삭!

 

무심코 내 주먹으로 건드린 나뭇잎들이 조각조각 부서져 흩어졌다. 나는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 나뭇잎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황당해졌다.

 

“사, 사과?”

 

빨갛게 잘 익은 사과가 바닥에 흠집 하나 없이 떨어져 있었다. 생존 본능에 따라 사과를 집어들고 중얼거렸다.

 

“마인크래프트도 아니고, 설원과 사막과 정글이 한꺼번에 있다니. 게다가 나뭇잎을 부수면 사과를....”

 

내 눈동자와 사과를 움켜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설마 마인크래프트로 차원이동 시킨다는 말이 이런 뜻?”

 

숱하게 나를 엿 먹였던 남자사람친구, 아니 남자신친구 하셀리안이 제대로 내 뒤통수를 쳤다.

 

나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여기가 정말 마인크래프트 게임 안이라면 놀라거나 분노하느라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몬스터가 나타나기 전에 안전한 집을 지어야 했다.

 

“나, 나무!”

 

나는 바로 옆에 있는 참나무에 주먹질을 했다가 손을 쥐고 눈물을 찔끔 흘렸다.

 

“아파!”

 

마인크래프트-줄여서 마크-에서는 주먹질로 나무를 캘 수 있었다. 그런데 마크 치고 주변이 모두 네모모양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생겼다 싶었더니, 주먹으로 한 대 치니까 진짜처럼 통증이 밀려왔다. 다행히 내가 친 참나무가 껍질에 수분이 충분했는지 탄력이 있어서 손등이 까지지 않았다.

 

나는 방향을 바꿔 무릎을 꿇고 바닥을 내려쳤다. 풀잎과 검불이 흩어지면서 흙바닥이 나타났다.

 

퍽퍽퍽퍽퍽!

 

다행히 예상대로 네모난 흙덩이가 작게 떨어져 나왔다. 내가 흙덩이를 움켜쥐자, 다시 원래 크기로 보였다.

 

나는 흙덩이를 쥐고 나무를 내리치기 시작했다.

 

퍽퍽퍽퍽퍽!

 

게임 속에서는 흙으로 나무를 쳐도 흙덩이가 멀쩡하지만, 게임과 미묘하게 다른지 흙이 점점 부스러졌다.

 

“그래도 나무 블록을 캐는데 성공했군. 흙덩이 하나로 나무 블록 하나 캐면 효율이 많이 떨어지지만 어쩔 수 없지.”

 

나는 흙덩이를 캐서 그걸로 나무 블록을 깨는 작업을 반복했다.

 

참나무 한 그루를 통째로 깨서 나무 블록이 5개 모였다. 나뭇잎은 저절로 떨어질 테니 내버려 두었다.

 

뾱!

 

때마침 나뭇잎 뭉치가 사라지는 대신 묘목이 하나 떨어지면서 자동으로 나에게 흡수되었다.

 

‘묘목이 저장되다니, 인벤토리가 있구나. 다행이다.’

 

나는 인벤토리를 부르려면 어찌 해야할 지 몰라서 눈을 감고 간절하게 인벤토리를 외쳤다. 정신을 집중하고 인벤토리를 떠올리자 정말로 눈앞에 인벤토리가 열렸다. 커다란 칠판이 눈 앞에 나타난 것 같았다.

 

나는 인벤토리 위에 4칸(2*2)짜리 조합칸을 발견하고 쾌재를 올렸다.

 

 

 

 

 

 

나는 인벤토리 위에 4칸(2*2)짜리 조합칸을 발견하고 쾌재를 올렸다.

 

‘무슨 놈의 인벤토리가 철판으로 만든 바둑판처럼 생겼군. 그래도 감지덕지이지만.’

 

인벤토리의 비주얼은 마크 게임에서처럼 삭막했다. 회색 철판에 검은 줄눈을 그린 것 같았다.

 

땅에 떨어져 있는 참나무 블록을 주섬주섬 모아서 조합칸에 밀어 넣자 순식간에 작아지면서 들어갔다.

 

참나무 블록 1개를 조합칸에 올리면 잘 다듬어진 참나무 목재가 4개씩 만들어졌다. 이론상으로는 그랬는데, 완전히 게임과 똑같지는 않아서인지 참나무 블록 5개로 참나무 목재가 18개 나왔다.

