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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씁니다... 천애고아의 느낌이 너무 좋아서 쓰는 팬픽이라고 생각해주세요?




 반 강제적 권고사직으로 받은 퇴직금은 3억이 넘어갔다. 처음에는 이 사실이 믿겨지지가 않아서 회사에 전화했더니, 여태까지 월급의 미지급금까지 합친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미지급금의 80%가 야근수당이었는 점에서 두 번 놀랐지만 여하튼 3억을 받았으니 좋은 것이다.


 내가 다니던 곳은 10년 전부터 뜨기 시작한 '안드로이드'라는, 인간형의 로봇들을 개발하는 회사였다. 그곳에서 갖가지 미적 요소들을 더해 안드로이드의 모델을 그리고, 부품들을 배속하고, 마케팅 기획을 짜는게 나를 포함해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하는 업무였다.


 ...라고 해도, 이제 그런 회사들은 슬슬 줄어들 때라고 한다. 안드로이드는 너무 많아졌고, 자원은 점점 비싸져만 가고 있었다. 멀쩡한 안드로이드 하나를 사기 위해서는 대략 천만원 정도의 값이 필요했으나(물론 용도와 기능에 따라 억대 단위로까지 뛰었다), 요 몇달 사이에 그 값이 4~5배 가까이 폭등하는것도 어찌보면 어쩔 수 없는 것이리라.


 전철에 타고, 정거장을 수도 없이 지나며 집에 가는 길은 한산하고 여유로웠다. 모두가 일할 시간에 큰 종이박스를 든 채 전철을 타고 있으니 이유모를 비참함을 느꼈다. 일을 쉬어야할지 말아야할지도 모르겠고, 사직했다는 것도 믿겨지지 않았다. 이제 서른이 조금 넘었을 뿐이라 앞날이 창창한데도, 속 언저리에서는 원인 모를 무거움이 느껴졌다.


 멀뚱히 서서 창문밖을 바라보는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서류밖에 없는 종이상자를 든 내게는 낭패였다. 빗줄기는 점점 거세지더니, 이윽고 전철 창문에 물이 없는 곳이 없어질 정도로 심해졌다. 재수가 없는 날에는 끝도 없이 재수가 없을 것이라는걸 알려주는 것처럼, 난 이 정거장에서 내려야했다.


 "후우....."


 건물에서 나오자마자 쏟아지는 비 세례에 종이상자는 쓸모없어져버렸다. 어차피 필요 없는 서류들이었고, 모두 클라우드에 저장되어 있었기에 이 상자를 들고 오는건 용지값을 아끼기 위한게 전부였다. 그나마도 집앞에서 전부 젖어버렸으니 어쩔 수 없지만, 좀 아쉽다.


 한여름에 내리는 비라 시원한 기분은 있었기에, 박스를 재활용함에 버려둔 채 집으로 향했다. 우산도 없이 길을 걷는데, 사람들이 하나같이 저마다의 안드로이드를 두고 다니는게 보였다. 다들 우산을 씌워주고, 같이 걸어주고, 얘기도 해가며 정말 사람인 것 마냥 행동하는데, 문명의 이기가 이상한 쪽으로 나아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말 사람 같아도, 사람이 아니라는게 아이러니할 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집 앞까지 오는데, 바로 옆의 골목길에서 뭘 자꾸 부수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와 함께부수는 소리가 거세지더니, 골목길로 들어서자 그 부수는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17살 정도 되어보이는 남자애가 안드로이드를 벽에 처박아 놓은 채 정신없이 발길질을 하고 있던 것이다. 시간이 꽤 지나서 그런건지, 안드로이드는 방전된 상태로 사지가 뜯기고 머리털이 죄다 뽑힌채 복부를 굉장한 기세로 걷어차이는 중이었다. 난 너무 당황스러워서 소년의 팔목을 잡고 다그쳤다.


 "야 인마, 뭐하는 짓이야 지금?"


 "이새끼가, 아직도 날, 꼬마 취급하잖아!"


 "그만 안해?"


 팔목을 잡힌 상태에서도 소년의 발길질은 멈추지 않았다.