 

‘예상치 못한 참나무 목재 손실분이 2개인가? 앞으로는 재료를 여유있게 구해야겠다.’

 

목재로 조합대를 만들어 설치하고 사용법을 궁리했다.

 

‘게임에서는 오른쪽 클릭을 하면 되는데.’

 

조합대는 겉으로 보면 그냥 검은 줄무늬가 있는 커다란 네모 상자였다. 손으로 잡자 게임에서와 달리 가볍게 들리는 게 속이 텅 비어 있었다.

 

‘조합대를 쓰지 못하면 끝장이다.’

 

나는 조합대를 두드려보거나 흔들어 보고 손을 올려서 정신집중을 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서 사용법을 알아냈다.

 

“예쓰!”

 

조합대에 손을 올려놓고 머릿속으로 집중해서 기합을 넣자 9칸짜리(3*3) 조합대 창이 눈앞에 열렸다.

 

‘인벤토리를 열 때와 비슷하군.’

 

나는 바둑판처럼 9칸이 있는 조합대 창에서 재빨리 필요한 물건들을 조합했다.

 

필요한 재료를 정확한 칸에 넣으면 조합대가 알아서 물건을 만들어 주었다.

 

나무가 부족하니 막대기를 많이 만들고 장비는 도끼만 하나 만들었다.

 

‘우선 나무부터 캐고 석기시대로 들어가자.’

 

도끼를 손에 쥐고 나무를 쿵쿵 찍기 시작했다. 정글 지역이어서인지 참나무와 정글나무,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몇 가지 종류의 나무들이 눈에 띄었다. 우선 익숙한 참나무와 정글나무를 한 그루씩 벴다. 참나무와 정글나무는 쉽게 알아봤다.

 

‘리얼한 텍스쳐 팩을 써 본적이 있어서 다행이다.’

 

마크의 기본적인 비주얼은 몹시 단순했다. 그렇지만 텍스쳐 팩으로 비주얼과 질감을 변경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 올린 텍스쳐 팩 중에서 리얼리티를 강조한 팩을 깔아서 쓰기도 했다.

 

‘베어 그릴스도 아니고 내츄럴 본 도시 여자인 내가 어디 가서 참나무와 정글 나무를 구분하는 법을 배우겠어? 리얼리티를 살렸다던 텍스쳐 팩 제작자의 말씀은 진리였군.’

 

쿵쿵쿵쿵쿵! 쿵쿵쿵쿵쿵!

 

참나무는 나무 블록 6개를, 정글 나무는 7개를 내놨다.

 

‘나무 삽과 나무 괭이를 만들어서 빨리빨리 장비창에 넣자.’

 

인벤토리에서 장비창은 10칸이 있었다. 1번부터 0번까지 숫자키를 누르면 손에 들린 장비가 바뀌었다.

 

‘장비창은 늘 하던 대로 지정해야 안 헷갈리겠지. 나무 괭이는 장비창 2번, 삽은 장비창 8번.’

 

나는 마음이 급했다. 부지런히 움직여서 안전을 확보해야 했다.

 

밤보다 확률이 드물다 뿐이지 낮이라도 몬스터는 나타날 수 있었다. 몬스터가 나타나면 게임과 달리 크게 당황할 게 틀림없었다. 제대로 싸울 자신이 없었다.

 

‘밤에 잠을 잘 집이 꼭 필요해.’

 

마크 게임에서는 반드시 집을 짓지 않아도 몬스터의 공격을 피할 방법이 있었다. 땅 밑으로 수직굴을 깊이 파고 들어가거나, 아니면 지상으로 높이 올라가면 됐다.

 

그렇지만 현실과 거의 똑같은 감각이 느껴지는 이곳에서 그런 식으로 땅구덩이에 파묻히거나 하늘 높이 꼭대기에서 꼬박 밤을 샐 자신이 없었다. 거기에 비라도 내리면 최악이었다.

 

삽삽삽삽삽!

 

나무 삽으로 땅을 파자 맨주먹으로 내리칠 때보다 훨씬 빨리 흙덩이가 캐졌다. 땅을 급하게 파들어가자 얼마 안 지나서 단단한 암석이 나타났다.

 

‘장비창 2번!’

 

나무 괭이를 들고 암석을 찍었다.

 

턱턱턱!

 

나무 곡괭이 내구도를 사정없이 깎아 먹기는 했지만, 연회색 돌 블럭이 무척 반가웠다.

 

‘돌괭이, 돌삽, 돌도끼, 돌칼. 그리고... 화로!’

 

나무 도구만 가지고도 간단한 집은 지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돌도구는 나무 도구보다 자원을 캐는 속도가 훨씬 빠르고, 단단해서 오래 썼다.

 

‘돌로 만든 도구는 마크의 필수품이지.’

 

마크에서 첫날 생존과 쾌적함 여부는 무조건 돌 도구를 얼마나 빨리 만드느냐에 달려 있었다.

 

나는 나무와 돌을 번갈아 캤다. 주위에 있는 나무를 눈에 보이는 대로 몇 그루씩 베고, 바닥을 넓게 파내려가며 돌 블록을 확보했다.

 

‘땅 속은 마크와 많이 다르군.’

 

땅은 대부분 암석으로 이루어진 마크와 달리, 자갈과 흙이 대부분이었고 바위는 일부였다. 석탄은 발견하지 못했다.

 

전망이 조금 암울해졌다. 땅 밑에서 석탄을 발견하지 못하면 철광석은 더욱 찾기 힘들 것이다.

 

‘돌이 부족하니 돌 반블록은 오늘 못 만들겠어.’

 

석탄이 없으니 화로에 나무 블록을 구워서 목탄을 만들었다.

 

‘마크에서는 허기만 있었는데 여기서는 목도 마르구나.’

 

나는 중간 중간 참나무 잎이 부서지며 떨어지는 사과를 주워서 먹으며 허기와 목마름을 달랬다.

 

‘눈덩이를 모아와야겠다.’

 

어차피 인벤토리에 넣어두면 눈이 녹지 않으므로, 아까 빠져 나왔던 눈 산으로 가서 삽으로 눈덩이를 만들었다. 눈산으로 갔더니 잠시 잊고 있었던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메에에~ 메에에~”

 

‘침대!’

 

침대 몇 마리, 아니 양 몇 마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가위가 있으면 털만 깎지만 철광석을 발견하지 못했으니... 미안하다.’

 

나는 양들의 명복을 빌고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양들은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말똥말똥 나를 바라보았다. 인간을 만난 적이 없었는지 도망치지 않았다.

 

‘장비 1번.’

 

나는 돌칼을 꺼내 가까이 있는 양을 후려쳤다. 선량한 눈빛으로 나를 갸웃거리며 바라보던 양은 구슬픈 비명 몇 마디와 함께 양털 블록을 남기고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내 손은 부들부들 떨렸다. 양을 내려칠 때 타격감이 손에 남았다. 돌칼을 휘두를 때마다 근육과 뼈가 짓뭉개지는 감촉은 끔찍했다.

 

‘피가 안 나서 정말 다행이다.’

 

양의 시체가 남았다면 양고기를 구할 수도 있었겠지만 첫 도축에 따른 정신적인 충격이 몇 배 컸을 것이다. 그나마 몬스터에 둘러싸여 지루하고 무서운 밤을 보내기 싫다는 열망이 워낙 커서 양 사냥을 성공시켰다.

 

마크와 달리 양들은 내가 사냥을 시작하자 혼비백산해서 달아났다. 다행히 양이 달아나는 속도는 나와 비슷했다. 양은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 했고, 나는 곧장 양을 향해 달려들어서 따라잡을 수 있었다.

 

‘나중에 양이 번식하려면 무리하게 사냥하면 곤란해. 4마리만 잡자.’

 

나는 양털을 4개만 얻었다.

 

‘침대를 만들려면 양털 3개가 필요하지만 여긴 부족할 수도 있으니.’

 

나는 다시 산을 넘어 정글로 돌아와서 바닥에 놔둔 장비를 모두 회수했다. 화로에 불을 지피고 떠났는데 돌아와 보니 목탄이 모두 구워져 있어서 그대로 챙겼다.

 

‘정글은 나무 그늘이 짙어서 몬스터라도 나타나면 발견하기 힘들단 말이야. 평야가 가장 좋지만 당장 눈에 안 보이니 일단 사막으로 가자.’