 "흥, 10년동안, 키워줬는데, 성의를 무시해? 이제 필요없어. 강제 은퇴식이라고."


 그러더니 그 녀석은 그냥 가버렸다. 강제 은퇴식인지 뭔지를 당한 안드로이드는 전원도 꺼진채 그렇게 방치되었다. 어쩐지 안쓰러워져서, 난 집에서 작은 캐리어를 가져와 안드로이드의 파편들을 숨은그림찾기 하듯이 찾아내 담아넣고는, 캐리어와 같이 집으로 들어갔다.


 "아, 3억! 정확히는 3억 3천 2백 5십 3만 7천 6백 9십원!"


 집에 오자마자 일단 오늘 번 돈(?)을 외쳐본다. 332537690원이라... 여하튼 많은 돈이다. 이 정도면 최신형 안드로이드를 몇개는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이미 안드로이드는 생겼다. 캐리어에 담긴 파편들을 방에 늘어놓고, 옷을 갈아입은 뒤 파편들을 바라보았다.


 사상 최초의 비공식 조립형 안드로이드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미묘해졌다. 전선이 흉측하게 뜯겨져서 새로 사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고, 몸속의 부품들도 한 번 갈아준 것 같았지만 꽤나 노화가 진행된 상태였다. 어린 아이의 신체를 가진 것을 보니, 어렸을 적 친구라는 느낌으로 안드로이드를 산 것 같았다. 머리털도 거의 뽑혀나갔기에 새로 사야할 부품들로 리스트를 작성하면 두루마리 휴지 하나를 전부 다 쓸지도 모르는 길이가 나올법했다.


 "어디보자... 이거 타입이 뭐지?"


 목 뒷부분을 보니 'sekai' 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1세대의 마지막 안드로이드라고 불리는, '세카이'형이었다. 세대를 거듭하면서 지금은 다들 4세대 제품을 쓰고 있었지만, 2세대부터 4세대까지 세대간 기능의 특이점은 거의 전무했기에, 사실상 회사에서는 1세대와 1세대 이후로만 제품을 나눴던 것으로 안다.


 1세대는 더럽게 무거웠고, 가끔 균형이 흐트러져서 넘어지는게 일쑤였고, 물과 소금에 엄청나게 약해서 피부나 내부 부품들이 부식되는 일이 잦았다. 2세대에서는 그런 단점들이 거의 보완되었지만, 사람처럼 걷는 다리가 아닌, 그냥 바퀴가 달린 다리 모양의 지지대가 되어버렸다는게 흠이었는데, 그 지지대 안에 거의 대부분의 부품들이 있었기에 4세대로 오면서도 그 문제는 해결되지가 않았다. 도덕성의 문제로, 사람과 거의 같은 피부를 쓰는 세대도 1세대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여하튼, 그런 1세대 안드로이드였기에 몸이 정말로 사람같기는했다. 기분이 나빠지려고 했지만, 일단 뜯겨나간 부위들을 대충 추려낸 뒤 전력을 넣어보았다.


 전력은 성공적으로 들어갔고, 죽어가던 피부에 불이 들어오더니 살구빛이 되었다.


 "아-아아아아아아---"


 엄청난 높낮이를 자랑하듯이, 고저를 넘나드는 안드로이드의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몸이 어려서 몰랐는데, 여성형이었다.


 "뭐래는거야. 충전될 때까지 말하지마."


 "아아-파요----@#$@^%*&#%@#$%@ 왜---나를----"


 스파크가 튀더니, 이내 안드로이드는 뻗어버렸다. 밖에서는, 폐기될 안드로이드가 있다는 말을 들은건지 트럭 한 대가 멀뚱히 있다가 가버렸다.


 뻗어버린 안드로이드에 전력을 넣는건 괜한 고장을 부추기는 꼴이었기에, 전력을 다시 빼버렸다. 그 순간, 안드로이드의 눈에서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가, 흘러나오는게 보였다.


 "가장 사람다운 안드로이드라는건가."


 그 시절의 광고카피를 읊으며,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품 주문을 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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