 

사막도 몬스터가 많으나 뻥 뚫려 있어서 눈에 훤하게 잘 보인다는 장점이 있었다. 마크에서 몬스터들의 인식 범위는 인간의 시야 범위보다 훨씬 짧았다. 그 때문에 나는 마음을 놓고 사막지대로 향했다.

 

사막으로 가면서 그르릉 소리가 들리면 발걸음이 빨라졌다.

 

‘어우, 싫다. 게임에서도 깜짝 놀라는 소리인데 현실적으로 들리니까 진짜 끔찍하군.’

 

첫날이고 낮이니 몬스터가 크릉 거리는 소리는 대부분 지하에서 들릴 확률이 컸다. 주변에 출입구가 보이는 던전이 없으니 소리만 날 뿐이지 안전했다. 그렇지만 게임과 미묘하게 어긋나는 부분이 있어서 모험을 할 수 없었다.

 

찌르륵! 찌익찌익!

 

꺄웅, 꺙꺙!

 

멀리서 알 수 없는 짐승의 소리가 들렸다. 마크에 없는 새와 벌레, 동물들이 존재했다.

 

나는 땀에 전 티셔츠 자락을 들어 올려 인중에 맺힌 땀을 닦았다.

 

‘쉰내라니! 내가 쉰내라니!’

 

쉰내를 풀풀 풍기는 티셔츠이지만 소중한 옷이었다. 위기 상황이라 아드레날린이 솟구쳐서 몰랐지만 내 몸은 익숙하지 못한 노동으로 상당히 지쳐 있었다.

 

‘설마 내 얼굴이 스티브 얼굴은 아니겠지.’

 

확인하기 두려웠다.

 

‘앞머리를 철 지난 시스루뱅으로 내리고 뒷머리는 꽁지머리로 묶어 올린 건 내 평소 모습이 맞아. 몸도 내 몸과 비슷해서 다행이야. 불만사항이 어쩌고저쩌고 하더니 외모는 그대로 보내줬나 보네.’

 

돌로 장비를 갖추고 재료를 제법 모으자 마음에 여유가 조금 생겼다.

 

“셀리안 녀석이 정말로 하리에나 셀리안이었다면 내가 뭐라 할 수 없잖아.”

 

나는 속으로 한숨을 푹푹 쉬었다.

 

처음에는 하셀리안이 원망스러웠다. 친구라고 믿고 있었던 그가 어떻게 나를 이런 식으로 물 먹일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내가 비록 소설이었다지만 하셀리안에게 저지른 만행을 떠올리니까 차마 불평을 할 수 없었다.

 

‘그저 복수를 위해서였다면 나에게 이렇게 친절하지는 않았겠지. 내 방식으로 차원이동을 시켰다면... 으으....’

 

차원이동을 하자마자 몬스터에게 쫒기거나, 식인 식물에게 걸려들어서 촉수에 끌려가거나, 포악한 황태자를 덮쳐서 지하 감옥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거나, 마을에 떨어져 뒷골목....

 

나는 잠시 서늘한 가슴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그래도 셀리안은 내가 잘 알고 좋아하던 게임으로 보내줬다. 그것도 게임 능력을 가지고, 내 고객 불만사항을 반영해서 말이야.’

 

나를 차원이동시킨 인물, 아니 신이 내 오랜 친구인 하셀리안이라는 점이 내가 믿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셀리안은 나에게 거짓말을 한 적이 없지. 아마 내가 차원이동을 몸소 겪어보고 그 애환을 알아보라는 취지일 거야. 그를 진정으로 이해할 사람은 나뿐이라고 말했으니까.’

 

나는 하셀리안에게 진심으로 미안해졌다.

 

‘착한 녀석. 내가 그렇게 그의 인생을 파탄냈는데 여전히 선량해.’

 

하셀리안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은 뒤에서 울부짖는 소리를 듣자마자 사라졌다.

 

크와악!

 

소름이 오싹 끼쳤다. 고개를 돌리자 언제부터 따라왔는지 반쯤 썩어서 해골이 드러난 곰삭은 좀비가 나를 향해 원독어린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당황해서 마크에서 알고 있는 가장 강력한 응급처방을 했다.

 

‘장비 7번! 흙 블록!’

 

나는 정사각형의 흙 블록을 땅에 내려놓고 그 위로 올라갔다. 흙 블록은 내가 올라가도 가루가 약간 날릴 뿐 단단했다. 나는 흙 블록에서 펄쩍펄쩍 뛰며 새로운 흙 블록을 발밑에 내려놓았다. 땅 위에서 수직으로 높이 쌓는 방식이었다.

 

이게 가능한 것은 내가 블록을 다루는 데 익숙해져서 요령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블록 위에 블록을 직접 갖다 댈 필요가 없었다.

 

아이템화 된 작은 블록을 손에 쥐고, 내가 원하는 장소를 노려보며 마음 속으로 오른쪽 클릭을 하는 것처럼 기합을 주면, 마크에서처럼 블록이 붙었다. 레고 놀이가 가능했다.

 

나는 발 밑을 노려보며 펄쩍 뛸 때마다 흙 블록을 턱턱 쌓았다.

 

‘게임에서는 좀비가 팔을 못 내리니까 좀비보다 한 칸 아래 땅을 파고 내려가서 잡으면 되지만, 여긴 어쩔지 모르니... 우욱! 썩는 냄새!’

 

땅을 한 칸 파서 들어가는 사냥법을 시도하지 않기를 잘 했다. 좀비는 두 팔을 나란히 앞으로 올리지 않고 위 아래로 뻣뻣하게 휘저으며 다가왔다. 좀비는 행동이 느리고 지능이 떨어져 보였다.

 

‘마크의 좀비보다는 일반적인 판타지에서 좀비 같다. 헉! 햇볕이 내리쬐고 있는데 좀비가 불에 타지 않네!’

 

좀비는 햇볕이 귀찮은지 간간이 몸을 움찔거렸지만 불에 타 죽지 않고 멀쩡하게 활동했다.

 

‘좀비가 이 모양이면 스켈레톤 같은 다른 언데드 몬스터들도 낮에 이럴 수 있다는 뜻이잖아?’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크왕!

 

좀비는 내가 흙기둥 위로 올라가 버리자 분통이 터졌는지 푸르딩딩한 두 팔을 휘둘러서 흙기둥을 쳤다.

 

풀썩!

 

단단해 보이던 흙기둥에 금이 갔다.

 

“깨액! 저리 가!”

 

나는 공황에 빠져서 무심코 손에 잡히는 대로 있는 힘껏 돌 블록을 던졌다. 내 손에 잡혔던 작은 아이템들은 장비창에서 나오자 원래 크기로 돌아가서 아래로 떨어졌다.

 

턱! 푸확! 크릉!

 

효과가 있었다.

 

단단하고 무거운 돌 블록은 좀비의 흐늘거리는 살점과 육즙을 덜어내고 해골을 비뚤어지게 만들었다. 던진다고 던졌지만 그대로 수직 강하했으니 돌 블록 자체의 무게 때문에 타격이 갔다.

 

좀비가 햇볕을 받아서 약해져서였다.

 

“으아악! 꺼져! 사라져 버려!”

 

돌 블록 열 몇 개를 던져서 아예 파묻어 버렸다.

 

산산이 부서지고 으깨진 좀비는 거품으로 흩어지면서 아이템을 남겼다.

 

‘썩은 고기....’

 

인간이 먹으면 중독되는 썩은 고기였다.

 

‘게임에서는 썩은 고기를 늑대에게 먹이로 줘서 길들이지만, 이걸 살아있는 동물이 먹어도 될지 의심스럽군.’

 

나는 헐떡거리는 숨을 가라앉히고 주위를 살펴서 어떠한 기척도 없음을 확인하고는 바닥의 흙 블록을 하나씩 깨서 내려왔다. 혹시 모를 일이니 썩은 고기는 일단 챙겨 두었다.

 

무서웠다. 턱이 딱딱거리고 온몸이 떨릴 만큼 무서웠지만, 이대로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간 무슨 사단이 날 지 몰랐다.

 

그리고 좀비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느껴서 내 키의 두 배는 되는 탑을 쌓아 올라가는데 성공했으나, 멀쩡한 정신으로 그보다 더 높이 올라가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빨리 안전한 장소에 집을 지어야 했다.

 

 

 

 

 

 

 

‘사막에 집을 지으면 안전할까?’

 

나는 사막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췄다.

 

마크에서는 엔더맨을 제외한 몬스터들이 흙 블록을 부수지 못했다. 그런데 방금 마주친 좀비는 흙덩이를 상당히 부쉈다.

 

‘모래 블록은 흙 블록보다 더 잘 부서지겠지. 모래를 파고 다니는 생물이나 몬스터들이 있을지도 모르고.’

 

등골이 오싹했다.

 

‘사막에서 필요한 물건만 가져오자.’

 

정글과 사막을 가로지르는 강물을 헤엄쳐 건넜다.

 

헤엄치기는 쉬웠다. 마음속으로 쉬프트 키를 누르면서 방향키로 조정한다고 생각을 집중해서 기합을 주면 알아서 손발이 움직이며 둥실둥실 떠서 흘러갔다.

 

“으아! 사막에 발을 딛자마자 어마어마하게 찌는 구나.”

 

강가에 파피루스가 길게 자라나 있었다.

 

파사삭!

 

파피루스 줄기 아랫부분을 주먹으로 한 번 치자 윗부분까지 한꺼번에 파피루스 블록이 되어 한 묶음씩 떨어졌다. 최대 3블록 높이까지 자라는 마크와 달리, 파피루스의 높이는 5블록까지 자라 있었다.

 

파피루스를 가장 아랫단을 남겨놓고 윗부분을 벴다. 파피루스를 15블록 채취해서 그중 5블록은 한 칸씩 강가에 심었다.

 

‘여기에 며칠 있을 지, 내일이라도 옮겨갈지 모르지만 일단 심어놓자.’

 

언제라도 자리를 뜰 수 있게 파피루스 10블록은 인벤토리에 보관해 두었다.

 

선인장은 최대 6블록 높이까지 자라 있었다.

 

‘선인장을 맨주먹으로 쳤다간 가시가 박히겠지. 묘하게 리얼한 부분이 있으니까.’

 

내구도가 거의 다 쓴 나무 도끼를 꺼내서 선인장 맨 밑을 찍었다. 선인장도 파피루스처럼 아래를 캐면 윗 블록이 우수수 떨어지며 저절로 아이템으로 바뀌었다.

 

‘모래는 영양가가 많죠. 다다익선.’

 

“후루룹 짭짭 후루룹 짭짭 맛좋은 모래~.”

 

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돌삽으로 모래 블록을 퍼 담았다. 모래를 캐다가 노란 사암도 몇 개 곡괭이로 캤다.

 

사암 중에서 크리퍼라는 몬스터 무늬가 새겨져 있는 사암도 인벤토리에 담았다.

 

크리퍼는 사람을 발견하면 달려와서 터지는 폭탄마 몬스터였다. 크리퍼 무늬 사암 주변에서 더 자주 출몰했다.

 

‘크리퍼도 화약에 쓰려면 없다는 속담이 있으니, 이런 것도 나중엔 다 필요하겠지.’

 

사막 지역에서 쓸만한 자원을 대충 챙기고, 나는 정글로 돌아왔다.

 

‘여기는 집을 짓기에 마땅치 않아. 장소를 옮기자.’

 

나는 정글나무에 매달린 코코아 열매를 땄다.

 

코코아는 밀가루와 합쳐서 쿠키를 만들 수 있었다.

 

나는 코코아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정글나무를 한그루 더 벴다.

 

“집을 지으면 정글나무에 씨앗을 잔뜩 달아줄게. 열매를 잔뜩 맺어라, 코코아야. 으흐흐!”

 

해가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시간의 흐름은 현실과 같았다.

 

“그나마 낮이 길다는 점은 마음에 드네. 마크처럼 낮 시간이 몇 분 안에 끝나 버리면 대책이 없지. 시간에 여유가 있으니 평야를 찾아보자.”

 

마크에서 기후에 따른 지역은 크게 평야, 눈, 늪, 열대우림, 사막으로 나뉘었다. 여기에 나무가 많고 적음에 따라 세부적으로 갈렸다.

 

나는 추운 눈밭이나 덥고 습한 정글이 아니라, 살기에 쾌적한 온대 지역을 원했다.

 

‘점프나 수영같은 어지간한 게임 동작은 기합으로 해결 되는구나. 괜히 힘 뺐네.’

 

나는 설산과 정글 사이를 뛰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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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여성향, 역하렘을 좋아합니다. 


판타지, 로맨스 판타지나, 로맨스가 들어간 현대 판타지, bl 가능합니다. 


(로맨스는 장르에 따라 없/있/많이/역하렘 나눠서 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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